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똥 덩어리
한여름이 시작하면 신나는 것 한 가지는 있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연립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누구나 색색들이 화려한 튜브를 어깨에 걸쳐 매고 한여름을 즐기기 위해 그 먼 거리를 걸어갔다.
아빠와 아저씨들은 회사 전용 버스로 출근, 퇴근을 하며 그것을 고되다 말하지만, 우리에게 그 거리는 단지 수영장에 가는 길, 기분 좋은 일이 생기는 길일뿐, 멀어서 힘들어, 어떻게 가지,라는 생각은 돌아오는 길에나 떠오르는 말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당연히 그런 생각이었을 거다. 그만큼 우리의 목표는 굉장히 순수했다.
이때만큼은 군림자도 늘 동행을 했다. 유난히 큰 키에 날씬한 군림자는 수영복을 입으면 참 예쁘다. 엄마가 쥐여 준 동전 하나는 꼭 컵라면을 사 먹어야 했다. 격렬한 물놀이는 엄청난 식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땡볕에서 물놀이하는 행위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시원할 것 같지만 물은 미지근하거나 직선으로 나의 정수리를 파고드는 볕 덕분에 얼굴은 내내 뜨겁게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전 하나는 늘 컵라면과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갈등한다. 물론 컵라면이 더 비싼 가격이고 아이스크림을 산다면 동전은 남겠지만 컵라면을 먹을 수는 없는 턱 없는 값이라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딜레마에 빠지던 나는 아이스크림을 정말 먹고 싶은 날에는 동생 우성과 협상했다. 우정은 나의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정은 아이스크림과 컵라면을 동시에 사서 먹을 수 있는 권력과 재산도 있었다. 그 앞에서 내 자존심이 무릎을 꿇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성의 아이스크림까지 내가 사고 나면 우린 사이좋게 아주 큰 컵라면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 이사 온 후 몇 달 만에 친구가 생겼다. 7동에 사는 같은 또래의 아이다. 그 아인 홍수가 잡아먹어버린 저지대 마을, 그곳에서 어른들끼리만 아주 친하게 지내던 가족이다. 그렇게 그들도 함께 이사를 나왔다.
물론 우리보다는 늦은 이사였다.
우린 신기하게도 동그란 눈이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굵은 쌍꺼풀은 나의 풀린 쌍꺼풀에 비해 더 예뻐 보였지만 어른들도 우릴 보면 쌍둥이나 자매가 아니냐며 물어 왔다.
그녀는 나의 첫 친구 수정이다.
내게도 친구,라는 단어가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수정이는 나보다 키가 새 뼘 정도는 작았다. 내가 봐도 수정이는 정말 귀엽고 오밀조밀 앙증맞다. 그때 우리가 고수하던 머리 스타일이 유행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정이는 나와 같은 짧은 커트 머리 모양을 했다.
내 머리칼은 나의 첫 번째 집에서의 대실패로 짧아졌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완벽한 바가지 머리가 되었다.
그때도 엄마는 내게 묻지 않았다. 물론 머리통은 내 것이지만 또는 엄마의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 마음대로 하게 두어야 하는 게 맞는 거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그 점은 자유 속에서 엄마에게 사랑을 받기 위한 아주 중요한 방법 중에서 하나다.
수정이는 자신의 머리 모양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라고 내게 또박또박 말했다. 뭐 그랬을 것이다. 수정이는 자기 맘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쉽게 화를 냈다.
나는 생각했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다 그런 모양이라고 말이다. 또한 덧붙이자면 첫째의 이상한 공통점이기도 했다. 언니 우정이도 수정이와 화를 내거나 욕심을 부릴 땐 그 점이 아주 비슷했다.
그렇다고 수정이가 우정이처럼 악마 같다는 뜻은 아니다.
수정이의 엄마는 다른 아주머니들과는 너무 다르다. 좀 더 격하게 표현해야 아주머니를 모두 표현한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런 표현이 있을지 의문이다. 아주머니의 머리 모양도 짧은 스타일의 머리였고 하늘에서 누군가 잡아당기고 있는 듯, 높이 끌어올린 부푼 모양이다.
