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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도 Aug 31. 2023

야놀자와 노마디즘

최근 휴가로 베트남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떠난 해외 여행이었는데, 평일 아침 일찍부터 인천공항이 여행객들로 붐비는 걸 보고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긴 했구나 실감했다.


생애 출국에 설레는 학생들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세대 구분없이 심플하게 캐리어 하나 끌고 전 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 대여행시대가 펼쳐진 기분이다. 한국 역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대륙을 넘나들던 시절이 있었던가.


소득수준 향상, 저가항공의 확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여권 파워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해외 여행의 문턱이 낮아진 상황에서, 야놀자나 여기어때 같은 여행 플랫폼들의 출현이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점 가서 가이드북 사고, 이리저리 검색해서 비행기 티켓 끊고, 먼저 다녀온 사람 수소문해서 코스 물어보고 번거로웠는데 이제는 여행 플랫폼에서 아주 쉽고 편리하게 원스탑 쇼핑이 가능하다. 덕분에 국내 여행처럼 가벼운 느낌으로 해외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은자의 나라로 불리던 한국이, 사농공상의 굳건한 질서 하에 떠돌아다니는 상인과 예술가를 장돌뱅이와 광대로 천시하던 한국이 이제는 여행광이 되어  세계를 누비있으니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혔다. 언제부터 여행이 이렇게 우리의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차례세계화와 노마디즘의 부상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저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인류는 역사 속 대부분의 시간을 떠돌아다니는 수렵채집인 또는 유목민으로 살아왔으며, 어딘가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던 기간은 5천 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17세기부터 시작된 세 차례의 거대한 세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의 주인공이 정착민에서 다시 노마드로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착생활이 역사의 주류였던 지난 5천 년간 정착민(주로 농부)은 떠돌아다니는 노마드를 차별하고 무시하고 천시했다. 그들은 상인, 예술가, 여행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고, 타지에서 유입된 이들이 정착민들의 사회에 불순한 사상을 퍼트리고 안정된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을까 감시하고 통제했다. 때문에 농경사회에서 노마드는 언제나 지배층과 농부들 아래인 최하층 계급에 위치하였다.


그러다 17세기 들어 항해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국가 간 상업이 활발해지고, 사람들과 상품이 빠르게 국경을 넘어 옮겨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역전된다. 아탈리가 말하는  번째 세계화 속에서 노마드들은 능수능란하게 기회를 포착해 부를 축적했다. 한 국가의 저렴한 상품을 다른 국가로 옮겨 비싸게 팔면서, 이익은 챙기고 책임은 지지 않았다. 이제껏 내수 판매로 먹고 살던 수많은 국내산업들이 해외의 값싼 제품 수입으로 붕괴되었다. 불평등과 빈곤이 확산되었고, 깜짝 놀란 서구의 국가들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올리고 보호무역 정책을 펼치며 문을 걸어잠궜다. 첫 번째 세계화가 멈추었다.


두 번째 세계화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일손, 원료, 시장에 대한 요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시작되었다. 다시 국가 간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활발해졌으며, 첫 번째 세계화보다 더 빠르고 더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불평등과 빈곤이 더욱 확대되었고, 부유한 국가로 이민오는 가난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갔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산업화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동시에 엄청난 문화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며 정착민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결국 반노마드적 전체주의가 문명사회를 휩쓸었고, 부유한 노마드와 가난한 노마드 모두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이 자행되며 두 번째 세계화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 세 번째 세계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0세기 중반 평화가 되돌아오면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세계 휩쓸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 정보기술 혁명, 항공교통의 발달, 국제기구의 등장과 자유무역협정 활성화 등이 앞선  차례 세계화와의 차이점이다. 그 차이점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전과는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로 빠르고 거대한 규모로 사람과 상품이 바다를 건너 대륙을 넘나들고 있다.



하이퍼노마드와 노마디즘의 확산


세 번째 세계화 속에서 이제 인류는 세 부류로 나뉜다. 인프라노마드와 정착민, 그리고 하이퍼노마드.


인프라노마드는 비자발적으로 어쩔 수 없이 노마드가 된 이들로서 외국인 노동자, 난민, 일용근로자, 정치적 망명객 등이 포함된다. 이들의 숫자는 점차 늘고 있으며, 2050년에 이르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인프라노마드는 전 세계 이주 이동의 큰 부분을 이루며 각 사회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한다. 선진국들은 자국으로 몰려드는 인프라노마드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정착민은 농부와 공무원, 한 곳에 소속된 노동자, 자영업자, 의사, 교사 등으로 과거 역사의 주류였으나 이제는 인프라노마드와 하이퍼노마드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며 불안감시달리고 있다. 언제든지 인프라노마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공포와 하이퍼노마드의 대열에 끼고 싶은 열망이 동시에 엄습해 그들을 괴롭힌다. 또한 노마드가 지역사회에 남기고 떠나온갖 문제들을 처리하는 무거운 짐도 짊어져야 한다.


