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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Sep 25.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2. 잔인한 붉은 성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시골에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시내라는 곳에서 멀지 않게 위치했다. 우리에게 시내라는 이름의 의미는 대단한 것이다. 뭔가 세련되거나 한창 멋을 부리며 우리 또래의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거나 매콤하고 달콤한 쫄면과 가락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 번째 집, 그러니까 아파트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이곳은 회사 이름을 붙인 oo아파트이다. 한데 그곳은 겨우 3층짜리에 불과했다.  왠지 요즘 모두가 아파트, 아파트, 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같은 모양을 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곳은 자격 미달인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아파트라고 불린다. 


예를 들면 강남이 아닌 강남 근처에 아파트를 짓고 이름을 강남 아파트라고 짓는 것처럼 말이다. 내 생각엔 우리가 거처할 이곳은 그냥 연립이 주택이라고 불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사로 인해 언니 우정과 나는 전학을 가야만 했다. 난 이제 막 입학했고 학교라는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그 큰 시내에 자리 잡은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니, 난 눈앞이 캄캄했고 막막했다. 이럴 수가, 그날이 이렇게 순식간에 빛처럼 와다다, 하고 성큼 다가오다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엄마와 함께 손을 꼭 잡고 학교를 방문했다. 

정말 이곳은 성처럼 커다랬다. 저지대 마을에서 다니던 학교는 희멀건 색의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이층 자리 아주 작은 학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덩치도 내겐 굉장한 위엄으로 느껴졌는데, 이렇게 큰 건물에 나처럼 작은 아이가 교실에 앉아 공부해야 한다고? 아, 나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겁이 덜컥 났다. 


그 와중에 엄마가 있는 집까지도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엄마에게 달려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눈이 돌아갈만한 시내가 좋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저 난, 비좁은 우리의 작은 사회가 시작되었던 그곳이 그리웠다. 


나의 불안증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 가고 있었다. 엄마에게 달려가는 그 시간 동안 숨을 못 쉬고 죽어버리면 어쩌지? 대책 없는 나의 공포심이 또 조금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아직 엄마와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먼 거리를 연습도 없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붉은 벽돌은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 잘해야 간다는, 대학교라는 곳처럼 보였다. 아마도 나는 이런 건물은 텔레비전 속에서 처음 본 게 아닌가 싶다.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저 큰 건물에 붉은 벽돌을 하나하나 붙였다고 생각하니 우와,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감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나의 고개는 저절로 숙어졌고 교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한 마디로 난 6년 동안 망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덜덜덜.


우선 가장 싫었던 건 아이들이 꽥, 꽥 소리를 지르며 마치 홍콩 영화에 나오는 무림의 고수인 사람들처럼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또 하나, 창문 쪽에 앉은 내게 햇빛이 온몸에 내리쬘 때면 아이들이 일으키는 날아다니는 먼지 알갱이 하나하나가 아주 자세하게 보인다는 것, 그것을 들이마시는 길목까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런 먼지가 내 콧구멍에 정착할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를 떨었다. 

결국, 난 엎드렸고, 콧구멍보다는 입이 나을까,라는 생각에 입을 괴상하게 오므린 체, 벌리고 몰래 숨을 쉰 적도 있다. 


아, 첫날부터 난 고뇌와 상실에 늪에 빠져 버렸다. 괴로움에 발을 동동거리지만 발은 꽁꽁 묶여 움직이지 않았다. 바보처럼 엄마가 나를 기다려 줄지 알았다. 엄마는 왜 먼저 간다는 소리도 않고 나를 이 큰 교실 속에 던져 놓고, 그냥 가버렸을까, 아니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그렇게 하는 건가? 


학교를 마치고 난 엄마와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고 갈망하던 시내를 걷지만, 땡전 한 푼 없는 나는 달콤한 희망을 품을 수가 없다. 뭐, 땡전이 있다고 해도 자신 있게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아빠처럼 슈퍼마켓에 들어가 원하는 것을 사고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돈을 건네고 주고받는 것도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도 난, 정말 힘이 들었고 긴장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걷는 순간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걷는 것 같았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쫄리다? 쫄보가 되었다?라고, 해야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 고난의 길을 나는 6년 동안 걸어야 한다. 