입가에는 새까만 점이 있다. 그리고 입술은 늘 붉게 반짝거렸고 입속에는 딱딱 소리를 내며 씹는 껌이 항상 머물렀다. 난 어디선가, 딱딱, 거리며 껌을 씹는 소리가 나면 수정이의 엄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내게 어떤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 딱딱, 거리는 소리가 나면 난 늘 수정이를 떠올렸다. 지금도 간혹 꿈을 꾸기도 한다.
수정의 아빠는 엄마보다 키가 훨씬 작았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정말 특이한 작은 키와 잘 어울리는 오리가 꽥꽥하는 울음소리처럼 떨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내가 만약 수정이 엄마라면 키 작은 아저씨를 위해 높은 구두는 신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연립 아파트에서 아주 높은 구두를 신고 짧은 치마를 입는 가장 멋스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나의 엄마는 화장도 잘하지 않았고 옷도 화려하지 않다. 그건 사실 아빠가 화장하는 엄마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옅은 색, 정도는 내가 생각했을 땐 꽤, 괜찮을 것 같긴 했지만 뭐, 사랑하는 사이는 그 사람을 위한답시고 이기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이길 바라는 건가 보다. 물론 이 부분이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안고 간다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다.
씁쓸하지만 말이다.
그런 엄마와 아주머니의 조합은 음, 서수남과 하청일과 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미안하지만, 하청일처럼 나의 엄마가 그렇게 생겼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나의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좋은 유전자만 물려받은 그때는 보기 힘든 서구형 미인이었다.
아, 이렇게 말하는 나는 아직도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모양이다.
일요일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갔고 우린 길어진 해를 핑계 삼아 조금 늦은 시간에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가 사라지고 나면 한 여름이라 해도 하루 종일 물과 씨름한 우리들은 약간 오들오들 몸을 떨며 걸었다.
우리의 목표가 사라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처럼 고단했다. 왜냐면 물놀이가 끝이 난 이 길은 우리의 다리를 아프게 했고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의 아빠는 우리가 성인이 되고 한참 후, 알게 된 사실, 회사까지 한여름 내내 물놀이를 하기 위해 걸어 다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곤 그 얘기만 나오면 늘 똑같은 말, 아이고 참나 원, 그 거리를 어떻게 걸었어, 세상에, 니들 엄마도 참 너무 했다, 쯧, 하는 소리를 하며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흠, 엄마가 정말 너무 했다는 말이 맞는 말일까?
땡, 아빠 그건 아니잖아요?
아빠는 우리에게 아버지로서 당연한 관심은 있었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아는 온전한 엄마의 담당이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나의 서구형 미인 엄마는 독박 육아로 술 한잔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아빠보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아주 잔인하게 늙어 갔다.
우린 그날 저녁, 새까매진 얼굴로 살벌한 분위기에 주눅이 든 체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서로 방 안에서 눈알만 굴리는 중이었다. 엄마는 꼭 저녁 시간을 지키라고 했고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건, 엄마가 두 번 상을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역시 아빠는 저녁 식사 후, 좀비처럼 투명한 소주병에 이끌려 나간 모양이다.
몇 시간 전 아이스크림과 컵라면을 나눠 먹은 우성이와 나의 뱃속은 괴물이 그르렁, 음식을 집어넣으라며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멈추지 않고 눈치 없이 계속 그르렁댔다.
마귀 같은 우정이는 참 태연하기도 하다.
아무렇지 않게 손 만 대면 터질 것 같은 풍선 같은 엄마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식탁에 앉았다. 그건 우성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난, 마치 언니와 동생을 붙잡아 놓고 집에 가지 말자, 더 놀다 가자,라고 군림자처럼 명령이라도 한 듯,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의 등은 노트르담 꼽추가 되어버렸고 눈은 호랑이와 대치하고 있는 겁을 잔뜩 먹은 토끼와 같았다.
