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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Sep 30.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5. 오렌지여, 영원하라



 

방학이 되면 우린 각자의 의견이 아닌 어른들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성당을 가야 했다. 

그것도 여름 성경 학교라는 것을 목표로 마치 학교처럼 매일 다녀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에게 방학이란 없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거다. 또한 우리가 이 성경 학교라는 곳에 가는 동안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엄청난 수다를 시작하며 혹여, 우리가 일찍 귀가라도 하는 날에는 미간의 움직임이 대단해진다. 이렇게 어른들은 정말 자기들 멋대로다. 

어떻게든 우리를 떨어뜨려 놓고 피곤하게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집단 같다. 


성당이란 곳은 어른들끼리 아주 잘 지낸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식들과 잘 지낼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성당에서 생활하는 나의 모습은 학교생활과는 굉장히 다르다. 


아마도 엄마 아빠, 온 가족이 함께 머무는 곳이라 자신감이 우쭐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성당에서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은 마치 엄마의 말처럼, 어기면 부정적인 것이 되었고 긍정적인 행동은 선함을 말하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이것은 아주 내게 피곤한 것들이었다. 

왜냐면 나는 나만 알고 있는 내 속의 부정적인 악마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주 음흉하게 치밀하고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에겐 좋고, 싫고, 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그리고 성당에서 사귄 친구들은 나의 친구 영주처럼 빛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짓궂고 욕을 더 많이 하거나, 또는 정말 사악하게 십자가에 대고 이상한 손가락 모양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저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아이는 모두 선하다는 (억지스러운) 믿음을 깨고 싶어 하지 않았고 게다가 우쭐하며 큰소리까지 외쳤다. 그런 가식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이곳이 진정 악의 구렁텅이인가 싶어 다시 한번 십자가를 올려 보고 기도했다. 


난 성당을 다니는 동안에는 성당 친구들과 늘 붙어 다니며 성당 생활을 나름 잘 하긴 했다. 학교생활보다 성당 생활에 심각한 관심을 보였던 엄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 같이 말썽꾸러기, 또는 시끄럽거나 욕을 하며 우당탕탕, 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내 한숨은 점점 더 늘어나는 중이었다. 


난 정말 우당탕탕, 하는 아이들이 싫었다. 어쩔 수 없이 난 그들과 어울리며 성당에만 다녀오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한 겨울, 다시 겨울 방학은 돌아왔다. 그렇게 영주와 나는 다시 편지를 쓰는 기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영주에게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왜냐면 영주가 말했다.


“우재야, 우리 이제 방방 타지 말자"


나는 너무 놀라 물었다.


“왜?”


“정전기가 너무 심해, 그리고 좀 무섭기도 해”


난 혹시라도 나의 잘못을, 거짓말을 알아버렸을까 싶어, 가슴이 쪼그라드는 줄만 알았다. 


영주가 말을 뱉자마자 놀란 눈을 떨구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전기와 공포 때문에 우리가 방방을 더 이상 타지 못한 다면 다른 무언가를 다시 뭔가를 행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만 한다.


“아, 맞아 나도 정전기가 무섭긴 해”


나의 말에 영주가 또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비밀 알려 줄까? 
이건 정말 비밀인데 말이야 나중에 놀라게 해주고 싶었지만

네게 말해야 할 것 같아”


난 숨을 죽이며 영주의 입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


“응? 뭐라고?”


아, 드디어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줄 모양이다. 

드디어 영주의 내 곁으로, 아주 가까이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아 하느님, 당신은 그곳에서 나를 보고 있었군요.! 잊은 게 아니었군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영주가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시내로 이사를 나오면 방학에도 우린 만날 수 있을 거야”


영주와 난, 끼야야 오오, 소리 지르며 손을 맞잡고 둥글게, 둥글게, 를 했다. 

나는 오늘 굳게 결심했다. 영주는 누가 뭐라 해도 나의 평생 친구가 될 것이다. 영주는 나를 정말 좋아한다. 물론 내가 더 영주를 좋아한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난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고 영주에게 용서를 빌 것이다.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준 이상, 더 이상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린 겨울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편지를 주고받았다. 언제인지 모를 영주의 이사를 기다리며 난 편지에 나의 오만한 모든 것들을, 죄를 모조리 적어 보냈다. 그렇게 영주의 답장을 기다리며 삼 일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영주가 거짓말쟁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드디어 영주에게 편지가 날아왔다.     


