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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도 Sep 12. 2023

테슬라와 직립보행

위이잉 소리를 내며 테슬라 차량이 미끄러져 지나간다. 매끄러운 곡선이 우리 시대 최첨단 기술과 디자인을 한 몸에 담은 차체를 우아하게 감싸고 있다. 정말 아름답다. 뱀파이어에게 매혹되는 여주인공이 이런 느낌일까.


흔히 테슬라 앞에 붙는 수식어는 '전기차'이지만 전기를 연료로 주행하는 자동차라는 속성은 테슬라가 가진 잠재력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본질은 '자율주행'에 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테슬라 차량들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며 인공지능의 학습을 돕고 있다. 이로 인해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가속도를 높여간다.


테슬라 외에도 바이두, 웨이모 등 IT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개발 중에 있고, 전 세계 자본시장의 투자금이 몰리며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혁신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도로 위를 질주하는 무인 자율주행 차량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의 주권을 박탈하고 우리를 상품으로 전락시키며 끝장낼 예정다. 뱀파이어처럼.



직립보행으 주권을 얻은 인간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전 대륙으로 퍼지며 문명을 일으켰다. 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수단의 의미를 넘어 본인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주권적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처음 달에 인간이 발을 내딛었을 때 사용된 '작은 발걸음, 커다란 도약'이라는 표현에 이러한 철학이 잘 담겨있다.


말이나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에 걷는 행위가 타는 행위로 일부 바뀌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말과 자동차를 모는 행위는 직립보행의 연장으로서 어디로 갈지 또 어느 속도로 움직일지 선택권과 주도권은 인간이 쥐고 다. 운전자는 자신의 생각(또는 기분)에 따라 목적지를 결정하고 탈 것에 올라 방향을 잡으며 속도를 조절한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운전하지 않고 대신 운전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운전을 맡기는 데 그다지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주권을 빼앗긴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율시각 안경'이라는 게 있어서 안경을 썼을 때 안경우리에게 가장 유익할 것 같은 사물 또는 풍경만 포커싱 해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 기술에 엄청난 반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어디를 쳐다볼지를 기계가 결정하다니. 하지만 자율주행 차량에는 그 정도의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자율주행 그거 뭐. 나 대신 택시기사가 운전해주던 거 택시기사 대신해서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거 아닌가. 가는 길에 대형 스크린으로 콘텐츠 좀 보여주고 더 좋아지긴 하겠네.' 문제는 택시기사가 돈을 버는 방식과 자율주행 택시가 돈을 버는 방식이 다를 거라는 점이다.



사용자를 상품으로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에서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기업들은 플랫폼과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사용자에게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사용자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활용해 광고 게시판을 만든 다음 광고주들에게 게시판 자리를 경매를 통해 판매하면서 수익을 창출한다. 이 때 사용자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상품이 되는데, 신규 사용자를 끌어모으고 그들을 최대한 오래 플랫폼에 머물게 하여 풀을 키우는 활동 곧 상품의 양과 구색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상품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면, 네가 바로 상품이다."



아마 자율주행 택시(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고 인공지능과 클라우드에 연결된 무인 택시. 차 껍데기는 누가 만들었든 상관 없다)는 사용자들에게 무료 또는 구독을 통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대신 가는 길에 특정 장소에 잠시 들렀다 간다. 특정 장소는 당연히 사용자 대신 택시비를 지불한 광고주의 영업점이다. 그곳에서 뭔가를 구매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냥 잠시 들렀다 가는거고 자율주행 기술이 워낙 뛰어나서 인간 운전자가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다이렉트로 가는 속도보다 자율주행 택시가 한두군데 살짝 들렀다 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방식이다. 해외로 패키지 여행을 가면 가격이 저렴한 대신 투어 중간중간에 쇼핑몰에 내려 잠깐 머물러야 한다. 물건을 살지말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어쨋건 머물긴 해야한다. 쇼핑몰 주인이 패키지 여행의 비용을 일정부분 부담했으니까. 물론 택시기사도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승객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서 타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어느 광고주에게 이 승객을 판매해야 할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택시기사는 모든 금액을 승객으로부터 받 밖에 없다. 하지만 자율주행 택시는 다르다.


자율주행 택시 앱에 로그인 되어있는 사용자는 이미 과거에 어떤 장소를 얼마나 자주 방문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남겨놓았다. 거기에 개인 소셜미디어 등을 연동하면 어떤 취향과 기호를 가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훨씬 풍부해진다. 택시에 타는 순간 대형스크린으로 콘텐츠를 보여줄 예정이기 때문에 계정 연동은 무척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방금 막 호출한 승객에 대해 순식간에 분석을 끝낸 자율주행 택시는 곧바로 해당 승객을 구매할 광고주를 인근 지역에서 모집하고 경매를 통해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들러야 할 영업점을 결정한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자율주행 택시가 자신의 물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할 확률이 높은 승객을 데려올 예정이기 때문에 경매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운전하는 주체에서 운반되는 상품으로


처음에는 목적지에 가는 도중 광고주의 영업점에 들리는 정도로 시작하겠지만, 나중에는 아예 광고주의 영업점이 목적지가 될 것이다. 퇴근 후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여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회사원에게 자율주행 택시 앱이 넛징 메시지를 보낸다. '이봐, 요새 굉장히 핫한 술집이 있는데 안 가볼래. 회사 앞에 우리 차량이 기다리고 있어. 공짜로 데려가줄게.' 이런 비즈니스 모델 역시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다. 회사 근처 술집 거리를 지나다보면 이른바 삐끼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자신들의 가게로 끌어당기지 않는가. 다만 반경 몇 미터 내의 고객을 타겟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삐끼와 달리, 자율주행 택시는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타겟팅이 가능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종 식당으로, 유흥가로, 도박장으로, 심지어 정치 집회장이나 종교시설로 운반될 것이다. 법이 허용하는 선 최대한 바깥 범위까지, 가장 높은 광고비를 지불하는 광고주에게로.