엄마가 국을 퍼 날랐다. 김이 모락모락 미역의 특유한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의 입안은 침으로 가득해서 꿀꺽, 하고 넘길 수밖에 없다.
젠장, 소리가 너무 컸다.
나는 아직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 있었다.
으악,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얏, 밥 먹을 때가 됐으면 자리 앉아야지
내가 앉으라는 소리까지 해야 해?
몇 시야 지금? 이제야 기어들어 와서, 응?”
내가 개도 아니고 기어 오지 않고 천천히 걸어왔는데, 엄마는 꼭 내 가슴을 후벼 파는 단어를 골라 말했다. 나는 후다닥,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엄마와 눈도 마주칠 수가 없다.
언니는 엄마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고춧가루가 묻지 않은 반찬만 골라 잘도 먹었다.
아, 저 당당함과 저돌적인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참 부럽다.
본격적으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나는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우성이의 밥을 국그릇에 부어 정성스럽게 말아 주었다.
난 우정이 앞에 놓인 하얗고 노릇한 구운 두부가 너무 먹고 싶었다. 나의 젓가락은 용기가 없어 뻗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우성이를 따라 밥을 말았다. 젠장, 그 사이 저 미친 군림자가 남은 두부를 다 먹어 치웠다.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여름이라 너무 많이 쉬어 버린 김치에 젓가락은 잘도 용기를 낸다.
엄마가 불 모양이 보이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너 그렇게 깨작댈 거야?
힘들게 밥 차린 거 생각 안 하고 깨작대고 있어?
얼른 안 먹어?”
미친 군림자는 빈 밥그릇을 개수대에 넣고 벌써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나마 기댈 곳이 사라졌다. 나는 허겁지겁 빠른 속도로 먹었다. 빈 뱃속은 만족하고 있지만 부드러운 두부를 느끼지 못한 나의 혀가, 계속 침을 만들며 울었다.
아, 난 이렇게 영양이 불균형한 상태로 김치만 먹다가 일찍 죽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멍 때리는 순간 엄마의 높은 언성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날 나는 잠이 들기 전까지, 엄마가 잠이 들기 전까지, 아빠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캄캄한 새벽, 아빠가 또 좀비처럼 들어왔다. 당연히 형광등은 켜졌고 나는 이것을 기회 삼아, 아주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요즘처럼 엄마의 심기가 불편할 때는 오줌 싸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과 같았다.
아, 난 오늘도 안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았음을, 그렇게 그들의 새벽은 길었다고 한다.
우린 아침마다 늘 전쟁을 치른다. 그 전쟁의 이름은 화장실 전쟁이다. 늘 처음 화장실을 쓰는 사람은 아빠다. 그리고 우정이, 그리고 우성이, 그렇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나는 당연히 꼴찌다.
월요일 아침, 나는 이상하게 배가 아팠다. 배 속에 뭔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삐죽,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통증이 있다가, 다시 다른 자리에서 삐죽, 거리는 통증이 왔다 갔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장실에서 결국, 난 아무 일도 치르지 못했다.
온 힘을 다해 보지만 나오는 건 픽, 하는 방귀 소리뿐, 엄마의 악이 받친 듯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지며 들려온다. 나의 삐죽거리는 통증과 함께.
“빨리 나와 시간이 몇 신 줄 알아?
빨리빨리 움직여, 누굴 닮아서 느려터졌어?”
아, 억울하다.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화장실에 앉지 말았어야 했던 건가, 그리고 내가 누굴 닮았겠는가? 나의 얼굴은 정말 누구를 봐도 엄마를 닮았는데, 억울하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단점을 발견하며 누굴 닮아서 그러냐, 는 물음을 하는 걸까? 당신들이 우리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발뺌하는 것인가? 정말이지 알다 가도 모르겠다.
내가 쥐를 잡아먹은 아주머니라도 닮았어야 하는 건가?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나와 가방을 메고 뛰기 시작했다. 학교까지 걸어가려면 많은 시간이 허비되었고 등교 시간은 십여 분도 채 남지 않았다. 난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목이 타들어 갈 정도로 계속 뛰었고, 창백한 얼굴로 학교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등교하는 아이들의 등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학교에 들어간다면 분명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키가 큰 멸치 같은 선생한테 혼이 날 것이다.