아, 조금씩 고개를 들고 내가 가는 길을 외워 보기라도 하자.          


나는 이제부터 나의 두 번째 집을 연립 아파트라고 부를 거다. 3층짜리 집을 오직 아파트라고 부르기엔 나의 등과 귀가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야 연립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은 나는 내 인생에 대한 고단한 짐을 어깨에 한가득 짊어지고 있었다. 나보다 몇 배는 더 큰 나무에서 갈색 마른 잎이 떨어졌다. 이 쓸쓸함은 나와 같도다. 연립 아파트를 백여 미터를 남기고 옆 건물을 자세히 보았다. 으리으리한 성과 같다. 


아, 여긴 교회라는 곳이다. 왜 십자가가 회색인지 모르겠다. 회색 철로 된 십자가를 뾰족하게 생긴, 꼬깔콘을 엎어 놓은 모양 위로 딱 붙여 놓았다. 어쩌다 센 바람이 들이닥치면 난 꼭 이곳을 피해 뛰어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굉장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저 위태로운 십자가 밑을 저렇게 자유롭게 걸어 다니다니, 부러웠다. 아니면 반대로 저 교회에 다녀서 용기를 얻은 건지 모를 일이다. 

뭐라고 그랬더라? 아멘, 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또,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대충, 이렇게 말을 했다.


드디어 집 앞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정문 입구다. 내가 손이 세 개, 그리고 팔이 세 개였다면 난, 나의 어깨를 토닥거리고 정수리도 쓰다듬었을 것이다. 


우리의 연립 아파트는 들어가는 정문에 경비실이 있다. 경비실은 경계점이 되어 자본주의 세상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자세히 보여주는 곳이다. 왜냐면 1동에서 3동, 그리고 경비실이 경계가 된다. 

참고로 미신을 억울하게 뒤집어쓴, 굉장히 이미지가 좋지 않은 숫자 4자는 아예 싹을 잘라버렸다. 무슨 숫자 주제에 인간 삶에 골치 아픈 일을 만든다고 그렇게 난리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개 어른들은 숫자 4를 굉장히 혐오한다.

4동을 만들어 놓고 그게 진짜 죽음을 의미하는 사, 인지, 경험해 보지도 않은 어른들 만의 결론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숫자 4를 유독 좋아한다. 엄마는 그것을 청개구리 심보라고 말했다. 그렇게 자본주의 사회 혹독함의 경계인 경비실을 경계로 5동부터 7동까지 연결이 되어있다. 


자본주의,라는 내 말의 의미는 1동은 과장급, 2동 3동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 과장 밑이라면 대리? 정도의 직급이라 해야 한다. 여하튼 어떤 급, 을 달고 있는 자들의 공간으로 우린 그렇게 보기 좋게 나뉘어 있었다.


연립 아파트에 적응할 무렵, 나는 1동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와, 나는 정말 놀랐다. 

나의 두 번째 집이 굉장히 넓은 곳인 줄 알았지만 1동은 늘 꼴찌를 하는 나의 달리기 능력을 채워 줄 만큼 더 넓은 곳이었다. 흠, 나는 이때 처음으로 사람이 과장이나 대리 같은 것, 즘은 꼭 해봐야 한다, 는 생각을 해 보았다. 혹시 나의 불편한 학교생활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급, 이란 것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1등은 앞자리, 꼴찌는 맨 뒷자리를 앉게 되는 것일까, 시작하지도 않은 불안은 몇 갈래로 이어져 계속 뻗어 나가기만 했다. 


우리 집은 6동 이층이다. 나는 경비실을 지나며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할 용기도 없는 아이다. 하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엄마와 함께 또는 아빠와 함께 경비실 아저씨에게 늘 인사를 했다.


나는 앞서 인사를 한 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난감함을 먼저 걱정했다. 역시나 인사를 하니 누구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 보았다. 나의 얼굴은 완벽한 우체통이 되었을 게 뻔했다. 

세상에 내가 잘 모르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다니. 나는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걷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닌 느려터진 모양임이 틀림없다. 으아악,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저기 6동에 이사 온 집이냐?”


나는 고개는 집을 향해 눈을 아저씨를 보며 모기가 날개 짓하는 소리 마냥 대답했다. 