하이퍼노마드 자발적으로 노마드가 된 부류이며,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글로벌 기업의 고위 간부, 연예인, 연구원, 영화감독,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이 바로  번째 세계화의 주역이다. 하이퍼노마드는 특정 국가 또는 지역에 아무런 애착이 없으며, 이익이 있으면 머물고 없으면 미련없이 떠난다. 인프라노마드와 달리 하이퍼노마드는 많은 국가로부터 환영받는데, 각 국가는 최첨단 산업의 발전을 위해 이들에게 온갖 혜택을 제공하며 좀 더 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란다.


부를 과시하며 자유롭게 전 세계 곳곳을 투어하는 기업가들과 연예인을 보고 정착민들은 하이퍼노마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한다.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한 개인주의, 남의 시선에 아랑곳 않는 뻔뻔함(혹은 무관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자유로움,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쿨함,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하나 걸친 편한 복장, 태어날 때 얻은 이름과 국적(심지어 성별) 같은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바꾸면서 주어진 틀을 거부하는 태도, 낯선 사람과의 즉흥적인 만남, 새로운 감각과 쾌락 추구, 과감한 위험 감수 기질 등. 이 모든 성향은 노마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자연스럽게 내면에 체화시킬 수 있다.


"불안정한 정착민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의 여행과 노마디즘과 관련된 강렬한 감각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관광과 스포츠,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여행, 조아한 사치, 망각을 위한 여행의 기본 형태인 기분전환이 그런 것들이다."



은자의 나라 밀어닥친 세계화 물결


세계가 이렇게 여러 차례의 세계화로 난리인 와중에, 동아시아의 한국은 은자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외부와 격리되어 농경을 숭상하며 정착생활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미소군정기를 거치면서 더 이상 외면하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세계화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이 때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 1948년 발표된 김동리의 소설 <역마>다.


<역마> 주인공 성기는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어머니 옥화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옥화는 성기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기가 자신을 홀로 남겨놓고 떠나버릴까 두려웠던 옥화는 성기를 절에 보내 승려로 만들려고도 하고 책장사를 권유하며 어떻게든 정착시켜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성기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어디론가 훨훨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기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체장수가 그의 딸 계연과 함께 화개장터에 도착해 옥화의 주막에 머물게 된다. 옳거니, 성기를 계연과 짝 지어주어 가정을 꾸리게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옥화는 둘을 이어주려 살살 분위기를 잡는다. 성기와 계연도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꼈고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옥화가 계연의 머리를 빗어주다 귀 뒷편에 있는 사마귀를 발견하고 체장수가 사실은 36년 전 화개장터에 들러 옥화의 어머니와 밤을 보내고 떠난 자신의 아버지이며, 계연이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알게 된다.


이모와 조카를 맺어줄 수 없었던 옥화는 체장수와 계연을 떠나보냈고 성기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충격적인 이별에 상심하고 몸져눕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두릅회와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켜고 난 뒤,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화개장터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롱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들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농경문화 속 정착생활을 상징하는 어머니 옥화와 근친 유전자를 가진 한국의 폐쇄적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계연 모두와 이별하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던 성기의 운명은 당시 한국 사회 전체가 맞아야했던 운명이기도 했다.



K-노마디즘은 어떤 모습이 될까


<역마>가 발표되고 7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성기 앞에 놓였던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놀라울만큼 세계화의 길을 성공적으로 지나왔다.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말 오랜 세월 한반도에 갇혀 극도로 배타적인 을 고수하던 집단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우리는 외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면서 경제와 문화발전을 이룩해냈다. 독일과 중동을 시작으로 해외 근무자가 늘어났고,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해 해외로 수출했으며 선진국에서 공부한 유학생들이 최첨단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귀국하여 IT 강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케이팝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식 대중문화를 퍼뜨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역시 세계화에 따르는 노마디즘의 침투와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액의 연봉을 받는 기업가와 강남에 빌딩을 샀다는 연예인의 화려한 삶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동시에, 안정적인 직장이 사라지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으로 넘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도 점차 늘어나 사회에 문화적 갈등과 외국인 혐오가 번지있다. 국가와 집단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구세대와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신세대 간의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그동안 눈부신 성공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며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서구 선진국들이 수 세기에 걸쳐 처리해 온 문제들을 한국은 훨씬 짧은 기간 안에 풀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다시 문을 걸어잠그고 은자의 나라로 돌아갈 것 같진 않다. 수 백년 해봤으면 됐지 뭘 또. 어떻게든 한국만의 방식을 찾지 않을까. 바깥 세상은 넓고 아직도 가봐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오랜 시간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이제야 여행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나라의 문을 닫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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