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 나의 작은 사회
코스모스가 질서 없이 왼쪽, 오른쪽, 또는 땅을 향해 가득 피어난 우리 집, 바닥은 마치 시멘트 가루가 섞인 것처럼 회색과 검은색 갈색이 섞인 흙이 수분을 가득 머금은 채 자리 잡고 있다.
때는 1980년, 요즘은 보기 힘든 담이 없는 집, 듬성듬성 회색의 커다란 건물 밑으로 하얀색 페인트칠이 난무한 집, 어울리지 않은 주황색 지붕이 눈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햇빛이 만연했고 문을 열자마자 꽃이 보이는, 난 우리 집을 참 좋아했다. 아주 희미한 기억이지만, 엄마가 장미꽃을 좋아했었나, 아니면 코스모스를 좋아했었나,라는 생각을 이제 와서 해 본다.
아마도 결혼 전에는 꽃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 많은 나의 엄마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면 씁쓸하지만 그건, 돈을 지출해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웠던 나의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완벽한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집은 한 동네의 작은 화원처럼 꽃이 늘 만발하던 곳이다. 장미꽃은 덩굴 째 벽에 붙어 입을 헤, 하고 벌려 벌들이 날아와 쉽게 화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치 내 가족처럼 친절함을 갖추어 그들을 대했다.
마당 한 편에는 아빠가 애지중지하는 붉은색 오토바이, 들마루를 조금 닮은 어색하고 삐딱한 사다리꼴 들마루, 이따금 나는 그곳에서 유연하게 쭉쭉 잘도 찢어지는 다리를 뽐내며 그곳이 무대인 양, 장기를 뽐내기도 했다. 양쪽 다리를 180도로 쭉, 뻗어 가느다란 양쪽 팔을 올려 원을 그릴 때, 날아오는 박수와,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내미는 짭짤한 용돈은 나와 내 형제들의 입을 달달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오늘 계획에도 없던 무시무시한 쇳덩이에 내 머리와 머리카락을 맡기는 날이다.
뭐, 난 늘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밖에 안 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멀리 도망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제대로 말하자면 북한의 김일성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엄마가 이럴 땐 너무 미웠다.
이 작은 동네에서 늘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는 그 아주머니는 첫, 실험자로 왜 나를 선택했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내가 착한 아이, 또는 약간 부족한 아이란 것을 눈치챈 거겠지, 나는 내심 이렇게 생각하며 그 아주머니를 미워했고 증오했다.
나는 집 마당으로 나와 시멘트 바닥에 화석으로 아주 못생긴 여자의 얼굴을 그려 놓고 동그라미를 만들어 낙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분은 나아지거나 이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
아빠가 늘 갖고 다니는 이 화석이란 물건을 우린 이렇게 화석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늘 우리 집에 있었고 그것은 꼭 우리가 하는 놀이,라는 종목에 늘 있어야 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지금 그 물건이 뭐라고 정확하게 불리는지는 모르겠다. 초크라고 불리는 게 맞을 것이다. 아마도 화석이란 이름은 오랫동안 시골에서 정확하지 않게, 그냥 그렇게 불려졌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빠는 퇴근 때마다 늘 설계도를 옆구리에 끼고 그 하얀 화석을 들고 퇴근했다. 다음날 그것을 가져가는 것을 꼭 잊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석이란 물건은 우리 집 서랍 속에서 자주 찾을 수 있는 놀잇감이다.
사실 내가 조금 자라서 어른 되었을 때도 낡은 서랍 속에서 그 물건을 자주 보았었다. 왜 그때 그것을 박물관에 귀한 것을 놓아두는 것처럼 보관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낙서를 하던 중, 쇠가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무시무시한 아주머니가 무거워 보이는 초록색 가방을 들고 내 이름을 불러댔다. 역시나 무서운 색깔의 입술이다.
엄마가 말한 시간은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지 않았던가, 이럴 수가, 무서운 아주머니의 쓸모없는 부지런함이 나를 덜덜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공포가 시작되었다.
심장이 두근, 발가락이 간질거린다.
‘아 도망갈까, 어떡하지?’