참, 나는 지금 학년이 바뀌었다. 이 학년에 올라간 후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나의 담임선생 자리는 내게 또 다른 시련을 줄 준비를 했다. 대머리 멀대 멸치, 바늘, 마른오징어를 연상케 하는 나이 많은 남자 선생, 아, 그 선생은 정말 무서웠다. 내 첫 선생과 차원이 다른 인격체였다. 담임은 교무 주임이라는 직책도 있었다.
이 선생은 손주 손녀 같은 아이들을 아주 잘 때렸다. 짧은 막대기로 때리는 게 성이 차지 않으면 맨손으로도 때렸다. 거의 내가 생각하는 악마의 존재 중 최고봉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겨우 초등학교 2학년 생을?
정말이지 손바닥으로 작은 아이의 뺨을 때리는 그 순간 들리는 쫘악, 이라는 소리는 어떤 무기를 쓴 것보다 더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난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선생을 벌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있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이건 말도 안 되는 형사소송 감이다. 하지만 80년대 우리들은 그렇게 맞았고, 그게 잘못된 건지 모른 체, 당연한 체벌로 여기고 자랐다. 그런 선생을 담임으로 둔 나는 지각을 인정하며 저곳에 맞으러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 아직도 뱃속은 뭔가 날카롭게 돌아다닌다.
아야, 통증은 날카롭게 뱃가죽을 계속 찔러 댔다.
그래, 차라리 거대한 손바닥 무기로 싸대기를 후려갈겨 맞을 바에 날카로운 무엇으로 뱃가죽이 찢기다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한참 동안 언덕길에서 학교를 내려 보았다. 고개가 절로 돌아갔고 난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절대,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게 다치지 않게 고통이 찰나의 순간이라면, 잠시 정신을 잃는다면 좋을 텐데, 결국 내 눈에 눈물이 샘솟았다.
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그리고 다시 골똘히 생각했다.
담임선생에게 맞을 건지, 엄마에게 맞을 건지,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선택을 꼭 해야 한다. 당신들은 선택할 수 있었을까?
난 자신이 없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정말이지 맞는 건 싫다.
한여름의 오전 더위도 비쩍 마른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 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혹시 모른다. 이렇게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학교에서 마치는 시간과 같아져 집에 도착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난 집과 조금 떨어진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의 그늘진 곳으로 가서 앉았다. 목이 말랐고 현기증이 일었다. 배는 점점 팽팽해지고 있었다.
마치 곧 터질 것처럼.
아, 정말 나의 인생은 여기서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일까, 나는 시간을 알 수도 없었다. 내게 용기가 있다면 저 커다란 교회를 들어가서 시간을 확인할 수도 있는 노릇일 텐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큰일이다. 조금씩 압박하던 통증이 이제는 쉴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 시작했다. 난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상체를 조금이라도 들면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 아팠다. 이건 분명 나의 장기 중 어느 하나가 고장 난 것이다. 이제 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환자가 되는 것일까, 이것은 엄마와 담임에겐 좋은 핑계가 되겠지만 난 분명히 말했다. 고통이 없는 핑계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난 상체를 숙이고 걷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필요 없다. 지금은 무조건 엄마를 봐야 한다.
온몸에 땀이 흘렀고 나의 반바지는 젖어서 걸을 때마다 다리 사이로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난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 아파, 아파 너무 엄마, 흐아아아앙 난 울었다.
배를 부여잡고 계단을 천천히 한 걸음씩 두 팔도 기어올랐다.
“으앙, 어 엄마 아아아”
청소를 멈추고 엄마가 놀라 나의 새하얗고 바싹 마른 얼굴과 땀으로 흠뻑 젖은 바지를 보고 놀라 묻는다.
“야, 우재 너 왜 그래?”
아,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다.