“니에에”


“학교 다녀왔니?”


이번엔 바닥을 보며 고개만 끄덕, 거렸다. 그리곤 아저씨의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강력한 접착제로 붙길 바라며 냅다 뛰었다. 뛸 때마다 가방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나는 높은 계단도 육상 선수처럼 빠르게 뛰었다.


“으헤헤헥 헥 헥”


숨을 고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뭔가 느낌이 달랐다. 처음 보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엄마가 나름 신경 쓴 주방과 거실을 구분하는 하얀 레이스 커튼도 없었다. 방문이 열리고 나 보다 훨씬 키가 크고 가늘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사람이 나왔다. 이게 꿈인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 사람이 말했다.


“넌, 누구야?”


이런 젠장, 난 5동의 2층 남의 집에 들어온 것이다. 이 언니는 나 보다 훨씬 학년이 높은 게 분명하다. 난 말도 안 되게 오그라드는 짓을 했고, 순간 난 내가 그저 그런 멍청한 바보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순발력은 놀라웠다.


“언니, 저기, 같이 놀자”


이런 미친, 이런 짓을, 이런 말을 나불거리다니, 정말 커다란 저 신발장 속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면 그냥 그대로 쓰러진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 언니는 나를 정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먼저 젓고 말했다.


“아, 너 저기 6동 이사 온… 미안한데 지금은 안돼”


난 그 어여쁜 생머리를 가진 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네,라고 답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의 제 빠른 눈치에 조금의 감동은 했지만 역시 난 바보 천치다. 툭하면 눈물을 짜내는 나의 눈은 오늘만큼은 흐르지 않았다. 


아마도 이름 모를 예쁜 그 언니는 나를 정확하게 미, 친, 년,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5동을 피해 다녔고 멀리서도 긴 머리카락의 여자를 보면 도망치거나 뒤돌아 더 먼 거리를 걸어 다니곤 했다.

내겐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 아직도 그 언니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502가 아닌 602를,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이 숫자를 현관 앞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했다. 문을 열고 다시 확인했다. 엄마의 하얀 레이스 커튼을, 나의 심장이 이제야 안정을 찾으며 엄마의 냄새, 그리고 우리의 냄새, 그 냄새를 맡으려 킁킁거렸다.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주방에서 또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난 비 맞은 생쥐처럼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교 어땠어?”


이럴 땐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런 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내 기분대로 말하는 게 맞는 건지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껏 답해야 하는 도무지 모르겠다. 하긴 학교를 가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선생이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것도, 친구 아닌 그 무림 고수들과 잘 지내야 하는 것도, 그 누구도 아무도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방법을 몰랐다.

난 오늘 너무 힘이 들고 지쳤다. 


“응 똑같, 아…”


우성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와 내 얼굴 앞에서 들고 왔다 갔다, 시끄럽게 굴었다. 

하긴 내가 싫다고,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말한 들, 달라질 게 있을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어른들의 말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그걸 아는 나의 포기는 항상 빨랐다.


엄마는 간장 버터 달걀밥을 만들어 우성이에게 골고루 비벼 준다. 난, 오늘처럼 고난스러운 날, 내 것도 엄마가 저렇게 쓱쓱, 비벼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말했다.


“우재, 얼른 비벼 먹어”


나는 홀로 외롭게 밥을 비볐다. 덜 익은 작은 달걀노른자가 고소함으로 나를 위로했다.

나는 억지로 우성이를 데리고 놀이터를 가야 한다. 나의 지친 기색을 눈치 빠른 엄마가 알 법도 한데, 엄마는 내게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았다. 엄마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고 중얼거리며 우성이에게 조끼를 입혀 주었다. 


“저녁 되기 전에 들어와”


아, 저녁 되기 전에 들어오라니, 놀이터에 일 초 정도만 발을 담그고 집으로 오고 싶었다. 결국 난 우성이와 함께 해가 뉘엿뉘엿, 질 때에 집으로 발을 옮겨야 할 것이다.  그래, 사랑하는 엄마의 휴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해 보겠다.


