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졸업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그 가을에 나는, 첫사랑과 재회를 했고..
8월에 촬영을 시작했던 <낮은 목소리>는,
스탭들 모두가 중국으로 촬영을 떠났으며..
이대 총학생회 선거의 이상한 징크스에 따라-
우리 진학련 후배들은, 선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때의 나는,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한 꿈을 한창 키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부모님께도, 첫사랑이었던 그 분께도,
(모두가 반대할 것이 자명했으므로;;;)
내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마음만 복잡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엄마처럼 따랐던 여성학과 장필화 교수님이,
내게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을 던지셨으니-
(총학생회 여성국장이었던 나는 당연히!
여성학과 교수님들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장선생님이 특히 예뻐해주셨다)
“졸업하고, 대학원에 바로 올 생각은 하지 말고!
1년 만이라도, 취직해서 사회 생활을 경험해봐.
그러면 내가 연구생으로 받아줄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인즉슨-
여중- 여고- 여대를 거쳐오며, 여성들 사이에서
줄곧! 온실 안의 화초처럼 살아왔으니-
경험이 짧은만큼,
여성학 공부도 머리로만!!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진정 가슴으로!! 여성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세상 밖으로 나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남성들과도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그 후에도 계속 여성학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교수님이 바로 연구생으로 받아주시겠다는 거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교수님이 뽑은 조교로, 시험 없이 대학원에
입학하는, "연구생" 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도 있고, 완전 수긍이 되기도 해서,
그럼 어디에, 어떻게 취직을 하지? 고민하던 차에..
딱! 그 때.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우리 과 학과장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우리가 수박 밭에서 농활을 하고 있을 때.
양손에 수박을 사들고 응원 방문 오셨던..
바로 그 교수님이셨다^^)
취업률이 중요했던, 학과장 교수님의 추천으로..
나는 난생 처음. 직장에 취직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때는..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대부분 취직은 되었던.. 좋은 시절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여의도에 있는 주방용품 전문 회사였는데..
"주방용품"은, 딸이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흡족했고..
"여의도"는, 마포의 집과-
첫사랑 그 분의 직장(?!)과도 가까워서..
겉으로 볼 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
모든 그림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으나..
정작 나는,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지니-
이 이야기는 바로 다음에.. 이어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