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 새벽배송 된 식품들을 냉장고로 옮겨놓는 일이다. 잠자기 전 쿠팡으로 주문해 놓은 각종 식재료들이 잠자는 사이 집 앞에 도착해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참으로 살기 편리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새벽배송, 당일배송, 주말배송은 어쩌다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였는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주체는 쿠팡, 컬리, 파스토와 같은 물류 기업들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여, 미국의 아마존에서 시작된 풀필먼트 시스템을 한국 상황에 맞게 변형 후 정착시켰다.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대규모 적자를 감당하며 빠른 배송 서비스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커머스 시장과 쿠팡의 급성장이 보여주듯 빠른 배송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더 빠른 배송을 위한 무한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상품보다 빨라진 정보의 이동
문명의 역사에서 대부분 기간동안 상품은 언제나 정보와 똑같은 속도로 이동했다. 인간의 걸음속도만큼, 또는 말이나 다른 탈 것의 속도와 동일한 빠르기로. 물론 봉화나 깃발, 새를 이용한 더 빠른 정보 전달 수단이 있긴 했지만 불완전하고 보편적이지 않은 방법이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다른 장소의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메신저의 손에 편지를 맡겨 그를 수신자가 있는 곳으로 보내야만 했다. 이는 상품도 마찬가지여서 메신저는 정보와 함께 상품도 직접 이동하며 운반했다.
그러다 1861년 미국에서 동부와 서부 간 유선 전보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정보와 상품의 속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1885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설립한 AT&T가 전화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고, 1901년에는 마르코니의 무선 전보 기술로 순식간에 대서양을 건너 정보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1970년 개발된 광섬유를 활용한 광통신 기술이 본격화되며 정보가 말그대로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통신 기술의 발달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문자, 이미지, 영상, 음성 등 모든 종류의 정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대용량으로 지구 반대편 수신자에게 보낼 수 있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생생하게 라이브로 시청할 수 있고, 게임에 접속하면 전세계의 게이머들과 가상공간에서 만나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하고 플레이 할 수 있다. 반면 상품은 여전히 과거의 배송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동하고 있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속도를 상승시키면서.
배송 속도를 높이기 위한 물류 혁신
지난 100여년 간 상품 역시 이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나름의 혁신을 지속해왔다. 물류 전문가 오노즈카 마사시는 <로지스틱스 4.0>에서 20세기 이후 시작된 물류 혁신을 총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본격화 되었으며 운송 수단의 기계화가 주요 특징이다. 말과 수레 대신 트럭, 철도가 기본적인 육상 운송 수단이 되었고 해상에서는 증기선과 기계선이 보급되어 범선을 대체했다. 이로 인해 대용량의 상품을 더 빠른 속도로 더 멀리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50년대 이후 하역 자동화 단계이다. 컨테이너의 발명으로 운송비가 급격하게 감소했고, 제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상품을 일정한 규격으로 통일시킴으로써 선박, 철도, 트럭을 통합한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안전한 일관 운송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항만에는 대형 크레인이 설치되어 크고 무거운 컨테이터를 손쉽게 하역할 수 있게 되었고, 지게차의 보급으로 이를 창고에 보관하거나 다른 운송수단에 옮겨 싣는 작업도 용이해졌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실현된 물류 관리·처리 시스템이 물류 혁신을 주도했다. WMS와 TMS 등 물류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들은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상품의 보관과 배송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고 다양한 상품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획득했다. 또한 통관, 품질검사, 안전확인 등 각종 절차를 처리하는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상품의 이동에 부가적으로 소요되던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이루어지는 물류 혁신이며, 주로 물류 작업의 주체를 인간이 아닌 AI와 로봇으로 대체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각종 자동화 장비로 무장한 풀필먼트 센터에서는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창고 로봇이 AI의 계산으로 최적화된 동선을 따라 상품의 픽업과 분류, 포장 작업을 마치고 운송 수단에 적재까지 완료한다. 운송 수단 역시 무인화 된 자율주행 차량으로 대체되고, 자율주행 차량은 물류 센터에서 고객의 집 앞까지 AI가 지시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따라 주행하여 아주 빠르게 배송을 마무리한다.