이곳은 우리의 첫 집 보다 놀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우성이는 아마 내가 학교에서 얼른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우정은 어느 순간부터 우릴 그저 아이 취급할 뿐 상대해 주지 않았다. 지도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주제에 그냥 피우는 꼴통 짓이다.     


내 동생 우성이는 이제 온전히 내 담당이 되어 버리다니, 안락해야 할 집이란 곳도 서서히 고난스러운 곳으로 변하기 직전이다. 오늘은 우성이와 놀아 줄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끊임없이 말하는 동생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린 놀이터를 선택하지 않고 우성이가 말하는 곳을 가 보기로 했다. 

7동을 지나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갔다. 7동은 연립 아파트의 끝이기 때문에 당연히 철문으로 된 후문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건 저 철물을 왜 달아 놨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 문을 잠가 놓은 들, 우린 철문 사이로, 또는 철문 밑으로, 또는 낮은 담벼락을 잘도 타고 넘기 때문이다. 이곳은 낮은 산이 시작되는 부분이었고 소각장, 그러니까 온갖 쓰레기가 담겨있는 초록색, 커다란 통이 있는 곳이다. 그건 꼭 화물차처럼 보였다. 그 옆을 지나가면 네네, 저는 쓰레기를 태우는 곳입니다,라고 말을 하듯 쓰레기 냄새가 났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어 본 적도 없는 길을 계속 걸었다. 

우성이는 참, 이런 모험을 좋아한다. 별것도 아닌 플라스틱으로 된 쓰레기나 좀 더 독특하고 달라 보이는 나무 작대기를 보고 주워 올리는 우성이는 남다른 감탄사를 뱉으며 잘도 걸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우성이는 아주 씩씩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아주 깊게 파인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정말 지붕만 없을 뿐이지, 사람이 살 수도 있을 만한 깊이다. 나는 겁을 먹었고 그걸 아는 우성이는 먼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안전을 확인한 후, 나도 따라 구덩이로 숨었다. 


와, 찬바람도 막아 주다니, 이곳에 혹시 사람이 사는 건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엔 일을 하러 갔다가 집이 없어 이곳에서 은신하는 식,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곳을 발견한 그때부터 이곳은 우리의 본부, 그러니까 아지트가 되었다. 

우린 집에서 엄마 몰래 쓸모없는 물건이나 존재의 유무가 티 나지 않은 얇은 이불, 또는 아빠가 갖고 다니던 맥가이버 칼, 같은 것들을 모아 본부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우린 마치 또 다른 집을 마련한 것처럼 들락거리며 놀았다. 

무거운 쇠로 된 자물쇠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우성이는 그곳을 정말 좋아했다. 


우린 좀 더 추위가 찾아왔을 때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 우성이는 겁도 없이 고양이를 안고 그 자리에서 혹시 찾아올 엄마 고양이를 기다렸다. 하지만 긴 기다림에도 어미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우린 추위 속에 새끼 고양이를 놓고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본부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깊은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입구를 만들어 새끼 고양이만 딱 들어갈 수 있도록 그 어떤 것들이 와도 새끼 고양이를 해치지 못하도록 숨겼다. 그리고 이불로 돌돌 감아, 먹던 사과를 놓고, 엄마 몰래 갖고 온 삼겹살도 먹였다. 


나는 그날 밤 고양이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까만 밤, 불도 켜지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그 생각만 해도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우성이와 난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엄마 몰래 우리의 본부로 향했다. 

우리의 뜀박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했고 빨랐다. 


아, 이럴 수는 없다. 새끼 고양이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파 놓은 곳을 손으로 아무리 긁어 보아도 새끼 고양이는 없었다. 다행히 갖다 놓은 먹을거리는 먹고 난 후 사라진 것 같았다. 

우린 그 넓은 산속을 누비며 이리저리 눈을 돌리고 고개를 돌려가며 새끼 고양이를 찾았다. 새끼 고양이를 우리는 고양아,라고 불렀고 산이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칠 때까지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아, 고양아, 어딨어? 엄마 찾아갔어? 고양아!”


끝내 우린 두 번 다시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우성이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우성아, 너 그거 알아? 
 엄마 고양이는 새끼 고양이를 절대 버리지 않아 
 분명히 찾아갔어, 저것 봐, 음식도 다 먹었잖아? 
 아기가 어떻게 그걸 혼자 다 먹어? 안 그래? 
 우리가 고양이를 지키고 있어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던 거야”


그래, 거짓말이 아니다. 원래 엄마는 그런 존재니까.


