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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Oct 08.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9. 죽음에 관하여



사방에서 똥 냄새가 진동했다. 

이것은 아빠가 가르쳐주고 함께 채취했던 열매다. 그리고 이맘때면 아빠의 술상 위에도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들이 바닥에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 내가 아무리 종종거려도 밟을 수밖에 없다. 

난 아예 차도로 걸어갈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왜 나무의 열매에서 똥 냄새가 나는 것일까,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꼬랑내다. 

표준어를 써볼까? 그래, 고약한 발냄새다. 근데 나의 엄마와 아빠는 저 열매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난 극한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날이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저 발꼬랑내 나는 것을 프라이팬에 볶더니 기다란 이쑤시개에 다섯 알을 끼워 내 입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엄마가 말했다. 콧속으로는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들어왔다.


“어쩔 수 없어, 입 벌려”


아주 강압적이었다. 미운 우정이 옆에서 거들었다.


“너 이거 먹어야지 오줌 안 싼데”


하더니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키득거렸다. 

내 입까지 가까이 온 이상, 내가 이걸 먹지 않는다면 엄마가 내포하고 있는 사나운 기운을 들춰낼 것이다.


나는 꼬랑내를 입안에 받아들였다. 

그 순간, 소금의 짭짤한 맛이 느껴지더니 이내 쫀득함이 올라오고 빠르게 쓴맛이 느껴진다. 꼬랑내가 날 것을 대비해 난 그것을 대충 씹어 꿀꺽했다. 이상하다. 꼬랑내가 사라졌다. 


이 열매가 오줌을 멈추게 해 준다? 

신기한 열매가 아닌가, 젠장. 어디서 누가 가르쳐준 이야기일까? 

엄마의 간절함과 기대감, 언니 우정의 비웃음에도 무색하게 다섯 알의 은행은 나의 오줌을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할아버지가 긴 여행을 간 틈을 타 외식을 했다. 

우리 가족의 외식은 사실 아주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짐을 싸 들고 오기 전에는 더 자주 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없는 틈만 타 외식을 하는 건 아니다. 

이기적인 할아버지에 비해 나의 아빠는 세상에 없는 그런 효자였으니까. 


아직도 그 초밥집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확실히 기억한다. 왜냐면 나의 큰 이모와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시골에서 초밥집을 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오늘 외식 장소는 초밥집이다. 

그곳 사장님은 우리 세 남매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내 기억에 우리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까지도 길거리를 지나가던 우리를 알아보며 아빠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우린 단골답게 하나의 방을 완전히 차지했고 우리 가족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이지 화기애애했다. 

외식은 아빠를 위한 메뉴가 일 순위다. 나의 엄마도 회를 좋아하긴 했지만, 난 정말 회를 싫어했다. 

날 것을 죽이고 피를 빼고 살점을 얇게 썰어서 먹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집에서 유일하게 날 것이 아닌 김밥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여전히 난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다.


아빠는 술이 조금 얼큰하면 꼭, 우성이를 괴롭혔다. 그것은 우성이에 대한,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아빠의 유난스럽고 지나친 애정 표현이었다.


우성이는 매운탕이 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이번에는 맵지 않다고 밥을 꾹꾹 말아 빨간 국물을 가득 떠서 우성이에게 먹였다. 처음에 우성이는 음,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난리가 났다. 

매운맛을 고통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성이는 자신의 혀를 손가락으로 긁다가 이내 짜증이 났는지 엉엉 울며 그 손가락으로 눈까지 비볐다. 

큰 사달이 난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어쩔 줄 모르는 하나뿐인 아들의 모습을 보고 웃음꽃을 피웠다. 


아, 아들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거친 것이라니, 난 사양하겠다. 

이렇게 아빠의 장난은 늘 너무 과했고 뒤처리는 엄마가 담당해야만 했다. 

우린 그 분위기에서 아슬아슬함을 잘 버텨내야만 했다.

 엄마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무서운 말 한마디가 나왔다.


“장난을 쳐도 정도껏 해야지”


우성이를 달래는 건 또 엄마의 차지다. 

이내 잦아들었는지 우성이의 코가 벌겋게 물이 들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엄마도 오늘은 소주잔을 두 번이나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엄마와 아빠의 대화는 정말이지 아슬아슬하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투는 아빠를 굉장히 원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무슨 얘기를 꺼내 놓으려 하면 엄마는 무조건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아빠의 말로 하자면 “무슨 말만 하면, 아주 물어 먹는 소릴 해.”라는 식이다. 

