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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Oct 10. 2023

신라면이 뭐길래

미국산 신라면의 다름을 인정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기간 해외여행 중에 가장 많이 챙기는 음식 중 하나가 라면일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한국 라면은 인기가 좋은데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도 한국라면을 많이 판다. 미국뿐 아니라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도 신라면을 파는 것을 보면 이제는 세계적인 라면이라 할 만하다. 요즘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좀 더 매운 블랙신라면, 베제테리언을 위한 그린신라면 등 다양하게 나온다. 그래도 나는 기본 신라면을 가장 좋아하는데 한국인 입맛에 가장 잘 맞기도 하고, 신라면에 관한 추억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마주했던 신라면의 반가움처럼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이했던 땡스기빙데이(추수감사절)에 남편이랑 둘이 놀러 갔다가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다 닫아 쫄쫄 굶어야 했던 때, 유일하게 연 세븐일레븐에서 마주한 컵라면을 사들고 호텔에서 둘이서 조촐한 땡스기빙데이 디너를 먹었던 것도 신라면이었고, 스모키 마운틴 정상에 갔다가 얼었던 나의 몸을 녹여주었던 것도 신라면이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신라면이 미국 사는 한국인들 일부에게는 종종 탈을 일으킨다는 사연을 접했다. 하루는 미국 한인 커뮤니티에 질문이 올라왔다. 


다음 중 본인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려주세요.  

1. 나는 신라면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2. 나는 신라면 대신 진라면을 먹는다. 

3. 라면을 먹지 않는다. 


"저희는 1번 때문에 신라면 대신 진라면을 먹어요"라던가 "저도 배탈 나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라는 둥의 댓글로 꽤 많은 사람들이 1번을 택했다. 나는 한 번도 탈이 난적이 없지만 미국산 신라면과 한국산 신라면의 맛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느끼기에 마트에서 라면을 마주할 때면 이 질문을 종종 생각한다. 최근에 음식 유튜브에도 이 둘을 비교한 영상이 꽤 올라온 것을 보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에겐 오지에 떨어져도 라면수프 하나만 있다면 몇 날 며칠 동안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소중한 음식이라서 유난히 맛에 관해 더 까다롭게 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신라면의 아쉬움은 너구리에 비하면 비할바도 아니다. 너구리의 생명은 다시마이건만 미국에서 파는 너구리에는 다시마가 들어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왜 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라면의 큰 인기 때문이다. 신라면의 매출은 지난해 (2022년) 이미 국내(41.5%) 보다 해외 매출(58.5%)이 높았으며 단일 제품으로 1조 매출시장을 열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렇게 글로벌 소비시장이 커지다 보니 농심의 생산라인은 미국으로 옮겨져 자체 생산을 한다. 그러니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보다 글로벌 입맛에 맞춰 보편적인 맛으로 진화한 게 아닐까? 


또 다른 요인으로는 재료에 있다. 농심 공장을 미국에 세우다 보니 미국산 고추와 미국산 소고기, 미국산 버섯, 양파 등 미국산 재료들을 쓴다. 배합이 같아도 재료가 역시 중요한 법이라 라면 맛의 핵심인 매운맛의 수프가 한국에서 생산된 라면과 다르다. 특히 미국은 고기에 대한 수입이 까다롭다 보니 분말수프 안에 들어가는 고기를 미국으로 들여올 수가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토종 한국인에겐 분명 한국 라면인데 또 한국 라면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최근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 중 일부도 미국산 신라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코리안 아메리칸 (Korean American), 분명 한민족이긴 한데 어떨 때는 한국인, 어떨 때는 미국인인 듯한 느낌, 그래서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듯한 느낌. 이민자들 중 이럴 땐 한국 문화, 저럴 땐 미국문화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요리조리 바꿔 타는 사람들을 만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밥을 사야 할 자리에서는 ‘미국 살면서 무조건 더치페이지’ 그랬다가 ‘야~한국인은 나이가 중요한 거 몰라? 한두 달 차이라도 형 혹은 언니라 해야지’ 라며 으름장을 놓는 사람. 자신이 관심 갖는 남의 일에는 ‘한국인은 정’이라며 엄청 간섭하다가도, 자신의 일이 되면 개인적인 일이라며 선을 긋는 사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이중성이 어느 정도 생기는 듯하다. 최근까지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 비난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그들도 신라면처럼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적응하다 보니 변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모습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결국 이 넓은 미국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열심히 살아준 그들이 성실하고 근면하고 스마트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 지금의 대한민국 이미지를 만드는데 조금은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고. 

한국산 라면이랑 똑같진 않더라도 소중하게 나에게 나타나 반갑게 마주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들을 비난만 하지 말고 따뜻이 안아줘야겠다. 하지만 신라면, 방심하지 마시라! 내 옆엔 언제나 진라면이라는 대안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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