“우재야.”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때의 난 뭔가 이상할 정도로 어리숙했고 바보처럼 착했다. 또는 칭찬에 목이 말라, 갈증에 허둥대는 병, 이라도 있지 않았나 싶다.
난 마음과 다르게 벌떡 일어나 손을 모으고 허리까지 굽혀 가면서 인사를 했다. 아마도 내가 그린 낙서에 머리카락이 닿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녕하세요”
이런 행동은 기계처럼 내 몸에 습관화된 지 오래다.
“엄마는?”
“집에 계세요”
난 가까워진 아주머니의 가방에 시선이 멈추었고 녹이 슨 쇳덩이가 검고 붉은색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난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걸 내 머리에 갖다 댄다고?
아, 하느님 저를 도와줄 수는 없는 건가요…’
난 그때부터 온몸이 뻣뻣하고 완벽한 기계처럼 엄마와 무시무시한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하라는 대로, 그대로 행동했다.
“우재, 너 지금부터 움직이면 안 된다?
이거 굉장히 뜨거우니까 정말 조심해야 해”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지만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위험하면 저 아주머니가 조심해야 지 왜 내가 조심해야 하는 건지 말이다. 난 로봇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아주머니가 말을 뱉을 때마다 풍기는 크레파스 냄새 때문에 내 얼굴을 조금이나마 멀리 두고 싶었지만, 마녀 같은 입술이 자꾸만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길래 왜 이런 위험한 장난을 어른들은 아주 자주 일삼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는 위험하다는 단어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은 듯했다.
위험, 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처럼 기계처럼 앉아 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쇳덩이를 뜨거운 불에 달달 달구고 아주머니는 나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나의 머리카락이 쇳덩이에 돌돌 말리는 순간 고약한 약 냄새와 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금씩 열에 끊어진 머리카락이 바닥에 툭 툭, 떨어졌다. 이건 마치 비상상태!
‘엄마, 뭔가 타고 있어요, 나 좀 봐주세요’
나는 눈빛으로 제발 알아 달라고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는 올해 처음 나온 사과라며 사과를 깎아 은색 쟁반에 예쁘게도 깔아 놓았다. 사과를 깎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철컥, 철컥 내 머리카락을 쇳덩이가 움켜쥘 때마다 나는 소리에 눈물을 질금거렸다.
나의 인내심이 기계적으로 적응하고 있을 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제 나는 죽는 건가?
나의 왼쪽 귀에 아주 날카로운 것에 잘려 나간 것처럼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다. 결국 나의 기계적인 본능적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악 아파”
아주머니는 놀라지도 않는다.
“어머, 우재야 움직이니까 그렇지”
이 마녀 같은 사람은 또 내 탓을 한다.
“가만있어 봐 어디? 응?”
엄마는 내 비명에도 놀라지 않고 마치 구경꾼처럼 나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왜? 데인 거야?”
아, 나는 그제야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 안심하려던 찰나 아주머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에이 괜찮아, 약간 데인 거야”
엄마는 나의 비명 보다 그 역한 크레파스 냄새를 풍기는 아주머니의 말을 믿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로봇이 되었다. 아주머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우재는 눈이 진짜 이쁘네, 머리를 말아서 더 예뻐 보여”
내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베어 문 사과에 묻은 붉은 자국만 보았다. 거울을 내 손에 쥐어 준 아주머니가 다시 말했다. 정말이지 말 좀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속과 겉이 다른 아주 착한 아이니까,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했다.
“자 봐 어때? 맘에 들지?”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나는 대답했다.
“눼에”
엄마는 정말 나의 모습을 확인했을까? 나를 딱 한 번 일 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훑고는 말했다.
“이렇게도 파마가 되네? 참 좋은 세상이야”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나는 거울에 비친 머리카락을 보고 놀랐다. 캔디에서나 나올 법한 아주 못된 계집아이 이라이자의 머리 스타일과 비슷했다. 난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데, 이라이자의 머리 모양이라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어떤 모습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걸까? 긴 머리카락은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아주머니는 할 일이 정말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고 또 힘이 남았는지 도통 우리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무시무시한 입술은 겉으로만 맴돌았다. 아마, 사과를 먹으면서 함께 빨아먹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먹어 버릴 것을 왜 바르고 다니는 건지 의문이다.
