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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도 Oct 17. 2023

AWS와 초한지

몇 년 전, 친한 친구와 함께 우리도 창업이라는 걸 한 번 해보자고 겁도 없이 달려든 적이 있다. 사업 아이템은 급증하는 1인 가구를 타겟으로 삼는 앱 기반 생활서비스였고, 조잡한 MVP를 만들어 액셀러레이터 공모전에 지원도 하고, 투자심사역들 앞에서 피칭도 해보았다. 물론 역량 부족과 시장성의 불확실을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기에 결국 아이디어 수준에서 그친 채 두 사람 모두 직장인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꽤 아픈 좌절이었지만 그래도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초기 IT 스타트업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공유 오피스와 클라우드 서비스의 등장으로 얼마나 창업의 문턱이 낮아졌는지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우선 공유 오피스가 생기면서 초기 스타트업 활동을 위해 비싼 돈을 내고 사무실을 임대하지 않아도 된다. 인원이 적을 때는 두세 명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을 쓰면 되고, 비즈니스 규모가 커져서 직원 수가 늘어나면 그에 맞춰 더 넓은 방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비즈니스 중에 발생하는 데이터를 저장하려고 굳이 큰 돈을 들여 서버를 따로 구매할 필요 없다. 초기에 적은 용량을 사용할 때는 낮은 비용을 내다가 비즈니스가 잘 되어 데이터 저장을 위한 공간이 부족해지면 그 때 돈을 더 내고 클라우드 내 용량을 추가로 확보하기만 하면 된다.


클라우드는 IT 시대에 정말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있으나 비싼 서버 컴퓨터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주저하는 신생 IT 기업들에게 저렴한 데이터 저장 솔루션을 제공하여 진입 장벽을 낮춰주고, 그 결과 새로운 IT 스타트업이 탄생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전통 기업과 조직들이 디지털 전환을 하는 데 있어서도 촉진자 역할을 수행한다. 전에는 엄청난 양의 문서를 전자 데이터로 바꾸고 저장하기 위해 별도의 데이터 서버와 이를 전문적으로 운용할 전산실을 마련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클라우드 플랫폼에 위탁하고 맡겨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제 수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고, 매일 엄청난 용량의 데이터가 클라우드 플랫폼의 서버에 쌓이고 있다. 과거 역사에서 오직 종교나 국가 같은 거대 집단에서나 가능했던 방대한 데이터의 수집과 보관이라는 과업을 이제 한 개의 IT 기업이 맡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명의 발전을 주도하는 권력 역시 데이터를 움켜쥔 IT 기업들에게로 계속 옮겨가고 있다.



보물보다 귀중한 데이터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가 폭정으로 대륙을 통치하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 항우와 유방의 세력이 있었다. 둘은 각자 다른 경로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으로 진격했는데, 유방의 군대가 항우보다 먼저 수도 입성에 성공한다. 함양의 진시황 궁궐에 도착한 장수들은 전국의 진귀한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창고로 몰려가 값비싼 재물을 약탈하기 바빴지만, 유방 아래서 행정과 보급 업무를 총괄하던 소하는 보물창고가 아닌 진나라의 데이터센터, 즉 각종 서류와 도서가 보관되어 있는 기록관으로 향한다.


"고조가 군대를 일으켜 패공(沛公)이 되자, 소하는 항상 현승(縣丞)이 되어 각종 일들을 감독했다. 패공이 함양에 이르자, 여러 장수들은 모두 앞다투어 금과 비단과 재물이 있는 창고로 달려가 그것들을 나누어 가졌으나, 소하는 단지 먼저 궁으로 들어가서 진나라 승상부(丞相府)와 어사부(御史府)의 법령과 도서들을 거두어서 감추었다."