나는 왜 이 와중에 우재야,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그 느낌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 서글퍼지는 걸 까. 그리고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내가 배를 부여잡은 모습을 본 엄마는 나를 안아 배를 문지르고 나의 볼을 찰싹, 찰싹 때렸다.
“우재야, 우재야, 눈 떠, 응? 우재야”
잠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와 엄마의 얼굴이 아주 가까이서 보였다.
엄마의 손이 나의 배를 쓸고 또 쓸었다. 땀에 젖은 들, 엄마의 손길은 따뜻했고 행복했다. 그땐 아주 잠시 통증도 잊었던 것 같다. 우재야,라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엄마는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게 맞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엄마”
하고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이 답답아, 어디가 아프냐고 묻잖니? 응?”
이번에는 꼭 답을 해야 한다. 엄마가 나를 보고 나를 만지고 나에게 묻고 있다.
“으응, 여기 배”
난 아랫배에 손을 갖다 댔다.
“앗, 배가 왜 이렇게 딱딱해?
움직일 수 있겠어? 아니다, 잠깐만 기다려 이렇게, 이렇게 엎드리고 있어”
엄마는 내게, 내가 마치 우성이가 된 것처럼 옷을 갈아입히고 얼굴을 닦였다. 그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먹였다. 엄마는 정말 슈퍼맨 같았다. 전화를 내려놓자마자, 5동에 사는 아저씨가 와서 나를 업었다. 그렇게 우린 아저씨의 자가용을 타고 빛의 속도로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끌어안고 배를 문질렀다. 아, 아프다, 하지만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라고 미소를 지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프지만 행복하니까 계속 아파도 괜찮지 않을까,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엑스레이를 찍었다. 세상에 결과는 정말 참혹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결과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가리키며 내 몸속에 둥둥 떠 있는 것들을 짚었다. 그리고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했다.
“어머님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다 똥, 입니다
녀석, 변비가 심합니다”
“아, 얘가 워낙 잘 먹지를 않아요”
으악, 잘생긴 의사 선생은 나를 보며 똥, 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난 사방을 둘러보며 숨을 곳이 있는지 찾았다. 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 창피함의 느낌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 발가벗고 나왔을 때 보다 더 모욕적인 것이었다.
난 여자가 아닌가, 아무리 나의 몸속에 똥이 몸무게보다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한들 좀 더 좋은 단어로 진단을 해주면 안 되는가? 치욕적이다. 내 몸에 똥이 가득 차 둥둥 떠다닌다고? 병명은 그럼 똥덩어리인가?
아, 그 똥덩어리들이 나의 뱃가죽을 그렇게 찔렀던 것인가… 맙소사.
여자인 나의 인생은 끝장이다.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 변을 보지 못해서, 나를 엎드려 놓고 젓가락으로 똥을 파냈다고 한다.
아,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 모욕적인 일은 아주 자주 있었다고 했다. 어릴 적, 기억을 단순하게 떠올릴 수 없다,라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다행이지 않은가.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똥을 파냈다는 기억을 내가 안고 산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다면 난 이 순간 저 똥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한단 말인가, 저 잘생긴 의사 선생 앞에서? 내 그곳을? 아, 절망적이고 힘든 시간이다.
차라리 담임에게 죽도록 맞는 편이 나았다. 의사 선생이 진료실에서 나간 후, 어려운 단어를 쓰더니 기다리라고 했다. 갑자기 간호사 언니가 나보고 바지를 내리라고 한다.
맙소사, 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인 걸리버나 소가 맞을 법한 아주 큰 주사기를 보고 흠칫, 놀라며 온몸이 경직되었다. 내 입에서 용기가 튀어나왔다. 역시 사람은 사지로 몰리면 용기가 생기는 법인가 보다.
“저기, 그거 주사예요? 전 맞을 수 없어요”
잔뜩 겁을 먹은 나를 보고 간호사는 빙그레 웃었다.
지금 웃음을 짓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저것을 내 그곳에 찌른다면 난 간호사를 발로 찰 것이다. 난 이를 악물고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만발의 준비를 해야 했다.
