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도 Aug 28. 2023

쏘카와 유한계급론

나는 자동차 운전을 좋아한다. 하지만 자차는 없어서 쏘카나 그린카와 같은 카셰어링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한 달에 두세번씩 주로 주말에 반나절 정도 빌려서 타고 반납한다.


카셰어링은 정말이지 너무 편리하다. 차량 구입 비용, 유지비와 관리비, 주차비, 보험료, 세금 등 자차 소유를 위해 들어가는 큰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필요한 시간만큼 또 주행하는 거리만큼만 금액을 치르면 된다. 가까운 장소에서 픽업이 가능하고, 매번 다른 종류의 차량(가끔 신차도)을 타볼 수 있다. 멤버십, 쿠폰 등을 활용해 다양한 할인도 제공한. 그야말로 흠 잡을 데 없는 최고의 서비스다. 딱 한 가지 점만 제외하면.


왠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



자동차는 성공의 지표


얼마 전 대학 시절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모임을 가졌다. 교외의 한 식당에서 만나 추억을 나누고, 근황도 물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계산을 하고 식당 밖 주차장으로 나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차로 향했다.


"야, 00이 성공했네"


외제차 문을 열고 있는 한 친구에게 역시 외제차를 모는 다른 친구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뭐래 ㅂㅅ이" 서로 키득대다 나와 나머지 친구 한 명쪽을 바라보았다. 그 친구는 국산 세단, 나는 카셰어링 차량.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곧 어색하게 "잘 들어가. 다음에 보자" 아까 했던 인사를 반복했다.


대학 다닐 때는 똑같이 대중교통 타고 피씨방에서 밤새 게임하면서 컵라면 먹고, 앞으로 진로 어떡하냐 함께 고민하던 우리였는데. 어느새 사회에 진출해 각자 자리를 잡고,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 대상이 바로 자동차였다.


이후에도 그날의 짧은 순간(그 정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왜 나는 스스로를 좋아하고 내 삶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임에도 그때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인지 많은 생각 들었다. 대체 자동차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의 존재일까.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속도와 이동성


을 길들여 가축으로 키우기 시작한 이후,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본인의 발걸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간을 옮겨다닐 수 있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극대화 시킬 줄 알았던 집단이 전쟁에서 승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쟁취하였다. 기마민족 스키타이, 정예 기병을 거느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몽골 제국 등. 세계사는 이들의 말발굽 아래 무릎 꿇은 패배자들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자연히 말을 타고 있다는 것은 남들보다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집단의 상위 계층은 말 위에 앉아 군대를 통솔하고 일반 시민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행사하였다. 중세의 귀족인 '기사' 계급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을 소유하고 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자 계층 간의 강력한 구분선으로 기능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말을 몰겠다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막대한 비용을 치룰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사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가치로 한 명당 5억에서 10억원 가량의 여유자금을 굴릴 수 있는 경제력이 필요했다. ("과시와 낭비가 미덕이었던 '중세시대 기사'... 기사가 되려면 10억원대 여유 자금 있어야", 한국경제, 2021년 9월 27일) 따라서 물려받은 영지와 그곳에서 거둬들이는 수입 없이는 도저히 기사 신분으로 올라설 수 없었다. 오로지 세습 귀족으로 태어나야만 말을 몰 수 있었다는 뜻이다.



포드와 자동차의 대중화


이런 상황이 수 천년간 지속되다가 20세기 초가 되어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만들겠다"는 헨리 포드의 야심찬 구호 아래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대량 생산 방식이 도입되었고, 그 결과 품질 좋은 자동차가 값싼 가격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열광했고 너도 나도 자동차를 구입해 수 천년간 소수만 가질 수 있었던 이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 되었다. 마치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손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포드의 자동차 보급으로 대중의 지위와 능력은 격상되어 사회는 평준화되었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중산층의 확산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자동차의 대중화로 인한 평준화 효과도 잠시, 말에 이어 이번에는 자동차에 새로운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생겨났다. 좀 더 크고 화려하고 비싼 차.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치러야만 하는 자동차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과시와 낭비의 유용성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문명 세계가 부족사회와 봉건사회를 거치면서 일하는 계급과 통치하는 계급으로 나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최초의 기원은 침략과 약탈 행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다른 부족 또는 국가를 침략해 전리품을 획득하여 돌아온 전사들이 집단의 존경과 복종을 얻으면서 계급이 분화된다고 한다.


이들 용맹한 전사들은 집단의 명예를 지키는 최상위 수호자로서, 평상시에 생산활동에서 면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생산하는 재화의 분배권을 가졌다. 일도 안 하는데 남들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맘대로 처분할 수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배 계급에게는 피지배 계급에게 보여주고 설득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더 잦은 약탈과 침략을 통해 획득하는 더 많은 노획물 또는 전리품이었다. 생전 보지도 못한 희귀한 물품과 산더미 같은 재화. 이를 과시하고 낭비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지배 계급은 공동체에서 용맹을 인정받고 존경을 얻으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침략과 약탈의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대신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가 공동체 내에서 명성과 존경의 새로운 관습적 근거가 되었다. 이제 존경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한 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선망하지만 아무나 가지기 어려운 값 비싼 무언가를 소유하고 과시하고 낭비함으로써 자신이 상위 계급임을 공동체로부터 승인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다소 막연하고 일반적인 기준에 못 미치는 용맹성이나 부를 소유한 구성원들은 동료남자들의 존경을 받기 어렵게 되고, 결국은 그들의 자존심도 상처를 입게 된다. 그들의 자존심은 흔히 이웃이나 동료들과 동등하게 존경받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 경멸당하면서도 자존심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동차는 부를 과시하기에 최고의 상품이다. 기기의 성능을 고도화하거나 자재와 부품을 고급재질로 쓰면 얼마든지 차별화와 고급화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차를 이동 수단이 아닌 공공 영역에서의 사적인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 고급화할 요소가 많아진다. 자동차가 일종의 움직이는 호텔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호텔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부의 계층화를 공고히 해온 영역이 아닌가. 자동차에 호텔의 차별화 요소를 똑같이 적용하기만 하면 자동차 역시 계층을 구분하는 훌륭한 지표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자동차는 호텔보다 더 효과적이게도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더 많은 구성원들에게 부를 과시할 수 있다.



카셰어링의 미래


처음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야 이제 자동차 회사 다 망하겠는데' 생각했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하게 차량 이용이 가능한데 누가 자동차를 굳이 사려고 할까. 평소에는 대중교통 타고 멀리 나갈 때는 카셰어링으로 빌리지.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카셰어링 서비스의 이용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판매량 역시 지속 상승했다. 사람들은 자차도 구매하고 동시에 카셰어링도 사용한다. 이 둘은 겉으로 보았을 때 기능적으로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 보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고 각각의 목적이 다르다. 본인의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를 넘어, 사회에서 본인이 속한 계층을 드러내고 공공 영역에서 자신만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과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카셰어링은 자동차 소유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워보인다. 대부분의 시간을 주차장에 멍하니 서있는 자동차들이 아까워 시작된 서비스인데, 그렇게 멍하니 서 있으면서 낭비되는 시간과 자원이 크면 클수록 소유주들의 부유함을 더 부각시키니까 말이다. 한편에서는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의도적으로 이들을 낭비하려 애쓴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이전 04화 야놀자와 노마디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