난 방 안에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빗으로 벅벅 문지르듯 빗고 또 빗었다. 그럴 때마다 오른쪽 귀에 통증이 밀려왔다. 욱신욱신.
자세히 보니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라 귀에 살이 오른 건가, 싶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귀가 내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면 분명 엄마는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모르고 넘어갈 것이다.
나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굵고 새까맣고 우둘투둘 남들이 말하는 돼지털처럼 뻣뻣했다. 그것을 돌돌 말아 놓았으니 유난히 작은 귀 뒤로 말아 넣어도 머리카락은 다시 불쑥, 튀어나와 귀를 감추었다.
나는 너무 슬펐다. 머리카락이 이 모양이 된 것도 귀가 아파서도 아니다. 내 작은 상처를 엄마가 또 모를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아주머니가 쇳덩이를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가방 속에 엄마가 내민 종이돈이 한 움큼이 들어있었다.
아, 마녀가 돈을 벌어 갔다.
결국 해는 지고 석양이 남아 낮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불을 손에 칭칭 감고 누군가를 꼭 껴안고 있는 듯이. 결국, 나의 소중한 엄마는 내 귀에 상처가 곪아 내 눈에서 고통의 눈물이 흐르고 나서야, 나의 귀를 알아보았다.
“어이구, 무슨 애가 이렇게 무뎌, 응? 말해야 알지 말을”
지금 막, 나는 또 엄마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아침 일찍 나는 무서운 병원에서 두꺼워진 귓불을 소독했고 응급 처치를 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고, 내가 멍청하다,라는 소리를 하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았다. 그리고 그날도, 지금도 나는 이불을 칭칭 감고 잔다.
엄마를 끌어안은 것처럼, 옆에 누운 사람이 한겨울에 얼어 죽든 말든.
난로를 방안 중간에 두고 우리들은 다닥다닥 붙어 잔다.
내 동생 우성이는 네 살, 언니 우정은 여덟 살이다. 나는 중간 여섯 살. 어쩜 터울도 그렇게 딱딱 잘 맞췄는지 우린 정해진 두 살 터울이다. 언니 우정이는 그야말로 우리 둘에겐 절대적인 군림 자다. 뭐, 엄마가 더 큰 권력을 휘두르기는 하지만 나의 작은 사회에서는 우정이가 역시 일등이다.
그리고 난, 언니에게도 착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물론 설명할 필요도 없이 동생에게도 그렇다.
그냥 쉽게 말하자. 난 누구에게나 그랬다. 하지만 속은 종류도 모를 것들이 부글거리는 악마다. 나의 속마음이 그렇다는 건 아마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다. 왜냐면 난 복수를 하지 않았고 이라이자처럼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과 머릿속은 순전히 악마로 가득했다. 늘 복수를 꿈꾸기만 했던 악마.
언니가 아마 이 소리를 들었다면 나를 비웃으며 한마디 했을 거다. 지랄한다,라고.
추운 겨울밤, 난로를 중간에 두고 이불을 칭칭 감고 자는 그날 밤, 나는 그렇게 또 지랄했다. 그렇다, 또라고, 얘기를 해야 이 단어가 미래형이 된다고 생각한다. 계속 쭉, 이루어지는 또! 또!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아찔했던 순간은 언제나 함께한 나의 소변 습관이다. 난 그렇게 또 오줌을 쌌다. 나는 분명 불안감에 자기 전 소변을 두 번이나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형광등이 꺼지기 직전 다시 한번 나오지 않는 소변을 쥐어짜듯 보았다. 그런데 이불에 오줌이라니, 엄마는 또 기가 막히고 분노가 막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표정이다. 이럴 땐 그냥 넋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는다.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정말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 천치,라는 식의 단어가 나열되기 시작한다. 중간에 욕이 섞이는 건 물론이다. 그 와중에 정말 다행인 건 내가 상처받을 시간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 봐도 난 바보가 맞다. 귓불을 쇳덩이 덴 사건도 그렇고 나는 매사에 내 의견을 말하기를 꺼렸다. 아니 꺼린 게 아니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혼날까 봐? 아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그건 아니다.