"물류의 기본 운영 체제에서 AI와 로봇이 사람보다 못 하는 작업은 거의 없다. 트럭을 운전하는 것도, 물류 센터에서 화물을 운반하거나 선반에서 물품을 집어 내 포장을 하는 것도, 선박이나 트럭, 통관업체를 수배하는 것도 전부 AI와 로봇이 더 잘하는 영역이다."
오프라인몰을 대체할 메타버스몰
그렇다면 과연 상품의 이송 속도는 어디까지 더 빨라질까. 2018년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메타버스의 미래를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오아시스'라 불리는 메타버스 안에 머물며 일상을 살아간다. 오아시스에서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공간적 경험을 즐길 수 있는데 이로 인해 현실보다 오히려 가상공간이 더욱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웨이드가 오아시스에서 가상화폐를 벌어들인 후 오아시스 내 쇼핑몰을 방문하고, 여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가상화폐로 구매하여 '현실로 배송'하는 모습이다. 가상공간이 더 이상 가상공간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현실세계의 연장이 되는 순간. 인간이 메타버스 안에 끊김없이 머물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때가 바로 이 순간 아닐까. 게임에서 득템한 상품이 그 즉시 집 앞으로 배송된다면, 그 때부터 게임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닌 진짜 현실로 바뀌게 된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오프라인몰을 방문하는 이유는 그곳에 상품과 함께 보고 즐길 거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상품만 있으니까. 그런데 메타버스 공간 안에는 볼 거리, 즐길 거리,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의 시간을 들여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규모로 다채로운 세상이 존재한다. 만약 메타버스와 온라인 쇼핑몰이 통합된다면, 그리고 배송 속도가 실시간에 가까워져서 메타버스 내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순간 바로 '현실로 배송' 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매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가끔 컨셉을 바꾸어 리모델링을 하긴 하지만) 지루한 오프라인몰 대신 끊임없이 새로움과 흥미를 제공하는 메타버스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AI와 로봇이 주도하는 현재의 물류 혁신은 이와 같은 미래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많은 물류 창고가 도심 내 지하에 촘촘히 설치되고, 이들을 잇는 지하 차도를 자율주행 차량이 바쁘게 오고 가며 '현실로 배송'되는 상품들을 운반하게 될 것이다. 또한 AI는 각 개인들의 구매 습관과 취향을 분석하여 그들이 언제 어떤 상품을 구매할지 미리 예측하고 가장 가까운 물류 센터에 상품을 보관함으로써 실시간 배송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정보처럼 빛의 속도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고객이 느끼기에 거의 실시간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의 배송 속도, 고객이 메타버스의 꿈에서 깰 정도의 현타가 오지 않는 수준까지 상품의 이동 속도는 계속 빨라질 수 있다.
한 번 익숙해지면 돌아가지 않는다
아기였던 시절, 우리는 모두 실시간 배송을 경험했다. 으앙 울기만 하면 바로바로 필요했던 물품이 나에게 주어졌던 신비로운 경험. 울음 버튼만 클릭하면 그 즉시 젖병이, 장난감이 내 손으로 배송되는 안락하고 편안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필요한 물품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모든 욕구가 즉각적으로 채워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배웠다. 그래서 인내심을 기르고 기다리는 습관을 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는 실시간 배송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억눌러져 있다.
이만하면 됐다고, 여기서 굳이 더 빨라질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완전히 잊어버렸거나 무의식에 잠재된 이런 욕구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정보를 보내고 받는 속도만큼 상품의 이동 속도는 빨라질 잠재적 수요와 경제성을 갖는다. 이를 받아들이고 배송 속도의 혁신을 지속하는 기업이 앞으로도 고객의 선택을 받고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다.
쿠팡의 모토는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한 번 빠른 배송에 익숙해지고 즉각적으로 상품을 손에 넣는 경험을 해본 소비자들은 다시는 과거의 느린 속도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치 현재의 우리가 친구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더 이상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