시간이 흐른 후, 우리 동네에는 고양이가 갑자기 많아졌다. 그때의 새끼 고양이 색깔과 크기는 달랐지만 아마 새끼 고양이의 친구일 거라 믿고 싶었다. 아니면 자라서 색이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양아, 엄마가 데려간 거 맞지?          



그 해, 우리 집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난 그때 엄마의 얼굴과 행동과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아주 자세히 기억한다. 엄만 그때 정말 힘들어 보였다. 우리 셋은 솔직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모른다. 엄마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그저 사진으로 보았고,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우리가 유일하게 얼굴을 아는 윗사람이다.


어른들 말을 몰래 들은 바로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새 할머니와 살다가 헤어지셨고 또 다른 할머니와 살다가 또 헤어졌다고 한다. 

아, 생각만 해도 복잡한 어른들의 생활이다. 


할아버지는 꽤 많은 재산으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살았고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할아버지의 돈이 다 떨어질 무렵, 그분은 우리의 아주 괜찮은 두 번째 집으로 짐을 싸 들고 왔다. 이건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아주 예민하고 그 누구도 상대하기 싫어하는 우정이가 방을 내주어야 하는 이 일은 일대 큰 사건이었다. 물론 나는 우정과 방을 함께 쓰고 있었지만 내게는 권한이 없었기에 우정의 방이라고 일컫는 게 속이 편하다. 


처음 할아버지가 집으로 왔을 때, 우리 또는 엄마의 생각으로 비추어 보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나의 엄마가 가장 무서워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고모가 집에 온 것이다. 

엄마는 우리의 첫 번째 집을 싫어했다. 왜냐면 고모의 집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서 밖으로 나오기 전 첫 번째 집으로 이사를 오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며칠을 아빠와 떨어져서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고집을 피워 봤지만 엄만, 끝내 우리의 첫 번째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광명을 찾아 두 번째 집으로 온 것이다. 


한데 또다시 이런 시련이 나의 엄마에게 닥치다니, 생각할수록 끔찍했고, 가련한 나의 엄마가 참 불쌍했다. 겨우 찾은 엄마의 광명은 서서히 어둠에 가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모는 아빠의 누나다. 나이 차이가 꽤 있다. 그래서일까? 내가 봐도 고모는 정말 무섭다. 

사람의 외모를 글로 표현하는 게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난 어릴 적 고모의 얼굴을 보면 독이 있는 두꺼비가 생각났다. 두꺼비는 화가 날 때에 배를 부풀려 엄청나게 몸이 커진다고 들었다. 

나는 실제 그 모습도 봤다. 정말 비슷하다. 

고모, 죄송하지만 그땐 정말 전 그렇게 겁을 먹었었답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 또는 귀신, 인형을 합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공포였다.


아, 나의 엄마를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지 않은가.

고모는 할아버지와 언니의 방에서 아주 긴 이야기를 아주 비밀스럽게 나누고 있었다. 엄마는 안절부절 세상의 모든 짜증을 끌어모아 우리에게 나눠주는 중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이럴 때 왜, 나의 아빠는 옆에 없는지, 엄마의 지원군은 아무도 없었다. 


고모는 뚱뚱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우린 당연히 안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봐도 고모의 단호한 목소리만 들릴 뿐, 나의 불쌍한 엄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내가 학교에서 선생님의 물음에 답할 때처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얼굴뿐 아니라 이런 면은 엄마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고모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커졌다. 엄마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아 나는 고모가 너무 미웠고 확실하지 않지만, 왠지 같은 편일 것 같은 할아버지도 너무 미웠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소중한 우리의 연립 아파트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정의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이지 우성이의 똥 냄새보다도 더 지독했다. 


나는 살며시 안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틈새로 고모를 보았다. 

악, 깜짝이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씩씩거렸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난, 그때 정말 흥분했고 화가 나 있었다. 소중한 나의 엄마가 힘들어하는 건 그 무엇이라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모에게도 난 착한 아이였던 터라, 나의 동그란 눈을 본 고모는 조금 놀란 눈치다. 

