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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Oct 05. 2023

미국 사는 한국인입니다.

한식을 좋아하는 이민자의 음식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딸은 미국인이 되려나. 돈가스, 피자만 좋아해”


어릴 적 편식이 심했던 내게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어린이가 햄버거, 피자, 돈가스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게 당연한데 엄마는 왜 연신 그런 말을 했던지.. 엄마의 이 예언 때문이었는지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해외여행 가는 건 좋아하지만 외국살이는 자신이 없어서 유학도 포기한 내가, 해외살이 10년 차이니 역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돈가스와 햄버거만 좋아한 게 아니라 꼬마였던 나는 김치를 먹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편식하는 나를 위해 김치를 씻어서 먹이기도 하고, 볶아서 먹이기도 했다. 그래도 잘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가 개발한 레시피로 김치피자, 김치 햄버거를 종종 해주셨다. 토르티야판에 김치와 양배추를 볶아서 총총 썰어 올리고 냉장고에 있는 각종 야채와 햄을 볶아 올리고 마지막에 피자 치즈를 올리면 최고의 김치피자가 완성된다. 

그런 엄마의 노력 덕분에 지금 나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없어서 못 먹는다. 엄마의 노력 플러스 긴 외국생활이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의 외국 생활은 대학원 생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께서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서 자연을 연구하신다길래 나도 생태학을 공부했다. 지금이야 해외에서 한 달 살기가 젊은 사람들에게 유행이지만 내가 학창 시절엔 유학 말고는 장기간 해외에 나와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침 한국연구재단에서는 국내 대학원생들에게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쨌건 연구자로 살려면 해외 연구소에서의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서 신청한 해외연수프로그램에 덜커덩 합격을 해 나도 독일과 일본에서 해외 연수 기회를 얻었다. 


첫 번째는 독일 DAAD와 함께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그 당시 선발된 학생이 20여 명 정도 되었는데 일주일간 연수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독일 각처의 연구소로 흩어져 각자 자신의 전공에 맞게 연구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라이프치히 옆에 조그마한 할레라는 소도시에 있는 환경연구소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해외생활이 나의 첫 독립이다. 첫 독립이다 보니 음식을 해 먹는 게 가장 힘든 숙제였지만 본투비 양식을 좋아하는 나는 외국음식이 힘들지 않았다. 함께 연수에 참여한 학생들 중에는 음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대도시에는 아시안 마트가 있었지만 작은 도시에는 아시안 마트가 없어서 고이고이 간직하며 싸왔던 한식을 아껴 먹었다는 친구도 있었고, 김치찌개라도 만들면 1-2시간 거리에 있는 학생들을 초대해 함께 먹곤 했다. 그마저도 여유가 없는 학생은 바게트 빵에 고추장을 발라 먹으며 음식향수를 달랬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훨씬 쉬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전과 같은 연구단지가 있는 쓰쿠바라는 곳에 니노미야 하우스 기숙사에 한국학생들이 모여 살았다. 함께 한식을 만들어 먹었기에 한식에 대한 그리움은 없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계란찜을 만들고, 일본 된장 미소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가끔은 삼겹살 파티도 하고.  

그렇게 단기간의 해외 생활을 맛보고 졸업을 하고 해외생활에 두려움이 없어진 나는 미국의 한 연구소에 취업해 좀 더 장기적인 연수를 시작했다. 처음 1년을 계획했던 것이 2년이 되고, 중국연구소에서의 연구기회도 얻게 되면서 본격적인 해외살이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중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미국 사는 한국인이 되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달라지게 된 것은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해 먹는 것이다. 


해외 살이가 두려웠던 나였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한식 좀 안 먹으면 어때?’라는 마음이었는데 외국에 살다 보니 가장 아쉬운 것이 한식이다. 지금은 향긋한 봄나물, 곰장어, 꼼지락꼼지락 산 낙지, 신선한 육회, 지글지글 곱창.. 먹고 싶은걸 이야기하다 보면 밤샌다. 작은 텃밭에 깻잎을 심고 부추를 심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에는 화분에 고추를 심는다. 


그러고 보면 결핍이 생겨야 감사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음식을 잘하는 엄마 곁에서 한식만 먹을 때는 불평했었지만 이제는 손수 제배까지 해서 한식을 만들어 먹는다. 어릴 적 나의 편식을 없애려고 해 준 엄마의 다양한 요리가 어디에 살든 한국인의 맛을 그리워하는 한국인으로 살게 해 준 듯하다. 


누구나 유년시절 기억하는 맛이 있다. 학교 앞 달고나, 엄마가 타주던 미숫가루, 할머니의 된장찌개...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연구팀(US Riverside)은 생쥐 실험을 통해 어릴 때 먹는 식단이 평생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Th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연구를 발표했다. 과학적으로도 유년기에 먹은 음식이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한민족이란 모국어로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민족으로 공통 혈통과 문화, 정체성을 공유하는 민족이다. 이 문화와 정체성에 가장 큰 요인이 우리 모두 각자 엄마의 음식으로 생겨난 입맛이 아닐까. 내가 어릴 적 엄마는 미국인이 될 까봐 걱정했지만 나는 어디에 살아도 한국 음식을 사랑하는 토종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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