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봉 Oct 07.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7. 오늘만 외동딸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엄마와 난 아침 일찍 시외버스에 올랐다. 

얼마 전 아빠 엄마와 함께 내원한 병원을 다시 내원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환자가 되어 내원한 병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오줌싸개 시절을, 엄마는 이제 끝장을 내주고 싶어 했다.

난 많은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피를 뽑는 건 정말 무서웠지만 어려운 건 없었다. 오늘은 그 결과를 듣기 위해 가는 길이고 날카로운 주사를 다시 찌르는 일도 없을 거라 단단한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붉은 성도 가지 않는다. 

나의 엄마와 단둘이 버스도 타고 맛있는 점심도 먹을 것이다. 


에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엄마는 온전히 나를 위해 슈퍼에서 먹을 것들을 잔뜩 샀다. 

솔직히 난 차멀미가 심했기 때문에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도 늘 잠만 자던 아이다. 하지만 엄마를 독점한 오늘은 절대 멀미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의 일생일대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온전히 홀로 차지한다는 건, 진짜 외동딸이 되어 본다는 건 아주 기쁜 일이지 않나, 나는 버스의 창가 쪽에 앉아 내내 엄마의 손을 꼭 잡아 놓지 않았다. 

내겐 조금은 거칠어진 엄마의 따뜻한 손이 이 세상의 어떤 선물보다 더 소중했다.


엄마는 내게 흰 우유와, 치즈, 그리고 달걀빵을 건넸다. 난 군것질도 그리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다. 

더군다나, 버스에서 치즈와 우유라니, 보기만 해도 멀미가 올라왔다.

난 아직도 그 기억 때문에 우유를 잘 마시지 못할뿐더러, 진한 치즈를 먹으면 어지러운 기분이 든다. 

아주 희한한 일이다. 

경험과 기억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망각이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과 함께 맞먹는다. 


난 엄마에게 절대 싫은 내색, 거절의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지금 온전히 나만 바라보고 우재, 우재, 우재야 하고 있진 않은가, 나는 그것들을 아주 조금씩 베어 물어 입안에서 녹이듯 아주 천천히 먹었다. 넘어가지 않은 치즈는 우유와 함께 넘겨버렸다.

아, 정말 이 맛은 버스 맛이다. 


엄마는 우리가 도착할 곳은 가깝다고 하지만,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나에겐 서울을 가는 거리와 같았다. 

난 태어나서 이렇게 참아 보기는 처음이다. 난 대단한 엄마의 딸이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나 할 까. 


내가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왔을 때, 드디어 버스에서 내렸다. 

엄마는 그제야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재야, 너 얼굴이, 이런”


난 입을 열기라도 하면 그것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손바닥으로 배를 가리켜 토하는 시늉을 했다. 

엄마는 갑자기 나를 빠르게 잡아끌어 구석진 자리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내 등을 계속 두드린다. 

아, 난 모든 것을 게워 냈다. 

나의 똥 주머니에 있던 찌꺼기까지 위를 통해 목구멍을 통해 모두 다 나온 느낌이다. 

나의 목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우웨웨웨웨웨웨웨액”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 소리는 엉덩이로부터 목까지 힘을 주게 하더니, 모든 것을 끌어모아 다시, 우웨웨웨웨웨액. 그리고 또다시, 우웨웨웨웨웨웩.


나의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색 코르덴(코듀로이) 바지에 하얀 것이 묻어났다. 

결국, 난 모든 것을 게워 내고 울었다. 

나의 폭포 같은 눈물은 게워 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가 아니다. 

황금 같은 엄마와의 시간을 내가 망쳐 버렸다. 예쁘게 단장을 하고 온 엄마는 창백한 얼굴의 멍청한 나를 챙기느라 바빴고, 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로 엄마가 다정하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 응?”


“으어어어어 어 미안해 엄마, 잘못했어”


“무슨 소리야, 잘못한 거 없어, 너만 괜찮으면 다 괜찮아”


이럴 수가, 나와 단둘이 있기만 하면 나의 엄마는 천사가 된다. 

어디 보자, 날개가 어디 있지? 

엄마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하, 아이고 웃겨
 이 조그마한 몸에서 우웨웨액, 소리 내는 거 보니 웃겨, 응?”


나는 엄마가 웃으니 나도 좋았다. 나는 쉰내 나는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으하하”


나는 화장실로 가서 입을 가셔 내고 세수도 했다. 