이후 뒤늦게 함양에 도착한 항우는 유방에게서 모든 보물을 압수한다. 항우는 반란군의 대장이었고, 백전필승의 정예병을 거느렸으며, 힘 또한 장사였기에 세력이 약한 유방으로서는 그의 명령대로 모두 내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항우는 소하가 감춘 법령과 도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유방은 진나라가 오랜 기간 막대한 인력을 동원해 축적한 전국 곳곳 지방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후 진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대륙은 항우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 세력으로 양분되어 자웅을 겨루게 되는데, 이때 소하가 확보해놓았던 데이터가 유용하게 활용된다. 중국 전역의 요새, 각 지역의 호구 수 및 경제력과 생산량, 그리고 지형까지 모든 정보를 알고 싸움에 나서는 한나라와 처음부터 데이터를 하나하나 쌓아가며 싸워야하는 초나라의 승부는 한나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나라 군이 훨씬 더 용맹하고 실전경험이 많아 전투에서는 우세를 점했음에도, 전체 전쟁에서는 물자의 보급과 후방 지원 능력이 뛰어났던 한나라가 결국 승리를 차지하고 전국을 다시 통일하게 된다.


한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진나라의 데이터는 새로운 국가의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각 지역의 특성이나 자연환경, 경제력, 인구 수와 관련된 내용 뿐만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법률과 행정 시스템의 설계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승상이 된 소하는 진나라의 제도를 모방해 이제 막 탄생한 신생국가의 시스템을 안정적이고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었고, 이후 한나라는 중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국가로 오랜 세월 번성할 수 있었다.


만약 유방의 군대가 함양에 입성했을 때 소하가 데이터를 입수하지 않고 내버려두어 초나라에게 빼았겼거나, 아니면 함양의 궁궐이 불타오를 때 같이 소실되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나라가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설사 승리했다 하더라도 단기간에 전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에 큰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한 집단이 권력을 쟁취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값 비싼 이나 재물이 아니라 데이터이며, 경제적 이익은 데이터를 움켜쥐고 확보한 권력에 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초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데이터를 움켜쥔 권력 집단


특정 집단이 권력 유지하기 위해 누구도 넘보지 못할 수준의 방대하고 폭 넓은 데이터를 움켜쥐는 원리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적용된다. 권력을 보유한 주체가 종교일 때도, 국가나 기업일 때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크기의 저장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 최대한 많은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 쌓아두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천년 간 이어진 중세시기에 서구 세계를 지배했던 종교 집단인 기독교는 교황이 사는 바티칸에 거대한 도서관을 짓고 전 세계의 데이터를 저장하였다.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성직자들과 선교사들이 자료를 수집해 바티칸으로 보내왔으며, 그 규모가 장서 160만 권, 필사본 18만 권에 이른다. 도서관 내 자료들은 종교, 정치, 경제, 외교, 군사 관련 내용 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연애, 요리법 등 민중의 일상과 밀접한 주제까지 포함하고 있어, 그야말로 당시 세상에 알려진 모든 지식을 쓸어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제대로 된 군대 하나 없이 오랜 세월 막강한 권력 집단으로 군림할 수 있었고, 심지어 현재까지도 세계 정치 흐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 사회의 패권국가 미국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회도서관을 수도 워싱턴 DC에 두고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한국인 집안의 족보도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책들을 박박 긁어모아 쌓아놓았고 그 규모가 장서 3,300만 권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문사에서 지난 몇 백년간 발간한 신문 자료들과 외교관들이 주고받은 비밀문서, 군사기밀, 보고서 등 각종 희귀자료도 기록보관소에 저장되어 있다. 축적에 들인 시간과 데이터 수집 장소의 범위, 자료의 깊이와 다양성 측면에서 다른 어떤 국가도 감히 넘보지 못할 방대한 데이터를 움켜쥠으로써 미국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의 데이터 수집 능력을 뛰어넘는 클라우드 기업들이 등장했다. 그 중 글로벌 시장점유율 40% 차지하며 선두에 서 있는 AWS는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 100 곳 이상의 데이터센터를 설치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규모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AW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용자는 주로 IT 기업이지만,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전통 기업들과 각국 정부기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그 수가 190개 국가 100만 이상 유저에 달한. 특히 미국에서는 CIA, 국방부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기관을 포함해 다수의 정부기관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아예 정부 전체의 보안과 금융 관련 데이터를 해외에 서버를 둔 클라우드로 옮기기까지 했다.