『나의 친구 우재에게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논바닥이 꽁꽁, 얼어서 마치 스케이트장 같아
 거기서 동네 친구들과 썰매도 타고 비료 포대 깔고 서로 잡고 당기기도 하고
 아빠가 만들어준 썰매는 역시 최고지
 나무로 만든 손잡이 못이 아주 튼튼해야 일등 할 수 있거든?
 또 일등 했어
 내기 중 썰매에서 떨어진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걔를 잡아 주기까지 했는데 그 멍청한 애는 

 내게 성질을 부리는 거야, 정말이지 남자애들이란, 알 수 없어
 내 손을 뿌리치더니 다음번에는 나를 꼭 이기겠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가는데, 어휴
 다시 넘어지더라? 난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
 그런데 말이야, 얼음이 조금씩 녹고 있었고
 난 그 애를 놀리지도 않았고 도움 준 것뿐인데, 그 앤 
 내가 자기를 놀렸다고 엄마한테 이른 모양이야, 녹은 얼음이 장난친 것도 모르고 말이야
 서운한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우재야 그 애 정말 멍청하지? 킄
 나 사실, 네 편지 받고 좀 놀랐어
 네가 왜 그렇게 거짓말까지 했을까, 이해하기 어려워서 답이 좀 늦었네?

 하지만 이젠 널 이해해, 왜냐면 넌 나와 단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거잖아? 
 거짓말이란 건 정말 하면 안 되는 것을 넌, 또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내게 용서를 구하는 거지?

그래 난 물론 널 용서해, 내 친구니까


그날을 기다리며 너의 친구 영주


아참, 사실 우재야

나도 거짓말한 적 있어, 정전기가 무서웠던 게 아니라
방방이 지겨워졌던 거야 우린 이제 같아졌네? 


나도 너처럼 미안』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내 발은 저절로 성당을 가고 싶다고 난리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양치기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지 않을 것이고,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리고 이제 영주는 진짜 오렌지빛, 나의 친구다.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방학이 끝나기를 바랐다. 또한 가장 놀랄 만한 일은, 나는 며칠째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아주 오랜만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이쿠, 지지배 이제 다 컸네”


그래, 이 소리는 엄마가 하사하는 가장 큰 칭찬일 것이다.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우리에겐 또 하나의 큰 장벽이 생기고 말았다. 왜 난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리가 학년이 올라간다는 건, 반이 바뀐다는 것, 또한 친구를 다시 또 사귀는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이 작은 사회가, 이 변화무쌍한 작은 사회가 지긋지긋했다. 


어른들은 말한다. 일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기는 일만큼 힘들고 버거운 일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그것들과 버금가는 이 비슷한 일들을 어린 우리들이 겪게 만드는 걸까? 

교훈이 있을 거라고? 

얼어 죽을, 버티며 알게 되는 것은 의리 없는 인간에 대한 상처뿐인 것을, 그들은 알까?


내가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그 대가는 너무 혹독하다. 학년이 바뀌고 생활도 바뀌고 모두가 바뀐다. 그리고 똑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 우성이가 학년이 올라가기도 전에 이상한 일을 꾸몄다. 

아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한 대단한 일을 꾸민 것이다. 우성은 더 이상 나와 같은 학교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곳보다 더 큰, 그러니까 외삼촌 댁이 있는 도시에 있는 학교를 간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물었다.


“그럼 우성인 어디에 살아?”


마귀가 나의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야, 이 멍청이 넌 통학도 몰라?”


난 무슨 말인지 또 이해하지 못했다. 

통학이라니, 우성이는 글쎄 한 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서 그곳까지, 그곳에서 우리 집까지 통학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우성이는 아직 어린 내 동생인데, 버스를 홀로 타고 다녀야 한다고? 

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의 엄마는 티 나지 않게 언니와 우성이에게 공부에 대한 열의를 활활 태우고 있었다. 아니다, 아들에 대한 열의라고 해야 할까?

엄마의 열의는 꺼질 줄을 몰랐다. 


좀 더 큰 도시로 초등생활을 보내면 중학교, 고등학교도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라는 엄마의 큰 그림이다. 대학교는 물론이다.

아, 나의 엄마는 정말이지 굉장한 사람이다.

그렇게 우성이는 아직 어린 그 나이부터 그 먼 거리를 홀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나갔다.


나? 나? 말인가?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의 엄마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멍청이 나를, 우성이처럼 전학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난 그렇게 믿었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씩씩한 우성이는 그렇게 도시 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학년도 바뀌었다. 영주는, 당연히 행운이 없는 나와 다른 반으로 갈라졌다. 

그렇지, 그렇게 되었다. 난 그럴 줄 알았다. 


나의 작은 희망은 하느님이 만들어준 희망이었지만 역시 깊은 물에 묻혀 영원히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영주는 걱정하지 말라며 툭하면 눈물 흘리는 나를 위로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영주를 찾아갔다. 

반짝이는 얼굴로 새우등을 보이며, 머리카락의 꼬랑지를 흔들거리며 그렇게 나를 반겼다. 

영주의 오렌지빛 웃음을 더욱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쉬는 시간의 끝은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도 나는 영주의 손을 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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