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kim Oct 17. 2023

에어프라이어로 2시간 요리 실화?

레시피를 볼 때는 신중히 

이제는 각 가정에 없는 사람은 없는 에어프라이어가 내게도 생겼다. 

“이제 나도 남들처럼 생선도 굽고, 삼겹살도 구워 먹고, 빵도 구워 먹고 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좋아하던 나는 이것저것 해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가장 해 먹어 보고 싶었던 것은 한국인 최고의 인기메뉴 통삼겹살 구이. 미국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면 하도 화제경보(Fire alarm)가 울려서 매번 고생하기에 통삼겹살 구이는 가장 하고 싶은 메뉴였다. 


“육즙이 살아있는 삼겹살을 맛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며 ‘겉바속촉의 맛있는 삼겹살을 만들어보자. 나도 이제 진정한 삼겹살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여러 레시피를 찾아 결정을 했다.


1. 칼집을 낸다. 허브와 소금을 뿌린다. 

2. 190도에서 20분 굽는다.

3. 뒤집어서 20분 정도 더 굽는다.

4. 예쁘게 담아 맛있게 먹는다.

세상에 이렇게 간편할 수가. 그야말로 신세계다. 기름도 안 튄다. 그렇게 20분이 지났다.

“어? 이상하다 안 구워졌어” 나는 남편 보고 오라고 손짓했다. 남편은 꼼짝도 하기 싫은지 소파에 누워서 아직 안 익었으면 시간을 좀 더 늘려서 다시 해보라고 한다.  


“다시 해봐. 시간을 너무 적게 한 거 아니야?” 

“아니야 난 레시피 대로 했어”


그렇게 또 20분이 지났다. 아까보다 좀 나아진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그제야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은 배가 고픈지 일어나서 당황한 나와 에어프라이어 사이로 끼어든다. 에어프라이어 세팅을 들여다보던 남편은


“너 어디 레시피 봤어? 이거 온도 맞아? 한국 레시피면 온도가 섭씨가 아니라 화씨로 계산해서 입력했어야지.”


아뿔싸. 나는 그렇게 미국에 오래 살았건만 단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또 잊었다. 

미국에 오래 살아도 아직도 단위가 헷갈린다. 온도뿐 아니라 정량도 헷갈리고 거리도 헷갈린다.

온도는 화씨, 양은 파운드, 거리는 마일. 

'나는 섭씨, kg, m가 더 익숙하지만 미국은 미국표준단위가 따로 있지’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에어프라이어를 돌렸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같은 단위를 쓰는데 미국만 유별나게 쓰는 단위가 다르다. 왜 미국이 다른 단위를 쓰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영국의 영향을 받아 영국 측정 단위를 계승하였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미국은 이후 자체적으로 측정 단위를 개발하고 이러한 단위가 미국 고유의 단위로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국제적인 메트릭 단위를 표준으로 사용할 법도 한데 아마도 나라가 크다 보니 고치기가 힘들던지 미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해져서 굳이 고쳐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들에게 편할지언정 이런 단위의 다름은 외국인들에게는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캐나다의 경우도 단위가 달라 미국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갈 때는 마일에서 km로 바뀌기 때문에 운전을 조심히 해야 한다. 


내가 가장 불편한 것은 온도 단위이다. 전문가들은 화씨도 편리한 점은 있다고 한다. 화씨는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온도범위의 척도로 만들어진 거라 0°F은 매우 추운 겨울 날씨, 100°F은 매우 더운 여름 날씨라는 거다. 그래서 미국뿐 아니라 농업 등 일부 분야에서는 화씨온도를 쓴단다. 나는 '아직까지 0°F는 경험해 본 적도 없는데 원래 온도가 낮으면 추운 날씨, 높으면 더운 날씨 아닌가' 불평하면서도 매일 온도를 확인하고 온도에 따라 체감 날씨가 어떤지 다시 경험치를 쌓았다. 그렇게 상황 별로 다시 새로운 단위에 익숙해져야 하니 시간이 좀 걸렸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국산지 10년 되었으니 이만하면 익숙해진 줄 알았건만 한국 레시피를 보고 미국 단위로 변환할 생각을 안 하다니. 

무의식 중에는 익숙한 게 느닷없이 나타난다. 어릴 적 먹은 입맛만 익숙해진 것을 찾는 줄 알았더니 모든 생활습관에서 어릴 적 익숙한 것이 튀어나온다. 


결국 우리는 겉은 바삭하고 육즙이 팡팡 튀는 맛있는 삼겹살을 두 시간이 지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남편은 “에어프라이어 원래 간편하게 빨리 해서 먹는 용으로 산거 아닌가?”라고 했다.

나는 답한다.

 “어쨌건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거에 감사하자. 내가 레시피 앞으로 신중히 보고 변환할게” 


이전 08화 구글 리뷰가 알려준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