아니다, 이건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왜냐면 그렇게 나를 보고 나서도 고모는 끝까지 자기 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그곳이 지겨워 그만 살고 싶어 나왔을 때, 고모는 아들이 아니라며 내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난 그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혔다. 자신도 딸이 있었고, 여자면서, 어찌 나를 비난한단 말인가, 또한 내가 어떤 아이인 줄도 모르고 방금 환한 빛을 본 아이를 그렇게 대접하다니. 

그렇게 나의 이름은 오랫동안 그 누구도 지어주지 않았다. 


아빠의 사정은 잘 모르겠다. 아닌 척하며 나를 보기는 한 건지, 실망은 했지만 소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한때 나의 집(뱃속)이었던 나의 엄마가 손수 지어준 이름, 우재가 되었다. 

참으로 남성스러운 이름이 아닌가, 아직도 나의 이름을 말하면 다들 성별이 남자인 줄 오해한다. 하지만 난 나의 이름이 좋다. 왜냐면 나를 반기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나를 반기고 사랑해 준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고모가 돌아간 뒤 당분간, 이라는 희망적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우린 함께 살게 되었다. 


그날 아빠는 퇴근 후, 그 무지막지한 권력과 용기를 가진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도망치듯, 또 밖으로 나갔다. 물론 꼴깍, 한 잔을 위해 아니, 몇 병을 마시러. 

그렇게 엄마는 더 많은 양의 반찬과 밥을 해야 했고 대충, 점심을 때우는 날들은 사라지고 늘 제대로 챙겨줘야 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미간에 마치 상처처럼 내 천 자가 늘 선명했다. 

그래 맞다. 그 자국은 상처였다.


방을 빼앗긴 우정의 살벌함은 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사나운 개처럼 막 달려들었다. 덕분에 결국 불쌍한 내 동생 우성이는 방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우성이의 방이 우정이의 방으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우정과 나는 좀 더 큰 방으로 책상과 침대를 옮겼고 우성이는 방 없이 그때부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물론 할아버지와 함께 사용하긴 했지만, 담배 냄새 풍기는 곳에서 무슨 공부가 됐을까 싶다. 

불쌍한 우성이.


우리 할아버지는 참, 염치없으신 분이다. 

자식의 결혼식에도 유랑을 다니느라 오지도 않았고, 돈 한 푼 보태 주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갈 곳도, 돈도 사라지고 자식에게 숟가락만 들고 온 모습이라니, 내가 만약 아빠였다면 할아버지를 모시길 원했을까 싶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청순하고 단아했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의 무서운 아주머니들처럼 똑같이 변해 갔다. 이유 없이 빗자루를 들고 우릴 혼내거나 우리의 웃음소리만으로도 화가 날 수 있는지, 욕을 퍼붓기도 했다. 가끔, 혼자 허공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마치 봄에 핀 꽃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과 같았다. 엄마 꽃은 이제 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나는 더더욱 열심히 할아버지를 미워하기로 했다.          

 

나는 두 번째 소풍을 준비했다. 당연히 엄마가 싸 준 김밥을 들고 소풍 장소에 찾아온 엄마를 찾아 얼른 달려갈 생각뿐이다. 하지만 난 너무 큰 절망에 빠져들었다. 엄마가 아팠다. 몸의 모든 부분이 아팠다고 했다. 아마도 상처 난 미간처럼 몸도 보이지 않은 상처가 난 것은 아니었을까.


아, 그렇다면 아빠가 올 거야,라는 당연한 생각을, 당연한 기대를, 바라며 기도했다. 

하지만 모든 상상은 무너져버렸다. 나의 김밥도 달콤한 음료수도 온전히 나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젠장, 나도 아프고 싶었다. 아니 그냥 휙, 하고 쓰러져서 입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면 돌부리에 일부러 걸려 넘어져 볼까, 생각도 했다. 


그래, 거기까진 괜찮다. 소풍을 마치고 빠르게 연립 아파트로 돌아오면 되는 거다. 

