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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Oct 13. 2023

미국 살면 뚱뚱해지나요?

나의 비만 원인을 찾아서... 

대학원 시절 미국에 오래 산 선배 하나가 학교를 방문했다. 

‘저 선배 엄청 말랐었는데 절대 살 안 찔 줄 알았던 선배도 미국 사니까 살이 찌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잊어버렸다가 최근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나도 미국에 산지 10년이다. 중간에 중국에서 1년 넘게 보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8년이나 된 셈이다. 나도 3년까지는 잘 버텼다. 몸무게가 늘지도 줄지도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매일 걷기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서 조금 줄기도 했다. 그때까지 아주 잘 버텼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내 살림을 시작하고 슬금슬금 살이 찌기 시작했다. 처음엔 3파운드, 5파운드, 그러다 10파운드... 그렇게 야금야금 늘어나더니 이제는 올라간 숫자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미국에 살면 뚱뚱해지나요?”라고 묻는 다면 이제는 Yes라고 답할 것 같다. 실제로 미국 인구의 과반수가 과체중이며 미국인들은 몸무게가 정상 범위 안에 들더라도 여전히 필요량 이상 칼로리를 섭취한다는 보고가 있으니 Yes에 대한 근거도 있는 셈이다. 


다음은 내가 살이 찌는 이유에 대해 양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 것이다.


첫째, 양적인 것: 나는 예전보다 기본 섭취량이 늘었다. 


일단 살이 찌는 가장 간단한 이유는 누구나 알듯이 인 앤 아웃(in and out)의 결과이다. 들어오는 음식의 열량이 나가는 열량보다 많아서이다. 미국과 한국인의 기본 섭취량 차이에 있는데 개인적인 체감상으로도 한국인의 기본 1인분과 미국인의 1인분이 다르다. 


얼마 전 남편과 코리안 바비큐집에 가서 2인 세트를 시켜 먹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사진을 본 한국 이웃님들께서 “둘이서 저걸 다 먹었다고요?” 하고 놀라셨다. 물론 가격이 싸지는 않는 세트이긴 했지만 내가 시킨 것은 분명 2인 세트였고 처음 가는 가게이긴 했지만 다른 가게랑 양은 비슷했다. 


이러한 한국과 미국음식 양의 차이는 음료에서 더 크게 느끼는데 미국에서 콜라나 스프라이트 같은 가장 대중적인 캔 음료의 기본 양은 12oz. (340ml)이다. 반면 한국에서 파는 기본 음료수 캔의 양은 250ml. 그래서 한국에 도착해서 음료수 캔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한 모금 마시면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한 캔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어쨌건 기준이 되는 기본 양의 차이는 확실히 더 많은 섭취를 부른다.  

(좌) 코리안바베큐집 2인 셋트      (우) 한국 캔 음료 vs 미국 캔 음료

두 번째, 정신적인 것: 스트레스 때문인지 먹지 않던 단 것을 먹는다. 


과거 한국에 거주할 때에는 과자나 주전부리를 먹지 않았다. 특별히 단 음식을 찾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마트에 가면 과자 코너에 들러 한국과자나 초콜릿을 적어도 하나씩 집어오고, 한국 빵집에 가면 빵을 두 손 가득 산다. 나의 입맛이 변했나 했었는데 지난해, 올해 한국 방문 시에는 과자나 초콜릿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확실히 나는 미국에서만 단 것을 찾는다. 


미국에서 매일 먹어도 먹어도 해소되지 않았던 음식에 대한 욕구가 한국 방문 시에는 싹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맛있게 먹고 나서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았다. 밥 먹은 후 꼭 먹던 달달한 후식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서적으로 내가 지금 이걸 먹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음식에 대한 넉넉한 마음이 생겼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니 음식보다는 사람에 더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는 외국인으로 살면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항상 존재했다는 느낌이 든다. 외국에 산다는 긴장감, 영어가 원어민처럼 편하지 않아서 오는 스트레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혹여라도 실수할까 봐 늘 노심초사. 그런 것들이 내 뇌에서 단 것을 부르고 음식을 불렀나 보다. 


최근 읽고 있는 책, 도파미네이션(저자: 애나 램킷)에는 쾌락과 고통에 대해서 나온다. 이 두 가지 물질이 뇌의 같은 장소에서 나오는데 저자는 이 두 가지가 시소처럼 발란스를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쾌락을 크게 느끼면 그만큼 고통도 따른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고통을 크게 느끼면 쾌락을 더 많이 찾게 된다. 현대 사회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쾌락이 많아진 것도 문제지만 예전보다 삶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많아져서 쾌락을 더 많이 찾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대화를 며칠 전 친구와 나눴었다. 나의 고생을 달달한 것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한국에서 어떤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나 생각해 보니 역시 엄마의 정성스러운 밥상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3년 동안 내가 살이 찌지 않았던 기간도 함께 사는 집사님이 매일 정성스러운 한식을 차려주셨었다. 그렇게 사랑이 듬뿍 들어간 건강한 음식을 먹었으니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괜스레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귀찮다고 바쁘다고 요리를 잘 못한다고 겨우 겨우 찌게 하나, 반찬 하나 만들어 내는 나의 부족한 식탁이 혹시 그에게도 단것을 부르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남편은 단 것을 너무 좋아한다) 내일부터는 나도 엄마의 밥상처럼 정성을 다해 건강한 음식으로 식탁을 꾸려야겠다. 


미국의 음식문화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의 비만을 정당화하지 말고, 이곳에 사는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건강한 밥상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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