사람을 누가 문다면 정말 아프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듣지도 않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답을 한다거나, 말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다는 공포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아슬아슬한 식사가 끝나고, 아빠는 약속대로 우성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그럼 그렇지, 아들에 대한 사랑의 결론은 달콤함이었다.


물론 나의 손에도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난 사실 이렇게 사 먹는 아이스크림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는 오렌지 맛 샤베트(셔벗)가 더 맛있었다. 

억지로 받아 날름, 했지만 고맙게도 남은 아이스크림은 아빠의 입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내 생각으론, 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빠가, 아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조금 수상해 보였다. 그럼 그렇지, 결국 아빠는 5동에 사는 아저씨와 길에서 만나,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이 만남이 우연을 가장 한 건지, 정말 우연이었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를 남겨 두고 도망치듯 시장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엄마의 내 천 자는 좀 더 깊어 보이지만 오늘은 그래도 우리에게 소리치진 않았다.


엄마는 우리를 그 시절 굉장히 유명했던 조다쉬 가게 안으로 데리고 갔다. 말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 모양은 언제 봐도 우스워 보인다. 이 메이커는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굉장했다. 


나의 엄마는 우리에게 꼭 이렇게 비싼 옷을 입히고 비싼 신발을 신게 했다. 

그땐 몰랐지만 이건 엄마의 가장 중요한 자존심이었다고 한다. 


우성이는 오늘 겨울에 입을 코듀로이 바지를 샀다. 

우성이의 코듀로이 바지는 집에도 많았다. 하지만 뭔지 모를 공허함을 지닌 엄마에게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빨간 고리바지, 우정이는 체크 모양이 들어간 조끼를 샀다. 


난 우정이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는 옷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엄마가 우리 셋에게 마치 선물이라도 하는 듯, 공평하게 옷을 사준 것이다. 내일 이 바지를 입고 학교를 갈 생각을 하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우린 집에 돌아와 아빠가 없는 틈을 타 보고 싶었던 쇼 프로그램을 보았다.

아빠가 집에 있었다면 텔레비전을 본다는 건, 아, 상상하기 힘들다. 

함께 본다고 해도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은 씨도 안 먹히는 얘기다. 


그때 전화가 울렸고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릴 때를 잊었는지 엄마는 아빠의 부름에 아주 빠르게 응했다. 

절대 물어 먹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진짜 천국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주 다정하게 말했다.


“늦을 수도 있으니까 10시 되면 자, 무슨 말인지 알지?”


우리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우정은 어차피 우리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 

우성이는 하늘색 이불을 거실로 갖고 나와 서랍 사이사이마다 이불을 끼워 넣어 주머니 같은 모양의 자신만의 본부를 만들었다. 

나는 서랍장이 무너질까, 걱정했지만 작은 우성이 무게를 잘도 견디는 것 같아 안심했다.


나는 나의 여우짓을 위해 엄마의 화장품이 가득한 안방을 선택했다. 

형광등을 켜자마자 펼쳐진 이 많은 화장품의 정체들이 내 눈 속에서 반짝거렸다. 


이제부터 난 여수(여우) 짓을 할 생각이다. 


우선 선택된 건, 엄마의 보라색 립스틱이다.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이것을 티 나지 않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많이 닳아 있는 립스틱을 선택하는 거다. 


나는 엄마처럼 에, 하는 입 모양을 만들며 입꼬리가 귀에 닿을 것처럼 올렸다. 립스틱을 몇 번 펴 바르며 엄마처럼 빠빠빠,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한번 골고루 색이 물들도록 만든다. 그리고 하얀 분이 담긴 통을 열어 얼굴 전체에 펴 바르면 얼굴이 하얀 달걀처럼 변해 버린다. 

이렇게 눈만 동동 떠 보일 때에 눈두덩이에 립스틱과 비슷한 색을 펴 바른다. 


아, 이 얼굴이야말로 정말 예뻐 보인다. 

아니, 왜 어린아이들은 화장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어른은 되고 아이들은 안 되는 건 세상에 너무 많고 불공평하다. 

뭐,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찬성이지만 화장하는 건 좀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미적인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왜 해가 된다는 말인지.

화장한다고 잘못되는 일은 없다. 

