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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Oct 15. 2023

맥주의 나파밸리, 애슈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우리 부부는 매년 결혼기념일 즈음 여행을 간다. 주로 철저한 계획형인 내가 장소와 여행 일정을 모두 세우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따라온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내 취향이 반영된 여행을 준비한다. 결혼기념일로 가는 여행인데 매번 내 취향에만 맞춘 것 같아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던 차에 맥주의 나파밸리라고 불리는 도시를 만났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애슈빌이 그곳이다. 


애슈빌은 15개의 파머스 마켓과 250개의 독립 레스토랑이 있을 만큼 음식에 진심인 도시이다. 또 맥주 도시(beer city)로 불릴 정도로 미국에서 1인당 운영하는 수제 맥주 양조장 수가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져 맥주 애호가들의 성지 중 한 곳이다. 그러니 식도락을 즐기는 나와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딱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애슈빌로 향했다. 


우리의 기대대로 애슈빌은 음식과 맥주에 관한 투어가 매우 다양했다. 레스토랑을 돌면서 음식 몇 가지를 테이스팅 하는 투어도 있고, 각 부르어리를 돌아다니면서 샘플러를 마시는 투어도 있었다. 여름 철에는 마차를 타고 시음하면서 도시를 돌아다니는 투어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비시즌이기도 했고 음식과 맥주를 자유롭게 맛보고 싶어서 투어 대신 자유 여행을 선택했다. ‘미국에 살면서 위는 많이 키워놨으니 한 끼에 두 군데씩 가도 괜찮겠지’ 하면서. 그렇게 2박 3일 여행 내내 매끼 맛있는 것을 먹고 각각 개성이 넘치는 맥주 집을 찾아다니며 실컷 즐겼다. 


1994년 처음 문을 연 양조장인 하이랜드 브루윙 컴퍼니도 좋았고, 벨지움 맥주만 취급하는 뉴 벨지움 부르어리도 좋았다. 카타우바 (Catawba) 브루워리의 이름도 특이한 화이트 좀비 맥주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카타우바 맥주


음식과 맥주 맛도 한몫했지만 애슈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데에는 수많은 예술인들이었다. 낮에는 각종 예술품이 즐비한 가게들을 구경하고, 밤에는 각종 공연이 열리는 바에서 맛있는 음식과 시원하고 진기한 수제 맥주를 매일 즐겼다. 특히 평일 저녁임에도 많은 Bar 바에서 각종 공연이 열렸다. 기타나 피아노를 치는 사람, 밴드 공연을 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등 이쯤 되니 맥주 맛도 고민이지만 어떤 공연을 하는 브루워리를 갈까 하는 고민도 생겼다. 


보통 뉴욕에 아주 유명한 바가 아니고서야 평일에 공연을 하는 바들을 접하지 못했었던 터라 월요일 저녁에 공연을 한다는 이 생경한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음악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뿐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너무 좋겠어. 아주 한량이야 한량...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며 사는 거잖아” 


이렇게 말하고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던 중 북클럽에서 독서 모임 중에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나눈 일이 떠올랐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에 한 표를 냈지만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잘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이 성취감을 줘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또 좋아하는 일을 잘해서 생계를 이어가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할 경우, 행복할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마냥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해도 되고 공감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행복감을 경제적인 것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행복감도 돈으로 환산해서 판단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친구가 어떤 모임에서 행복하다고 했더니 “네가 부자도 아닌데 뭐가 행복하냐?”는 말을 들어 속상하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도 하려면 경제적인 요건을 갖추어야만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모르겠다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좋아하는 일을 모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이란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 부자가 되는 것이라는 공식이 생겨난 건 아닐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를 수 있기에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낸다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가난해도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 그 일을 이룬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바야흐로 낭만이 사라진 시대이다. 우리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 가운데 애슈빌의 작은 맥줏집 한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청년의 곡이 끝났다. 좋아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애슈빌의 숨은 예술가들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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