엄마의 손수건이 내 얼굴과 손을 모두 닦아주었다. 엄마의 파우더 냄새가 났다. 

마음과 고통스러웠던 배가 평화를 찾았다.


“이제 괜찮은 거지?”


“으응”


“이제 가자, 조금 일찍 나서서 다행이네”


엄마는 시내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창백한 내 얼굴을 보더니 택시를 잡았다. 

난 그때도 두 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내 얼굴 가까이 모으고 있었다.


“우재야, 그렇게 좋아?”


난 무슨 말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답했다.


“너무 좋아”


그리고 두 손으로 잡은 엄마의 손을 볼로 가져가 비벼 댔다. 

그때 엄마의 얼굴은 기쁨도, 슬픔도, 미안함도, 모든 감정을 내게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난 엄마의 눈동자에서 강 물의 너울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린 병원 앞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금액을 말하자 엄마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하지만 지금은 천사인 나의 엄마는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우리에겐 아직 30분이란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엄마는 너무 자주 아팠던 사람이다. 

내가 걸음마를 막 시작할 때도 엄마는 이곳에 입원했고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난 낯선 사람을 아예 상대도 하지 않고 밤새 울기만 했던 터라, 병원에 민폐를 끼칠 수 없어, 딱, 한번 나를 두꺼비 고모에게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별난 내가 어찌 두꺼비 고모와 밤을 보낼 수 있을까,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울기만 하는 독한 나를 보지 못하겠다고 경기까지 일으킨다는 고모의 말에 아빠는 병원에서 차를 끌고 새벽에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아빠를 보자마자 서러움에 복받쳐 울다, 딸꾹질하다, 지친 체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누워있는 엄마를 보자마자 또다시 서러워 엉엉, 울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엄마 대신 어쩔 수 없이 아빠를 선택했고 아빠가 가는 곳이라면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어디든지 따라다녔다고 한다. 

남자 화장실까지 섭렵했다는 얘기는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병원은 올 곳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린 병원 밖에서 30분을 기다리기로 했다. 

병원 앞에는 온갖 장사치들이 있었다. 여름이 다 간 길목에 웬 복숭아가 있을까, 라며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복숭아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격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마지막 복숭아라며 이제 맛보지 못할 테니 싸게 가져가라고 엄마를 홀렸다. 

검은 봉지에 복숭아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재야, 엄마가 이거 금방 씻어서 올 테니 여기 꼼짝 말고 앉아 있어, 알았지?”


난 예전부터 나를 홀로 두고 엄마가 밖을 나가도 이곳에 꼼짝 말고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도 그곳에서 정말 꼼짝하지 않고 졸고 있던 아이였다. 

잠깐의 시간은 엄마에게 걱정을 안겨주지 않았다. 난 그렇게 의자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중이다. 


검은 봉투 안에 남은 복숭아의 색이 참 예쁘다. 나는 털이 만져지는 복숭아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눈과 얼굴이 붓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느낌에 나는 얼굴을 비비고 눈을 비볐다. 결국 얼굴이 터질 듯이 따갑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난 무사한 날이 하루도 없는지 모르겠다. 


난 꾹, 참아야 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이다.


“우재야, 엄마 왔어, 자, 봐 깨끗이 씻어 왔어”


눈을 바로 뜨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더니 엄마는 또 한 번 놀란다. 

난 내가 싫다. 오늘 하루만 엄만 십 년은 더 늙어 버렸을 것이다.


“너, 이게 뭐야?”


“몰라 따가 와”


“아, 미치겠다 너 복숭아 만졌어?”


난 죄인답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마는 복숭아 봉투를 가방 안에 넣으며 다시 내 팔을 잡고 빠르게 뛰었다. 

엄마의 긴치마 단이 자꾸만 말린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마치 목욕하듯 얼굴과 손과 목을 모두 씻어 냈다. 

엄마는 작은 손수건을 빨아 나를 닦이고 다시 빨아 나를 닦이고, 를 반복했다. 이제야 내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따가움도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 덕에 난 조금 추웠다. 

엄마의 볼은 아예 빨갛게 물이 들었다. 둘만의 시간을 망친 나는 너무 속상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 엄마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우재야 어때? 이제 괜찮아?”


“응”


엄마는 가방 속에 있는 것들을 병원 의자에 쏟아 내더니 작은 로션을 꺼내어 내 얼굴과 손에 잔뜩 발라 준다. 