잘못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가정을 하는 어른들의 눈이 옳지 못한 것이다.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이런 거 안 해도 예뻐, 그리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귀찮을 정도로 하고 다녀야 해,라고 말한다.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것과 내가 지금 하는 것은 정말 다른 것이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예뻐지고 싶은 거다. 

어른이 아닌 바로 지금.


완벽하게 준비된 나는 이제 베란다로 나가 신발장을 뒤져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구두를 발견했다. 엄마는 대체 이런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니는 거지? 

족히 십 센티는 되어 보이는 갈색 구두를 선택했다. 

앞 코가 둥글고 뒷굽은 진짜 굵고 길다. 난 너무너무 기뻤고 얼른 발을 넣어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높다니, 조금 힘든 걸음걸이지만, 난 구두의 또각또각, 하는 소리를 좋아했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그런 소리를 늘 찾았다.


자, 이제부터는 런 어웨이다. 

나는 베란다를 끝에서 끝까지 지칠 때까지 허리가 아플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앗, 한참 후 우정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니들 잘 준비해, 그리고 다 치워 알았어?”


하며 백설기가 된 나의 얼굴을 확인하며 입 모양은 쒸, 하는 모양을 하고 눈은 천장까지 올라갈 것처럼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얼른 구두를 다시 신발장에 넣고 베란다 문을 꼼꼼히 잠갔다. 

오랫동안 나가 있었더니 한기가 몰려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만의 본부 속에서 얼굴만 내미는 우성이가 한마디 한다.


“아우, 귀신같아 엄마한테 일러야지”


“쳇, 일러라”


나는 빠르게 세수했다. 

입술과 눈은 더욱 박박 씻어야 한다. 엄마가 사준 로션에서 딸기 향이 가득했다. 

화장이 덜 지워졌는지 눈두덩이가 조금 반짝거리기는 했지만 이런 건 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분명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엄마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시력이 좋지 않은 엄마가 다행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늘 밤은 왠지 우정이 옆에 딱 붙어 자지 않아도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따라 바삭거리는 이불의 감촉이 나의 아드레날린을 사방에 날려 준다. 우리의 자유는 생각보다 짧았고, 그 시간에 만족했다. 나는 아주 얌전하게 조용하게 잠이 들었다.


아니 벌써 아침인가, 집 안에 온갖 불이 다 켜져 있었다. 

아직 밖은 캄캄했다. 그리고 아빠의 낮은 음성이 조금 무섭게 들렸다. 엄마는 말없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고, 언니 우정은 엄마에게 뭔가 당부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은 아직 새벽 다섯 시다. 에게 무슨 일이지? 우성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 다행이다. 우성이는 아직 곤히 자고 있었고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우정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쳇, 역시 대답해 줄 리가 없다. 엄마와 아빠는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밥은 차려 놨으니까, 동생들 잘 챙겨서 먹여 
 우성이는 좀 더 일찍 나가야 하니까 잊지 말고, 우정이 무슨 말인지 알지? 
 엄마가 말 한대로만 해, 그리고 우재도 시간 맞춰서 학교에 가고, 학원도 다녀와
 알았지?”


나는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다시 어둠을 뚫고 나갔다. 


정말 궁금증이 폭발하기 직전인데 우정이는 정말 얘기를 안 해줄 모양이다.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지가 뭐라고 아주 어른스럽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린 다시 잠이 들었고, 우정은 엄마 말대로 우리를 챙겼다. 

아니 우성이를 챙겼다. 나는 뭐 늘 그랬듯이 내가 잘 알아서 했으니까 저 우정이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는 머리카락도 내가 묶었다. 

요즘 최신 유행하는 옆으로 묶기다. 그리고 엄마가 사준 죠다쉬 고리바지를 입었다. 


와, 내가 봐도 정말 예쁘다. 우성이를 챙기는 우정이를 보고 있으니, 제법 어른스럽기는 하다. 

우성이가 밥을 먹을 때도 꽤 챙기는 모양새다. 언니는 언니인가 보다. 

묵직하게 말했다.


“고모부가 돌아가셨대”


우성이와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간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아 서로를 멀뚱 거릴 뿐이다.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우린 평소와 똑같이 하면 돼”


뭣? 쟤는 말도 참 못되게 한다.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니, 우린 그냥 평소와 같이 하면 되는 거라고? 최소한 고모부를 위해 기도하자,라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를 나를 그렇게 귀하게 귀여워해 주는 고모부가 죽음 속으로 들어갔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왜냐면 며칠 전까지도 우린 고모네 집에 다녀왔고, 그때도 고모부는 나를 간지럼 태우며 숨이 넘어갈 때까지 웃게 해 주었는데, 죽음이란 놈이 고모부를 데려갔다고? 

