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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Oct 06. 2023

블루크랩을 아시나요?

게가 선물한 것 

여름 내 한국을 방문하고 8월 말이 되어서야 미국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혼자 지냈던 남편은 미국에 오자마자 “뭐 먹으러 갈래?” 라며 물었다. 쉑쉑 버거, 파이브가이즈, 에그슬럿까지 미국에서 유명한 음식들 대부분이 이제 한국에 진출한 터라 미국에 도착했다고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작년에는 파이브 가이즈 버거가 먹고 싶었는데, 얼마 전 한국에도 들어왔더라. 쌀국수나 먹으러 가지 뭐” 


평소 베트남 쌀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단골 쌀국숫집을 가자고 했다. 워낙 한국이 맛있는 세계 음식천국이라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메뉴가 생각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 입맛에 미국에서 더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베트남 이민자들이 하는 로컬 식당이라 기내식의 아쉬움을 쌀국수로 달랬다.

 

미국에 돌아오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터 남편은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약 석 달가량 남편 혼자 지내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국 음식이 조금은 그립지 않았을까 하는 나에 대한 배려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집 근처 맛집을 열거하며 여러 메뉴를 고민했다. 


“해물 봉지찜은 어때?” 

“오 그것도 한국에는 없으니 좋아” 

“쌀국수는?”

 “아 그것도 맛있지” 

그렇게 열거하다가 문득 여름이 끝나는 시기, 가을의 문턱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생각났다. 


“앗~ 한참 시즌이지? 게 먹으러 가야지!” 


미국에 유명한 특산품이 많진 않지만 내가 사는 지역인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 주가 만나는 접경에 위치하 만(灣)의 '체서피크 블루크랩(Chesapeake blue crab)'은 매우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많이 잡히기도 하고 많이 소비되기도 해 명실공히 가장 대표적인 명물이다. 다리에 푸른빛이 돌아 블루크랩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꽃게와 맛이 비슷해 한국사람들은 간장게장을 담가먹기도 한다. 시즌은 4월부터 11월인데 특히 7-8월 여름휴가를 맞아 게를 잡으러 가기도 하고 먹으러도 많이 간다. 


이상하게 나는 여름이 끝날 무렵이 되면 미국 동부 해안에 유명한 이 블루크랩을 먹어야 '올여름도 잘 보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운이 난다. 마치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기분이랄까? 바닷가가 보이는 데크에 앉아서 삶은 게를 잔뜩 깔아놓고 먹는 것이 묘미이다. 한국 게와 다른 점은 바로 빨간 올드베이 시즈닝을 잔뜩 묻혀 주는 것. 한국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라면 수프 같은 짭짤함이 느끼함을 잡아주고, 게의 비린내를 잡아주어 나는 대체적으로 빼지 않고 먹는 편이다. 한국에서 먹는 게와의 차별점이 이 올드베이 시즈닝인 셈이다.

아무튼 게를 먹으러 가자는 대화는 했지만 우리가 가는 단골 식당은 집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라 입국 후 바로 가지 못하고 며칠을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시차적응을 못하고 시달리는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오늘은 꼭 게를 먹으러 가자”며 운전대를 잡았다.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단골 게집은 성수기답게 관광버스 손님까지 와 있었다. 물가가 올라서인지 수확량이 줄어서인지 작년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맛은 여태까지 먹은 것 중 최고였다. 아직은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실컷 망치로 두드리며 먹고 나니 '아, 진짜 나 미국에 돌아왔구나, 아 올해도 힘든 여름을 잘 보냈구나' 싶었다. 저녁이 되니 살짝 바닷바람이 쌀쌀해진다.


 ‘여름을 잘 보내고 이제는 수확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내 집으로 돌아왔구나’를 느낀다. 시차적응은 그날로 바로 극복했다. 생각해 보니 결국 시차적응은 내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가족과 친구들과 보냈던 소중한 한국 생활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붙들고 있었던 마음이 육체를 지배했던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혼자 먹기 바빴던 남편은 이제는 내 게 껍데기를 먼저 까준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그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 남편 옆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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