흐으으음, 이건 엄마 냄새다.

 흐으음, 향기롭다. 엄마의 긴 한숨이 들렸다.


“아아 아후우우우우우우”


“엄마 추워”


“어이구, 진짜 가지가지해”


엄마의 인내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꼭 하는 말이다. 

엄마는 엄마의 머플러를 내 목에 칭칭 감았다. 아직도 엄마의 온기가 그것에 남아 있었다. 

우린 그날 내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씻은 복숭아를 제외하고 남은 복숭아는 여섯 개 밖에 되진 않지만 우성이도 우정이도 좋아하는 과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복숭아를 도로 아주머니에게 갖다주었다. 산 가격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남겨 달라는 거래를 하는 모양이다. 


엄마는 말했다.


“차비는 벌었다 휴우”


내 덕에 우성이는 복숭아를 먹지 못한다. 

우정이는 뭐 안 그래도 맛있고 좋은 건 자기 혼자서 잘 먹으니까 죄책감 따위는 없다. 

나중에 꼭 우성이에게 맛있는 떡볶이를 사줄 거다. 


나의 검진 결과는 모두 정상이다. 

의사는 나의 심리적인 상태를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버럭, 화를 내는 것처럼 말했다.


“심리적인 문제요? 얘는 너무 정상이에요 무슨 말씀을...”


의사는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며 환경과 성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의사가 정말 족집게가 아닌가, 하고 놀랐다. 내가 생각해도 쓸데없이 돈을 써 가면서 이곳에선 나의 오줌싸개 시절을 고칠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더 잘 안다.

맞다, 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늘 두려움과 공포에 쫓긴다는 건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설명해야 할 시기를 놓쳐버렸고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의사는 다른 과를 소개하며 다른 검사를 엄마에게 권했다. 

엄마가 말했다.


“암튼 다행이야,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난 병원에서의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린 맛있는 점심을 먹고 생전 처음 가 보는 시장도 들러 시간을 보냈다. 

난 이 시간이 흐르는 것이, 해가 점점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냥 이대로 나와 엄마가 버스를 타고, 영주가 있는 서울로 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절대 멀미를 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내 동생 우성이가 슬퍼할 것이다. 

우정이는 엄마와 내가 없어도, 아니 오직 나만 없는 것은 찬성할 인간이다. 

자기가 소원하던 방도 홀로 쓸 테니까 말이다. 


우린 해가 질 무렵 버스를 탔다. 더 이상 해를 볼 수 없음에 눈물이 찔끔 났다.

난 다시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우재야”


엄마는 나를 보지 않고 버스 기사 아저씨의 뒤통수를 보고 말했다.


“혹시 밤에 무섭니?”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가 제일 무서워?”


“다 모든 거 다, 빛도 무섭고 그림자도 무섭고”


“다 무서워? 왜? 언니도 있고 엄마 아빠 우성이가 늘 함께 있잖아?”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언니는 무슨, 걔가 더 무서워,라고.


“엄마가 내 옆에 있는 건 아니잖아”


엄마가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시 내 천 자가 미간에 생겼다.


“아, 그렇지 엄마도 내가 둘이라면 좋겠어”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마음을 읽어 내기는 조금 힘들겠지만 난 노력할 것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어도, 용감하게 불을 켜고 화장실을 가는 거다. 


물론 다시 오줌을 싼다면 난 엄마와 또 이렇게 단둘이 오줌 여행을 올 수도 있겠지만 엄마가 힘들어 보이는 건 이제 보기가 싫다. 하느님께 텅 비어 있는 나의 방광을 위해, 절대 차지 않는 방광을 위해, 보송한 이불을 위해, 오늘 밤을 위해 나는 또다시 기도했다.


언니와 같은 용기를 내게 주신다면 정말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저 하얀 형광등의 스위치를 누르는 용기만 주신다면 언니도 미워하지 않겠다고 두 눈을 꼭 감고 같은 기도를 또 하고 또 했다.


젠장, 나의 방광은 비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그날 새벽 또 오줌을 쌌고, 이번엔 보기 좋게 침대 매트리스까지 스며들었다.


엄마의 악다구니가 섞인 비명이 들린다.


“으아아아악, 우재 너”


용기는 빌어먹을, 하늘은 내게 아주 많은 양의 오줌과 복숭아 귀신을 선물했다, 젠장.


                                                       



이전 06화 안녕, 나의 작은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