세력권 내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통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권력 집단은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관할 수 있는 능력과 설비를 갖추었고, 일정 수준으로 구축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권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세력에 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이는 워낙 규모가 크고 막대한 금액이 투입되어야 하는 과업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종교나 국가 정도의 힘과 자원이 있는 집단이라야 실현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하나의 IT 기업도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월등한 수준으로 데이터를 쌓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사실이야말로 문명 발전의 주도권과 권력이 종교와 국가에서 IT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 아닐까.



IT 기업의 심장 데이터센터


2018년 위키리크스는 AWS의 내부 기밀 문서를 입수해  세계 9개국 15개 도시에 설치된 AWS 데이터센터의 위치를 지도와 함께 공개했다. AWS는 데이터센터의 위치를 극비 사항으로 다루며 자연재해나 장애가 발생했을 때 일부 공개되는 내용 외에는 철저하게 관련 정보의 노출을 꺼린다. 심지어 각 지역에서 데이터센터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회사의 이름을 모호하게 짓거나, 가명을 써서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데이터 보안과 안전의 이슈로 위치를 숨긴다고는 하지만, 그렇게치면 본사나 연구시설 등도 보안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곳들은 위치가 공개되어 있어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누구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반면, 유독 데이터센터만 철저히 비밀스럽게 장소가 감춰져있다. 이는 데이터센터가 IT 기업에게 심장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군대는 주력 부대가 심장이고, 제조업은 공장 시설이 심장이다. 이 둘이 파괴되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적이나 경쟁자에게 우위를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IT 기업은 쌓아놓은 데이터만 확실하게 지키면 된다. 극단적으로 본사가 테러를 당하거나 로봇으로 일자리를 잃어 성난 군중들이 물류센터와 그 안에 설치된 자동화 설비를 파괴하는 일이 발생해도, 축적된 데이터만 있으면 금방 전과 같은 규모로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자본과 인재를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자가 치고 들어와 권력을 탈취하려고 해도 데이터 확보에서의 우위만 유지하면 강자로 남는다.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수준으로 데이터를 쌓으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행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여 클라우드 서비스 고객을 선점하는 동시에,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춤으로써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여 데이터가 쌓이는 속도와 규모가 점점 커지는 선순환을 얻는 행운. 이는 한 시대에 일부 플레이어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행운이다. 뒤에 따라가는 플레이어는 규모의 경제 면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싼 값에 대용량의 안전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 지배자에게 맞서 싸우기 힘들다. 데이터센터를 모두 파괴하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는 한 말이다.



영혼의 저장소


이제 대부분의 플랫폼과 IT 기업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여 자사의 데이터를 저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드 기업의 데이터 서버에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을 포함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생각과 언행이 담긴 모든 정보가 축적되고 있다. 메신저로 속삭이는 말들, 돌아다니며 보고 찍고 올리는 이미지와 영상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검색엔진에 어떤 내용을 검색하는지, 어떤 콘텐츠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지 등. 우리 영혼의 저장소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클라우드 기업의 정보 도용에 대한 우려가 많다. 말로는 보안이 무척 철저하고 고객사의 정보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하는데, 혹시 내부적으로 다른 기업의 정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게 아니냐. 심지어 공공기관의 정보까지 다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자칫 잘못된 방식과 목적으로 사용되면 어떻게 하냐. 아니면 해킹을 당해서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유출되면 어떻게 하냐. 자신들의 영혼을 내맡긴 사람들 입장에서는 늘 불안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클라우드 기업의 비즈니스 운영에 있어서 투명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물론 글로벌하게 신뢰를 얻고 있는 거대 IT 기업들이 클라우드에 저장된 고객의 데이터를 비도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찝찝하고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이렇게 편리하고 유용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영혼, 우리의 데이터는 차곡차곡 클라우드에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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