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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Oct 11. 2023

나에게 가을은 Pumpkin이다.

가을과 함께 펌킨이 전해준 사랑 

서늘한 바람이 분다. 하나 둘 낙엽이 떨어진다. 노랗게,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는 잎사귀들을 본다. 대부분 가을을 언제 느끼냐고 묻는다면 보통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마트이다. 마트에 가면 격하게 느끼다 못해 모두 다 ‘가을이야’라고 목청껏 소리 지르는 것 같다. 가을이 오면 미국 마트는 온통 주황물결이 넘쳐난다. 


입구에서부터 큰 호박, 작은 호박, 늙은 호박, 젊은 호박.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호박 빵들이 나를 반긴다. 펌킨스파이시 베이글에서부터 펌킨파이, 펌킨 도넛. 스낵 코너로 눈을 돌린다. 펌킨쿠키를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긴 막대 스낵은 분명 초코맛과 바닐라 맛이었는데 없어지고 펌킨 맛만 있다. 커피코너로 간다. 펌킨 스파이시 라테가 있다. 맞은편 화장품 코너, 펌킨 아이크림이란다.


 ‘펌킨이 이렇게나 좋은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마지막 알코올 코너에 가본다. 펌킨 에일, 펌킨 와인이 떡 하니 나와있다. 이토록 호박에 진심일 줄이야. 여기는 마트가 아니라 그냥 호박 천국이다. 

할로윈 시즌에 나오는 다양한 펌킨 제품들

왜 이렇게 호박에 진심이냐고? 바로 그것은 아이들이 코스튬을 입고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핼러윈 이 다가와서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핼러윈 문화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이태원사태 같은 애석한 일도 벌어졌던 그 핼러윈 말이다. 


매년 10월 마지막날(31일)은 핼러윈이다. 이날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 정령이나 마녀 등이 출몰한다고 믿어, 귀신들에게 육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유령이나 흡혈귀, 해골, 마녀, 괴물 등의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영미권의 대표 행사. 그래서 가을은 곧 핼러윈 데코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호박은 핼러윈 날 밤 호박을 도려내고 안에 초를 세우는 유령등불인 잭 오 랜턴에 사용되어서인지 아니면 핼러윈의 대표색인 주황색을 가져서인지 아무튼 핼러윈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핼러윈에 진심인 문화에 사는 나는 이렇게 가을이 되면 온통 호박에 둘러싸인다. 


나에게 호박은 미국에서의 첫가을과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매체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미스 허즈번드라는 93세 미국인 할머니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서 방과 화장실을 빌려 쓰고 그 외 거실과 주방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형태로 1년 정도 머물렀다. 퇴근 후면 저녁을 차리며 할머니 말벗도 해 드리고 할머니를 위해 서류 작성이나 타이핑을 해드리며 지냈다. 


나에게는 혼자 사는 곳을 렌트하는 것보다 비용도 아끼고 영어 연습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할머니도 내가 외국인이긴 하지만 적적하지 않으신지 참 좋아하셨다. 그때 할머니는 펌킨 파이를 자주 만들어 주셨는데 나를 보고 종종 펌킨이라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 동요 중에 사과 같은 내 얼굴 가사에 나오는 ‘호박 같은 내 얼굴은 우습기도 하구나’라는 부분이 생각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도 할머니가 자주 사용하길래 “우리나라에서는 못생긴 얼굴에 호박이라고 표현해요” 하고 우리의 문화를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펌킨에 대한 호칭만 제외하고 할머니와의 생활은 꽤 좋았다. 흑인이었던 할머니는 뉴욕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셨던 인텔리로 1남 2녀의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쭉 혼자 사셨다. 할머니는 내게 1920년대에 뉴욕 백인 학교에 유일한 흑인 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해서 당했던 인종차별 이야기, 고인이 된 할아버지와의 로맨스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미국인들의 에티켓 등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나를 위해 오르간을 연주해 주시고, 나는 할머니에게 피아노를 연주해 드렸다. 


그렇게 좋은 시간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가 불편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는 날이면 전화를 몇 번씩 하시고, 잔소리를 몇 날 며칠동안 하셨다. 한 번은 직장에서 일이 늦게 끝나 9시쯤 집에 왔더니 직장에 전화를 하시겠다고 하셔서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내가 16-17살 사춘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다 못해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할 나이인데 부모님한테도 당하지 않는 간섭을 하시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가을, 땡스기빙데이를 보내자마자 할머니 집을 나왔다. 마침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 벌 나이의 한국인 부부를 알게 되어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미스 허즈번드는 많이 서운해하셨지만 그때의 나는 도저히 소셜생활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최선의 결정이었다. 


이사한 지 얼마 안돼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할머니는 나에게 집에 들르라고 하시더니 평소처럼 펌킨 파이를 만들어주셨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갔기에 이후로도 한국 음식을 갖다 드리기도 하고 마덜스 데이에는 꽃도 가져다 드리는 정도는 가끔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이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잊어버렸다. 

할머니가 만드는 파이

몇 년 전, 우연히 예전에 살던 동네 이웃을 만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웃은 연락이 끊겨 나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며 땡스기빙데이며 크리스마스며 펌킨파이를 구울 때마다 내 이야기를 하셨단다. TV에 한국문화가 나오거나 한국음식을 접할 때에도 내 이야기를 하셨단다. 그리고 하는 말. 


“우리 펌킨은 어디 갔냐고 하시는데 알고 보니 너였지 모야. 네가 없다고 서운해하셨어. 돌아가시기 전에 너를 위해 피아노를 주고 싶어 하셨는데...”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펌킨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영어권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애정을 듬뿍 담아 부르는 말이라고 설명해 줬다. 외모지적이나 하는 할머니, 집착하는 할머니로만 생각했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러웠다. 할머니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아끼고 애정을 듬뿍 담아 pumpkin이라고 부르셨던 것이다. 

펌킨파이

휴일 아침마다 오르간 연주로 나를 깨우던 할머니, 펌킨파이, 그린빈 캐서롤 등을 만들어주시며 레시피를 알려주시던 할머니, 나를 위해 저녁 음식을 남겨두고 기다리시던 할머니. 할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이후로 나에게 펌킨은 핼러윈이 아니라 가을이 전해준 사랑이 되었다. 상업적으로만 보이던 온갖 펌킨들이 이제는 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매체이다. 


올해도 시나몬이 듬뿍 들어간 미스허즈번드 할머니의 펌킨 파이가 그리운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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