난 이를 악물었다. 한데 엄마와 아빠는 이상한 수를 놓고 있었다. 나에게 의견도 묻지 않은 채, 그럴 일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발 내 생각을 물어봐 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이게 있을 법한 일인 가 나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헐,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소풍을 갔다. 난 할아버지를 그때 처음 본 것과 같았기 때문에 어떤 친숙함이나 끈끈한 정, 같은 게 없었다. 게다가 엄마가 다시 꽃을 활짝 피울 때까지 미워하기로 했기 때문에 함께,라는 말은 나와 할아버지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아직은 그냥 남 같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또한 할아버지는 늘 당신이 먼저여야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거다. 


할아버지는 키가 정말 크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 늘 절룩이고 걸어야만 했다. 그 다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잘못도 없이 그냥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매를 맞았다고 한다. 아직은 남 같은 할아버지지만 이 일만큼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일이다. 


아빠는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할아버지의 억울함, 을 찾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 부러진 증거가 없다면 그것은 없는 일이다, 고 나라에서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흐른 후, 할아버지는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했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오른발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다리로 할아버지는 늘 움직인다. 새벽 운동을 했고 아침을 해결하면 다시 나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할아버지다.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밥은 늘 고봉처럼 드시지만 그 쌀들은 모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렇게 삐죽, 키가 큰 할아버지와 나는 소풍을 간 것이다.

너무 슬펐고 우울했지만, 소풍 목적지에 도착해서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강을 보고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할아버지도 함께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 아이들은 엄마를 찾아 돗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알록달록한 과일과 색동저고리 같은 색의 김밥을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아이들이다. 난 돗자리도 가져오지 않은 할아버지를 보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이를 물고 꾹, 참았다. 

나는 착한 어린이여야 했으니까.


나는 찬찬히 할아버지의 두 손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빵이라도 가져올 생각은 할 수 없었을까? 엄마는 왜 할아버지에게 내 몫을 챙겨주지 않았을까, 내가 굶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의 첫 소풍은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역할은 이럴 때 해당치 않는 건가? 

나를 이렇게 홀로 김밥 없는 소풍, 돗자리 없는 소풍에 덩그러니, 떨어뜨려 놓다니 괴롭고 외로웠다.

당연히 난 실망감에 배가 불러 배고프지 않다. 그저 절뚝거리고 삐죽하고 머리가 하얀 정말 누가 봐도 할아버지 같은 할아버지가 창피했다. 앉을 곳도 없이 우린 서성거리거나 돌바닥에 앉았다. 그러다 할아버지는 나를 무작정 끌고, 어묵 장사하는 아저씨에게 데려갔다. 


“오뎅 묵으라"


어른들은 참 막무가내다. 왜 또 물어보지 않는 걸까? 난 어묵 따위가 먹고 싶을 리 없었다. 할아버지는 긴 막대를 내게 내밀며 또 말했다.


“무라"


난 그것을 또 착하게 받아 들어 뜨거운 김을 식혀가며 조금씩 베어 물었다. 그런데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이 무슨 폭포수처럼 흘렀다. 얼마나 많은 양의 눈물인지 눈앞에서 파도의 물결이 보였다.

도저히 반 정도 남은 어묵을 마저 먹을 수가 없어서 내려놓았다. 할아버지는 왜 쓸데없이 눈물 바람이냐고 다그치며 내가 남긴 어묵을 간장까지 찍어가며 입에 넣었다. 이 와중에 간장을 찍다니, 정말 간장까지 찍어 먹을 여유와 엄마 없는, 김밥 없는 어린아이에 대한 연민은 조금도 없었던 거다.

그날 이후로 난 어묵을 절대 간장에 찍어 먹지 않는다.


난 정말 찍 소리도 내지 않고 엉엉, 울었다.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엉엉, 우는 게 가능한 아이였다. 나는 계속 엉엉, 대며 강가 앞 돌덩어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햇빛은 눈치도 없이 내 눈을 계속 쏘아붙였다. 게다가 찬 바람이 불 때쯤 요란 떠는 나의 비염은 또 재채기를 연발하게 했다. 역시 콧물도 나를 보기 좋게 한방 먹이고 끈적한 그것을 옷에 쓱, 하고 문질렀다. 

아주 운수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엄마도 김밥도 돗자리도 그리고 아빠도 없는 아이니까, 누가 나를 신경 써 준 단 말인가?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태어나서 우재라는 관심 섞인 이름을 갖긴 했지만 어쩌면 난,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 있었을까? 