“아니야, 우재야
아픈 것도 아니고 아주 잠깐 약만 집어넣는 거야, 할 수 있지?”
난 이 병원의 단골 환자답게 그 간호사 언니의 말을 믿어야만 했다.
“정말이에요?”
엄마는 나를 다그쳤다.
“시끄러워, 얼른 엎드려”
난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바지를 내린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 순간 차가운 액체가 나의 똥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간호사의 말은 고통에 있어서는 믿을 만한 것이었다.
“우재야 꾹 참고 50까지만 숫자를 센 후에 화장실을 가야 해, 알았지?”
“네?”
참으라니, 무엇을 참으란 말인가?
간호사는 정확하게 다시 말했다.
“똥이 마려울 거야 하지만 50까지는 참아야 해
그렇지 못하면 다시 약을 넣어야 해, 알았지?”
아, 이런 맙소사 난 열도 세지 못했는데 그곳은 봄을 맞이한 꽃처럼 활짝 열리는 중이었다. 온몸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을 줬지만 아,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버티고 있다가 분명 진료실을 온통 똥칠로 만들고 간호사의 옷도 버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으아아아아 아 안 돼요”
난 소리를 지르며 창피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바지를 내린 그 상태로 뛰었다.
아, 그토록 소중한 나의 화장실이 보인다. 난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고 예의 있게, 그것이 나오질 않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변기에 쪼그리고 앉자마자 어마어마한 폭포수, 마구 흔들어 댄 콜라, 가 터져 나왔다.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힘이었다. 난 그 엄청난 힘을 가진 그 차가운 주사기 속 액체가 이런 괴력을 갖고 있다니 놀라웠다. 이것을 관장약,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난 아주 어린 나이에 관장약의 괴력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 난, 병원에서 아주 긴 시간을 허비했다. 왜냐면 관장약의 실체가 아직 나의 엉덩이에 남아 있었으니, 화장실을 떠날 수가 없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나의 똥들이 문을 열라며 자꾸만 소리치며 노크했다.
병원의 간호사 언니들과 의사 선생님과 출납을 관리하는 언니들은 희멀건 나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따뜻한 보리차를 건네는 언니들은 말했다.
“우재야, 이렇게 물을 많이 마셔야 해
물론 밥도 많이 먹어야 하고, 그래야 다시는 관장을 하지 않지, 응?
자 마셔”
친절함 뒤에 나오는 그들만의 키득거림,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그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병원을 나온 엄마와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나의 다리는 걸을 힘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엄마와 단둘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자꾸만 나의 손을 놓는 엄마의 꽁무니를 나는 애써 웃으며 졸졸거렸다.
엄마는 정육점에서 아주 많은 양의 고기를 샀다. 그때는 왜 정육점을 식육점이라고 불렀을까? 그땐 그랬다. 우린 정육점에서 나와 다시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난 매우 지쳐 피곤했지만 하루 종일 엄마를 독점한 시간이 소중했고 기뻤다. 또한 내가 학교를 가지 않은 건 자연스럽게 묻혔고 다행히 멸치 선생에게도 혼이 나지 않았다.
똥이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란 걸, 나는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소고기가 가득 들어간 죽을 끓였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엄만 나를 위해 소화가 잘되는 죽을 끓인 게 분명하다. 난 좋아하는 김치에는 손도 대지 않고 나를 위한 그 죽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괜찮냐는 걱정 섞인 말을 잠이 들 때까지 계속 물었다.
난 엄마의 눈을 다정하게 마주하고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밤, 엄마와 아빠는 아주 오랫동안 오늘 내게 일어났던 일을 얘기했다. 난 이부자리에 누워 천장을 멀뚱히 바라보며 그 대화에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매우 걱정했고 엄마의 신경을 좀 더 쓰겠다,라는 말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난 다짐했다. 아무리 학교를 가기 싫어도 엄마를 위해, 다시는 뒤돌아 걸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도 많이 마실 것이다.
그리고 밥을 많이 먹는 건, 음, 조금 노력은 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