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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Mar 17. 2024

넷플릭스 '나는 로기완 입니다' 그리고 원작 소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고통 역시 살아가는 과정에 포함되는 인생

온통 영어로 말하는 세상에서 바쁜 주중 일과를 마치고 나면, 나는 조용히 TV를 켜고 넷플릭스 최신작 리스트를 확인한다. 정겨운 한국말이 그립기도 하고, 새로운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업데이트 되어 있는가 기대하면서 말이다.


반가운 송중기 배우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어쩐지 익숙한 듯 낯설어 보인다. 벌써 십 년도 넘은 2012년 개봉했던 영화 <늑대소년>에서 그의 연기를 인상깊게 봤던 기억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소년미에 남모를 사연을 가진 듯한 눈빛 연기는 여전하다. 세월은 나에게만 지나갔나 싶다.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북한 난민 그리고 ’유럽 난민법’ 단어가 들린다. 하하호호 웃음나는 작품을 기대하던 나는 다소 무거워보이는 탈북민 이야기가 담긴 '나는 로기완입니다.' 영화에 그렇게 젖어들기 시작한다.


'나는 로기완입니다.' 영화 줄거리


수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비극을 겪던 ‘고난의 행군’, 주인공 로기완은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밀입국한다. 행여나 공안에 잡혀 북송될까 아들 기완은 집에 칩거를 시키고 어머니는 낮밤 없이 돈 벌이로 쉼없이 고생한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어 행복한 모자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공안에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기완은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의 친인척들은 기완에게 어머니 시신 판 돈으로 난민에게 관대하다는 유럽행을 제안한다.


세상의 유일한 끈이던 어머니를 잃고 그 돈으로 브로커를 통해 위조 한국 여권과 벨기에행 비행기 티켓을 산다. 영어, 불어는 커녕 알파벳도 읽을 줄 모르는 기완은 그렇게 살기 위해 다시 국경을 넘어, 멀고 먼 유럽으로 향하게 된다.


“누군가의 반복되는 무시, 경멸,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과장된 경계심, 불 필요한 오해가 계속되리라는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로기완의 독백은 아무 연고 없는 외국에 이방인으로 내 던져진 기완의 막막함, 두려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비자 신청 경험

나 또한 일정기간에 걸쳐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영국 이민국을 찾는다. 자랑스러운 한국여권과 함께 소득증명, 영어시험점수, 비자 처리비용, 영국 건강보험 비용까지 목돈으로 제출할 때면 이렇게 까지 나를 증명해야 하는 외국 살이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영어를 구사하고 시댁이 든든한 가족으로 함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의 느낌은 생활 속에서 불쑥 찾아들 때가 있다. 아무 연고도 없고 자신을 증명할 서류도 없는 로기완에게 낯선 땅에서의  해외망명자 신청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유럽 각국은 될 수 있는 한 난민지위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다 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난민 인정이 되지 않으면 이들의 국외 추방이 내려진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로기완은 끊임없이 탈북민이 맞는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이 아닌지 의심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유럽 땅에서 떠나 온 북한과 별 다름없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기완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기완에게는 매일이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이러한 불안한 삶은 떠나 온 북한 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자유롭고 풍요로운 유럽 배경에 오롯이 섞이지 못하는 기완의 모습은 배경과 대조되면서 더욱 가슴 먹먹하게 표현된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나 배려는 불법체류자에게는 없었다. 인간사의 바닥을 그대로 보여주고, 딱딱한 빵 한쪽과 사각 싸구려 잼을 깨끗이 핥아 먹으며 그렇게 버텨 내는 기완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기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그의 의지를 그런 세상도 꺽지 못한다.


“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고통 역시 살아가는 과정에 포함되는 이상한 아이러니.”   (저서 '로기완을 만났다' 발췌)


기완은 마리(Marie)를 만난다. 부유하고 사격 재능이 있던 그녀는 의지하던 엄마의 안락사 사실을 알고는 삶의 의미를 잃고 자신을 파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인물이다.


마리의 도움으로 불법이지만 처음으로 육가공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기완. 새내기를 향한 조리돌림, 그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조선족 동료. 그녀마저도 공장주로부터 추방 위협을 받자 기완의 난민 심사에서 거짓증언으로 그의 믿음을 져버린다.