그날 밤도 여전히 무서웠다. 내게 밤, 이란 단어는 귀신, 어둠, 또는 굉장한 공포,라는 뜻으로 똘똘 뭉쳐 있다. 나는 거실에 하얀 형광등이 켜져 있을 땐 안도감에 빠져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지만 그것이 검게 변한 이상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또 다른 기계가 되어 버린다.
뭐가 그리도 무서웠을까? 때론 내 머리카락을 말아 놓은 아주머니의 모습이 꿈에 나와 나를 괴롭히거나 전설의 고향 따위에서 얼핏 본 귀신이 나를 잡아먹는 꿈에 늘 시달렸다. 나를 고등학교 때까지 못살게 굴었던 장면은 여곡성이라는 영화다.
아, 난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해가 인사할 것 같은 새벽 시간에도 눈이 덩그렇다. 차마 엄마에게 보이지도 않은 귀신이 보일 것 같고 나를 죽일 것 같다는 얘기를 나는 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지랄, 은 계속되었다.
나의 아빠는 아주 큰 키에 쩍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근육을 가진 멋진 사나이다. 남자답고 과할 정도로 정직하기로 소문난 사람, 그렇게 사회에서 늘 인정받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유년 시절, 아빠와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 셋 중 기억력이 가장 좋은 우정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난 참, 아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였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초등학교를 가기 전까지의 기억이 멈추어 있었다. 사람이 참 못났다고 느끼는 게,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은 아주 섬세하게 촘촘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엄마 아빠는 참 많이 다투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참 많이 다투었다. 엄만 동생과 싸우는 나를 보며 어린 동생이잖아,라고 말했고 언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나를 보고도 그러게 왜 언니한테 까불어?라고 말했다.
우리에겐 왜 싸우냐, 혼나봐야 정신 차리겠냐,라는 말을 무슨 물 마시듯 하면서 어른들은 늘 그렇게 싸우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야말로 어른들은 늘 말과 행동이 다른 존재다. 그때마다 내 속의 악마가 떠들었다.
‘엄만 왜 아빠한테 까불어? 아빤 왜 여자와 싸우는 거예요? 네?’
정말 이렇게 내가 말했다면 난 아마 그날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아빠는 그날도 아저씨들을 잔뜩 몰고 집으로 왔다. 이미 그들은 잔뜩 취한 것 같았다. 왜냐면 아저씨들이 말하는 마누라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에게 주머니 속에서 보라 빛 지폐를 꺼내어 각각 한 장씩,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취기가 없었다면 아마 지폐 한 장만 내밀어 맛있는 것 사서 셋이 나누어 먹어라,라고 했을 것이다.
아저씨들이 술에 취할 때만 마누라의 허락 없이 각각 한 장씩 지폐를 내미는 용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술은 그렇게 우리들을 기쁘게도 했고 어른들을 싸움의 도가니에 집어넣기도 했다. 아주 요물 덩어리인 셈이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우린 유치원을 가거나 학교를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에 들어야 했다. 또 그래야만 엄마가 쉬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인내심의 끝이 다다랐을 때 엄만 괜히 우리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저씨들과 아빠에겐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결론은 이럴 땐, 적당히 눈치껏, 잠이 오지 않아도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게, 우리의 생존본능이다.
엄마는 역시 미간에 내 천, 자를 그리며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 때문에 음,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음, 그런 일들이 일주일 내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엄마 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이불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아저씨들과 그리고 엄마의 억지스러운 웃음소리, 아빠가 한 잔 더 하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빠는 취기가 돌기 시작하면 항상 쇠젓가락을 두 손에 각각 집어 들고 상을 두드리며 엇박자로 노래를 부른다.
나의 작은 사회가 시작되었던 그 집에서의 쇠젓가락 박자 소리는 양은 밥상이라 꽤 자글거렸다. 나는 이불속에서도 찡긋거릴 정도였지만 우정이와 우성이는 그 소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양이다.
아빠는 기술자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성우나 가수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정말 굵고 점잖은 목소리로 아주 높은 음의 노래까지 완벽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표정과 강과 약은 말할 것도 없고 밀고 당기기는 과연 가수와 같았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을 보면 양은 밥상을 쇠젓가락으로 긋는 것처럼 자글거리고 오글거렸다.