사실 실제로 어떤 순서를 거쳐서 자율주행 택시가 승객을 광고주의 영업점으로 데려가는 미래가 올지는 알 수 없다. 법적 규제의 문제도 있고, 사용자 경험이 자연스럽매끄럽게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을 광물자원과 같은 상품처럼 종류와 등급을 나누어 분류하고, 이들을 (자율주행 기업 입장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게 창출되는 장소로 옮기면서 수익을 얻을 때 기업의 이익이 극대화 된다는 점이다. 마치 광물 채취 기업이 원산지에서 채굴된 광물을 종류별로 등급을 매겨 쪼개고, 각각의 상품을 세계 각국의 제조 기업들과 흥정한 가격에 나누어 수출할 때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이고, 엄청난 이익 극대화의 기회가 보인다면 결국 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가는 루트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상품은 매우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변덕도 심하고, 잘 나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트는가 하면, 어제 좋아했던 걸 오늘은 싫어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각 개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객관적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쌓이기 시작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무엇을 좋아해야 하고 원해야 하는지 조작도 가능해졌다. 인간 상품에 대한 분석과 분류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얹어 이동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드디어 상품으로서 훌륭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광고주들에게 팔아먹기 아주 좋아지는 것이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로보 택시의 경제적 가치는 구글보다 크다"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다. 단순히 광고만 해주는 서비스와 고객을 아예 영업점으로 데려와주는 서비스 중에 어떤 것에 광고주들이 더 매력을 느끼고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을 지는 누가봐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회 분열의 완성


자율주행 택시가 보편화되고 대중교통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낮은 비용으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차원의 사회적 분열을 마주있다. 지금은 밖에 나가 걸으면서 돌아다니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마주친다. 심지어 택시를 타고 이동해도 택시기사라는 타인을 만나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경험한다. 하지만 자율주행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심지어 걸어가도 되는 아주 짧은 거리도)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과 아예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마주치더라도 나와 상당히 유사한 사람만 만날 확률이 높다. 자율주행 택시의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만한 장소를 어찌 이리 잘 아는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으로 척척 데려가 주기 때문이다. 실수로라도 '이상한' 사람이 있는 장소로 갈 일은 없다.


게다가 자율주행 택시는 겉모습은 비슷비슷하게 일반 차량과 별 차이점 없는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승객이 앱으로 호출을 하는 순간 내부는 해당 승객에 100% 맞춤형으로 바뀌게 된다. 차량 내부 공간은 승객이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으로 꽉 차고(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자율주행 택시를 한 번만 같이 타보면 된다), 평소 필요로 하고 원했던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유혹의 눈길을 보내며 지금 당장 이곳으로 오라고 손짓할 것이다. 누가 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관으로 변신하는 자동차. 우리는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만의 세계에 끊김없이 머물 수 있게 되고(움직일 때는 자율주행 택시로, 멈춰 있을 때는 소셜미디어로), 본인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이질적인 세계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아무 지장이 없다.


경제적 능력과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특정 지역에 몰려사는 부동산 계급화와 더불어 소셜미디어의 필터 버블로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지속적으로 보면서 스스로의 세계갇혀버린 우리들. 이제는 바깥 세상을 돌아다닐 때조차 타인과 마주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진정한 '알아서 각자 제 갈 길 가자'의 세계가 완성된다. 이제 더 이상 갈등도 타협도 협력을 통한 진보도 없다. 그냥 혼자 알아서 사는 시대가 온다. 남이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서로 비슷해서 싸울 일 없는 사람들만 만나고, 아름답고 편안한 세상만 보고 살면 된다. 남이야 어찌되건 말건. 이제 주권이 실현되는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우리는 그저 독방에서 상품으로 팔리기를 기다리며 각개전투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피할 수 없는 파괴적 미래


역사를 살펴보면 실현가능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실현되었을 때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위험하고 파괴적일지라도 결국 시도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원자폭탄이 그 예다. 자율주행 기술이 가져올 파괴적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걱정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자율주행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자율주행이 보편화되고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 온갖 법과 규제로 막으려고 하면 기업들은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내고 자본과 인맥을 동원해 정치권과 언론을 설득할 것이다. 자율주행이 너무나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자율주행 기술이 무척 편리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가격도 싸고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잘 아는지 마치 개인 비서처럼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알아서 여기저기 데려가주니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중독될 판이다. 기업은 기술을 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고객은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객의 사용량 많아질수록 축적되는 데이터가 늘어나 인공지능은 더 정교해진다. 그리고 업그레이드 된 인공지능은 고객에게 보다 나은 자율주행 경험을 제공하고 사용량은 다시 한 번 증가한다. 선순환의 플라이휠은 점차 빨라지고 거대해지며 자율주행은 지금의 스마트폰 이상으로 우리에게 필수적인 존재가 된다.


글의 서두에서 자율주행이 우리를 끝장낸다고 말했는데, 솔직히 좀 오버했다.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각종 규제와 법률을 통해 안전장치를 만들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빅테크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며 인간의 주체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극단적인 분열과 청소년들의 우울증 등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공동체의 파괴와 혼란이 가속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인류의 시작 지점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직립보행의 주권침탈하려 하는 자율주행 기술.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우리가 어디로 갈지 결정하게 된다.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은 소셜미디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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