마리 아버지는 딸과 헤어져 달라는 조건으로 주어진 기완에게 난민 변호사를 소개시켜준다. 훔친 고기로 기완에게 저녁 식사를 나눠주던 조선족 동료, 새벽 시장에서 주어온 야채들로 인생 갈 곳 잃은 마리에게 기완이 대접하는 따뜻한 한 끼. 아주 짧지만 서로 보살피는 인간 세상의 따뜻한 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한 사람만 늘 곁에 있어준다면

“한 사람만 늘 곁에 있어준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없이 걷기만 했던 추운 겨울은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저서 로기완을 만났다 발췌)


기완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결국 벨기에에서 어렵게 얻은 난민 지위를 버리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하면서 끝나는 영화는 ‘그래서 기완은 안전한가. 정착해서 원하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좀 더 알고 싶다. 영화 줄거리상 도박, 마약 등 마리 주변 이야기는 영화상 극적 효과를 위해 강조 되었겠지만, 기완의 나레이션과 부딪히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원작인 ‘로기완을 만났다’ 를 읽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원작인 ‘로기완을 만났다’ 책을 다운 받아 읽기 시작한다.


원작 소설에서 탈북자인 로기완은 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큰 소재일 뿐, 글의 화자는 방송작가 ‘김 작가’다. 30대 중반 여러가지 상황들로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잡지에서 읽은 로기완(L)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다. 방송국에 사직서를 쓰고는 홀연히 벨기에로 떠나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


‘김 작가’는 로기완의  벨기에 정부로부터 망명 지위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 조력자로 노인 ‘박’을 소개받는다.  탈북자로 유럽에 망명을 와서 의사로써 교육받고 자리잡은 성공한 은퇴 노인이다. 그에게는 북한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와 자신의 뒷바라지로 애쓰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김 작가'는 로기완이 머물렀던 호스텔, 그가 지나치던 공원, 지하철 역사 등 실제 그가 있었던 공간들을 되짚어가며 그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해본다. 그 과정에서 로기완의 막막했던 심정을 날 것으로 느끼고 더불어 '김 작가'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도 한다. 은퇴한 의사 '박'은 '김 작가'에게 머물며 취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숙소를 제공하고 그녀와 간간이 만나 '로기완' 의 일기장 너머의 이야기를 나눈다.


기완을 도와주는 사마리아인들

노숙 청소년 쉼터의 소장 엘렌은 기완이 난민 임시 보호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후에 ‘김 작가’를 통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로’에게 전달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실비’는 난민 임시 보호소 '푸아예 셀라'의 관리자다. 로기완을 믿을 수 있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기완은 청소하다가 말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가사의 의미도 모른채 눈물을 흘리는데 그의 마음으로 공감하며 도닥이는 인물이다. 김 작가에게 일기장과 함께 전해진 유일한 사진 한장, 그 사진 속 기완과 다정하게 사진 찍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마리’가 아닌 ‘라이카’가 등장한다. 기완의 난민 지위가 보장된 후 합법적으로 취업한 중국음식점에서 만난 필리핀 여인이다. 그리고 그녀는 관광비자 기한을 넘긴 불법 체류자였다.  그녀와 기완은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라이카는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되어 추방당하게 되고, 기완이 결국 자신의 벨기에 난민 지위를 포기하고 라이카가 있는 영국으로 향한다.


마침내 '로기완'과 '김 작가'가 마주하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하며, 결국엔 살아남게 될 하나의 고유한 인생, 절대적인 존재, 숨 쉬는 사람."

소설의 마지막 김 작가는 로기완을 직접 찾아간다. 라이카와 함께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는 로기완의 모습을 그린다. 서로를 눈빛으로 확인하고 함께 인사나누는 장면에서 소설을 마무리된다. 시청자이자 독자인 나는 그의 안녕과 어렵게 얻은 그의 행복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김 작가와 퇴직 의사 '박'에게 '로'에 관한 취재는 또 하나의 치유 과정

소설 속 화자인 ‘김 작가’는 윤주와의 대화를 통해 그간의 마음을 어렵게 털어놓으며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소설 내내 ‘박’으로 불리던 ‘박윤철’은 사랑하는 아내의 안락사를 조력한 마음의 짐을 김 작가와의 공감의 과정을 통해 어렵게 풀어낸다.


다른 공간에서 각자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서로를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담았다.  따뜻하게 때로는 긴장감  있게 그려진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넷플릭스 영화 "나는 로기완 입니다"와 원작 '로기완을 만났다'의 다른 시점의 이야기를 즐기는 재미를 만끽한 주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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