이제야, 마른 눈물을 훌쩍, 하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다. 왜 점심시간은 이리도 긴 시간일까? 나에게 너무 잔인한 시간이었다. 이 학교에 전학을 오기 전 학교 담임선생은 내 꿈속에 자리했던 그 무시무시한 얼굴의 선생이었다. 선생은 도시락을 들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아님에도 책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물론 그때 우린 선생이 말하는 글을 적거나 책을 읽어야 했다.

나는 그때 분명히 보았다. 선생님의 투명한 도시락은 붉었고 군데군데 검은 알갱이들이 박혀 있는 음식이었다. 책을 읽는 척 그것을 먹는 모습을 보고 도시락을 아주 자세히 살폈다. 

검은색의 알갱이는 분명 총알 같았다. 왜 내 기억 속에 밥알에 총알이 박힌 시뻘건 무엇으로 비벼서 싼 도시락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 장면은 나이 먹은 지금도 머릿속에 훤하다.


설마 총알을 먹는 선생? 이 생각이 상상이라고 해도 좋지만 내 기억은 그랬다. 그 도시락은 분명 보통 도시락이 아님을 말이다. 그리고 짧은 머리카락과 대단히 큰 머리와 얼굴을 가진 선생은 당연히 입술도 무지막지하게 커다랬다. 도시락의 내용물을 한입에 넣을 땐 아, 나는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다행히 전학은 그 무시무시한 도시락을 보지 않게 되어 잘된 일이지만 이곳마저 내게 이런 시련들을 닥치게 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전과 다르게, 또는 학교생활을 힘들어한 부분과 다르게, 지금의 담임선생을 아주 좋아했다. 우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단발 머리카락은 굉장히 풍성했고 진한 갈색은 온화해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이 내가 앉은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책을 읽을 땐 엄마가 바르는 로션처럼 향긋한 파우더 냄새가 났다. 

가까이 얼굴을 마주해 보진 않았지만 난, 이 선생이 참, 좋았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얕은 강에 돌을 던진다. 참, 할 일 없는 행동이다. 

아, 이럴 수가. 나의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가을 잎을 입은 것처럼, 갈색 투피스를 입은 나의 선생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선생은 분명 나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고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난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런, 선생은 이제 바로 내 앞에 서 있다. 마치 가을날의 따뜻한 햇살 같은 파우더 냄새가 바람에 날린다.


“할아버님, 안녕하세요, 전 우재 담임입니다”


할아버지는 오뎅(어묵)을 간장에 찍어 위 속에 집어넣었던 힘을 모아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나누었다. 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때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재 일어나 인사해”


“괜찮아요, 할아버님”


선생님은 내 키만큼 쪼그려 앉아 네모난 상자를 내게 들이밀었다.


“우재야, 이것 도시락이야 엄마께 전화가 왔어, 같이 오지 못하셔서 우재 걱정이 많으시네?”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짓말’


“자, 받아, 할아버지와 함께 먹으렴”


난 그때 정말 묻고 싶었다. 이 도시락이 나의 엄마가 선생에게 부탁한 것이 사실인지 묻고 싶었다. 선생은 주황색 음료수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난 또 모기의 날갯짓 소리를 낸다.


“감사합니다”


역시 착한 아이는 감사하다, 고맙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를 잘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선생에게 연신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오직 나의 궁금증은 도시락의 출처였다. 한참 후, 알게 된 사실은 엄마는 선생에게 전화한 적도 도시락을 대신 전해 달라는 부탁도 없었다.

나의 기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때부터 난 아주 쓸쓸하거나 삐딱하거나 툴툴거리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소중한 도시락 속 김밥 색동저고리를 한입에 집어넣어 구겨버리고 있었다. 난 도저히 그 소중한 도시락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내친김에 난 주황색 음료수를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할아버지가 손짓하며 말했다.


“니 먹어”


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벌써 음료수는 할아버지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나의 선생님, 가을 색을 닮은 나의 선생님. 얼굴은 보름달, 옷은 가을 잎, 가을의 노란 추석 빛을 닮은 나의 선생님, 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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