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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Paloma Sep 23. 2023

'O-트레인'의 추억


10년 전, 우연히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경북의 조그만 기차역과 연계한 둘레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한국과 스위스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봉화군의 ‘분천역’과 스위스의 ‘체르마트(Zermatt)역’이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내용과 더불어,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낙동강을 끼고 꼬불꼬불 이어진 시골길을 ‘체르마트길’이라 이름 붙이고 방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전에도 봉화군은 이 일대를 ‘영동선 오지 트레킹’, ‘세평 하늘길’ 혹은, ‘낙동정맥 트레일’이라 부르며 둘레길로 개발하려 노력했던 모양인데, 워낙 교통이 불편해 크게 효과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체르마트길’이라는 이름도 조금 어색했다. ‘체르마트역’이 어떤 곳인가? ‘마터호른(Matterhorn)’의 관문으로 ‘빙하 열차(Glacier Express)’가 출발하는 역, 스위스 전통 ‘샬레(Chalet)’의 외관을 갖춘 ‘유럽에서 가장 예쁜 기차역’이라는 별명이 붙은 명소가 아니던가? 봉화군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해도 알프스 급의 규모는 아닐 텐데… 하면서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기차 시간표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홍보에 성공한 셈인가?


루트를 알아보던 중 청량리에서 출발해 제천을 거쳐 영월, 태백, 춘양, 영주, 단양 순으로 중부내륙을 크게 한 바퀴를 돌아오는 'O-트레인'이라는 열차가 있고, 같은 노선 위에서 철암, 승부, 양원, 분천을 하루에 4번 왕복하는 'V-트레인'이라는 관광열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레일에서 추천하는 코스는, 청량리에서 'O-트레인'으로 철암역까지 이동한 다음 'V-트레인'으로 갈아타고 분천역까지 천천히 창밖을 구경하며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비동승강장, 양원역, 승부역을 차례로 거치는 ‘체르마트길’을 걸으면 끝나는 것으로 간단해 보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른 아침,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길은 신나고 흥분으로 가득했다. 남편도 나도 처음 가보는 태백이었다. 탄광산업의 전성기에는 석탄가루로 마을은 온통 회색이고 개울물마저 검은색으로 흘렀다는 고한, 사북을 지나,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산봉우리가 겹겹이 앉아있는 해발 855m의 추전역에 잠시 내렸다. 상쾌한 바람 속에 초록빛의 능선과 눈부신 하늘 그리고, 나란히 줄지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동안 이런 곳도 안 와보고 뭘 하며 살았던 것일까?


분천역의 첫인상은 귀여웠다. 채 스무 평은 될까 싶은 작은 단층건물의 정면에 태극기와 스위스 국기가 함께 날리고, 창마다 빨강 체크무늬 커튼이 달려 있었다. 스위스의 오두막집을 소박하게 흉내 낸 모습에 풉! 웃음이 나왔지만, 그 마저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다.


소나기가 내렸는지, 길가의 나리꽃은 잎사귀마다 물방울이 맺히고, 하늘은 방금 세수를 마친 듯 말간 표정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평소 간단한 산책조차도 하지 않는 나에게 트레킹은 미션 같은 것이었다. 또한, 해외여행 같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오래 걷는 일도 없었기에 거리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도보로 이동하는 1km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산길 5km를 넘는 일이 얼마만큼 힘이 드는지 상상도 못한 채 시작한 여행이었다. 




본격적인 둘레길은 ‘비동승강장’에서 시작되는데, 분천역부터 거리는 4km. 시작점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이미 지치기 시작했다. 비동마을 입구까지 억지로 기어가 눈앞에 보이는 팔각정에 드러누웠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쉬고 있으니 동네주민이 한두 명씩 모여 말을 걸었다.

“그래 어데로 가는 길인교?”

“체르마트길이요”

“체리마트? 그기 머꼬?”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요래 요래 …”

지도까지 펼쳐서 열심히 설명했는데도, 모두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중 한 어른이,

“아~ 얼마 전에 분천역에서 뭐 한다꼬 요란하드만 그거 말하는 갑네.”

아! 그랬다. ‘체르마트길’은 마을 사람 누구도 모르는 길이었다. 당황한 우리가 어쩔 줄 모르고 있으니, 옆에 있던 아저씨가 찐 옥수수를 건네주며 말했다.

“힘든데, 만다꼬 그까지 가는교? 우리 여서 삼겹살 굽을긴데, 이거나 묵고 놀다 가소 마.”

속마음은 네! 하고 그 자리에 퍼지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 보기에 자존심이 좀 상했고, 나 자신에도 실망한 상태였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가야 한다고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가스버너에 고기 올리는 소리가 ‘치익~’ 들렸다.


삼겹살에 막걸리 맛있겠다. 생각하며 계곡길을 걷던 중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며 폭우가 내렸다.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고 빨라졌다. 다급하게 하천을 건넌 후 철교 아래에서 비가 지나가기를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강 위에 안개가 낮게 깔리며 비가 그치자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땅은 질퍽거리고 미끄러웠다. 나무에 묶인 이정표 리본을 부지런히 따라갔지만, 사유지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길이 막혀 멀리 돌아가야 했고, 숲에 방목해 기르는 누렁소도 만났다. 힘겨운 내 발걸음과는 반대로 공기는 무척 시원하고 상쾌해서 머리가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즐거움으로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없어진 길을 만들어 가며 느릿느릿 다음 기차역에 도착하니 겨우 양원역이었다. 승부역까지는 아직 6km가 넘게 남은 상태였다. ‘나는 이제 더 못 간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심하게 쳐다보던 남편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래 그만 가자.’고 했다. 나는 겨우 한숨을 돌리다 채소를 팔러 나온 할머니 두 분과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예전에 승부역과 분천역사이에 다른 정차역이 없는데다 도로마저 열악해 주민의 이동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철도청에 꾸준하게 민원을 넣어 겨우 만든 역이 바로 이 양원역이라고, 심지어 역사를 지을 예산은 받지도 못해 주민들이 벽돌과 시멘트를 사다 날라 직접 승강장을 지었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댁이 여기서 가깝냐, 이렇게 깨끗한 곳에 사시니 얼마나 좋으냐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끝날 줄 모르는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중 다음 무궁화호가 온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춘양으로 간다고 하니, 이번에 오는 기차가 막차라고 일러줬다. 아직 6시가 되기도 전인데 무슨 막차냐고 되물으니 산골은 차가 빨리 끊긴다고 했다. 우리는 멀리 던져둔 가방을 주섬주섬 찾아 메고, 작별인사를 한 후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고생스러웠던 기억만 남은 여행이었지만, 깊은 협곡과 기찻길의 풍경에 반한 우리는 한동안 툭하면 기차를 타고 태백으로 향했다. 주로 ‘하이원’에 숙소를 잡고, 도계, 황지, 만항재, 검룡소 등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곤 했는데, 언제나 새롭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시간이었다.


'O-트레인' 노선이 없어진 지금은 봉화 태백을 한번에 여행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아 많이 아쉽다. 얼마전, 이 근처로 간 길에 옛 생각이 떠올라 오랜만에 분천역에 가 보았다. 소박하던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붕은 온통 시뻘건 페인트를 칠하고 ‘산타 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역 앞은 조잡하고 빛 바랜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제 분천역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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