믿을 수가 없다. 


저 못된 우정이는 어쩜 저렇게 냉정할 수가 있다는 말 인가,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말한다. 

어쩐지 지금 생각해 보니 눈 흰자위가 붉어진 아빠가 떠올랐다. 

표정이 없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도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 그렇다면 고모부가 없으니, 사촌 언니들과 오빠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고모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빠가 없는 게 아닌가, 남편이 사라진 게 아닌가, 이건 정말 대 사건, 대 슬픔의 사건이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난 숟가락으로 밥을 푸다 말고 극한의 공포가 밀려와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우정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번에는 우정이도 나의 눈물을 모른 척했다.


나의 착한 고모부는 술을 밥처럼 먹었다. 

어른들 이야기를 빌 자면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밥 대신 술을 먹었기 때문에 깡마른 몸과 튀어나온 광대가 아찔해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고모부는 늘 웃는 사람이었다. 


어른들은 고모부에게 늘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찌르는 듯한 단어로 비유하며 고통을 주는 말을 했지만, 늘 웃는 고모부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난 정말 고모부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늘 웃었고 그 뒤에는 한숨이 끊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고모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고모의 마음을 우리는 너무 이해한다. 

먹어야 할 음식은 뒷전이고 늘 술만 먹었으니, 고모의 웃음이 말라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모부는 우리가 가면 우성이나 나를 바닥에 뉘어 놓고 노래를 불렀다.

단 법칙이 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우린 고모부를 벗어날 수 없었고 고모부가 태우는 간지러움을 꼭, 이겨내야 했다. 

그때 그게 눈물을 쏙 뺄 만큼, 숨이 넘어갈 만큼 웃겨서 고통스럽기도 했다. 

너무 웃기면 정말 숨이 너머 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고모부가 입을 아, 하고 벌리며 크고 기다란 눈을 갈매기처럼 굽으며 방긋, 웃고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행복한 사람이 머무는 그곳, 천국 말이다.


고모부의 둥실둥실한 목소리와 갈매기 눈, 걸쭉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주구천동 장 스방 아재가, 콩 두 말을 팔아서

대포 한 잔에 안주 한 접시 밤길을 비틀비틀♬ ♪


내 기억이 맞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이 노래는 마치 고모부가 장 스방(서방)이라도 된 듯, 비틀비틀, 고모부에게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모부는 이 씨 성이다. 


이 노래처럼 노래를 부르며 진짜 비틀거리는 고모부를 보기가 고모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슬픔은 조금씩 날아가는 법, 추억은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고모부가 그곳에서는 좀 더 평화롭게 하느님과 술 한 잔 기울이며 고모의 소원대로 맛있는 안주도 입에 넣었으면 좋겠다. 만약 안주를 입에 넣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호되게 혼을 내주길 바랐다. 


어른들은 말한다. 어린아이, 아직 어려, 아직, 나중에 알게 돼,라고 스무 살이 된 내게도 그런 말을 귓속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가끔은 난, 어른들이 피하기보다는 죽음이란 것에 관해서, 또는 어떤 지옥과 같은 것이 눈앞에 떨어졌어도 우리에게, 나에게 설명을 해 줬으면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어 주기만을 바란다. 


난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처음, 죽음이란 단어와 느낌을 경험했다. 그것은 마치 숨겨야 할 감정으로 받아들여 내 머리에 꽉 박혀 다른 방법으로 습득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죽음이란 것을 외면, 이라는 감정으로 알려 준 것과 같지 않은가 말이다. 

어린 나의 감정도 죽음이란 것이 슬픈 노래 같은 것이란 걸, 얼마든지 아는 나이이다. 

간혹 아빠가 『섬 집 아이』를 부르면 눈물이 핑, 도는 그런 감정,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그 절망감을 말이다.


난 그곳으로 간 고모부를 위해 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 라 말하는 어른들의 말은 죽은 자를 위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또한 나를, 우리를 사랑해 준 고모부가 아니지 않은가, 어른들의 위로 만이 고모부를 달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 우리에게도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난 기도했다. 그리고 난 아직도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아주 행복했다는 뜻일 거다. 

고모부의 추억 속, 한 장에도 내가 행복이란 단어로 실려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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