아빠는 당신의 노래 솜씨를 알고 있었는지 어느 곳에서나 자신 있게 앞으로 나아가 노래를 불렀다. 그런 점을 보면 난 아빠를 닮지 않은 게 분명하다.
자정이 넘은 시간 아저씨들이 한두 명씩 빠져나가면 엄마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지고 싸움의 시작은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아빠가 무언가 두들기는 쾅, 쾅하는 소리가 나면 그땐 엄마의 잔소리가 멈추었고 엄마는 아주 시끄러운 설거지를 하며 잠든 아빠를 향해 듣지 못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신세 한탄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또, 젖은 요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엄마에게 위로해 줄 생각을? 또 이런 지랄을 해 놓고?...’
그날만은 아빠에 대한 기억이 또렷했다. 엄마가 나에게 욕을 퍼붓고 요를 정리할 때 아빠는 심각하게 말했다.
“혼낼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애를 무작정 혼낸다고 돼? 그만 좀 윽박질러 이 사람아”
엄마가 말했다.
“저 지지배는 지도 이유를 몰라
말은 안 하지, 근데 내가 어떻게 알아?”
휴, 결국 엄마와 아빠는 또 나의 지랄 맞은 오줌 때문에 아침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 언니 우정이 나를 세상 무섭게, 여곡성에 나오는 귀신처럼, 흰 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흘기며 말했다.
“저 오줌싸개
아우 짜증 나, 너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잖아?
너 이제 내 옆에서 자지 마”
나는 엄마에게 욕을 들어서도 아니고 언니가 눈을 번뜩여서도 아니고 청천벽력 같은, 내 옆에서 잘 생각 마,라는 소리 때문에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 것 같았다. 동생 우성이는 아직 어려서 엄마 옆에서 꼭 붙어 잔다.
잠을 잘 때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을 거라고는 저 못된 마귀 같은 언니의 곁에서 붙어 자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끔 언니가 기분이 좋았을 때를 기억하곤 잠에서 깨워 화장실을 함께 갈 수도 있었다. 그런 날은 얼마나 상쾌한 굿모닝, 인지 이제 좀 알 것 같지 않은가?
우정이 옆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니,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일주일 세 번 정도 일어나는 일을 나는 이제 매일 겪어야 한단 말인가, 하느님이 계신다면 저 좀 제발 도와줄 수는 없는 걸 까요?
정말 신은 있다. 나의 기도는 먹혔다. 하지만 이 일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우정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우린 여느 때처럼 시간을 보냈다. 난 우정이가 나와 놀아준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골려 먹었고 우린 아직 아기 냄새가 나는 우성이를 만지작거리며 업어 주기도 하고 방실거리는 엉덩이를 토닥거리기도 했다.
그날, 엄마는 여느 때 보다 더 일찍 저녁을 준비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 엄마는 외출을 위해 화장을 했다. 워낙 붉게 바르는 입술을 아빠가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아주 옅은 보라색이 감도는 립스틱을 발랐다.
거기에 짙은 청색 투피스를 입고 목에는 포인트 스카프도 잊지 않았다. 짧은 머리카락이었지만 엄마는 정말 예쁘고 청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엄마가 화가 나면 육두문자가 먼저 나오다니, 아마 남들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긴 엄마가 하는 말을 늘 그랬다.
“난 원래 안 그랬어, 다 니들 키우느라 이렇게 된 거야”
아, 그렇다면 자식은 엄마를 괴물로 만드는 존재인가. 우리를 키우느라 육두문자가 늘었다는 말은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말로 애써 이해해 보기로 했다.
엄마가 가방을 챙기며 우정에게 말했다.
“아빠랑 모임이 있어서 다녀올 거야
자, 이건 아저씨네 전화번호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고
우성이 잘 봐, 싸우지 말고, 둘 다 알았어?”
역시 언니는 응, 이라는 대답을 했고 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때 엄마는 답답한 느낌의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뒤늦게 대답할걸, 이라는 후회를 해 봤자,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이 시간부터는 군림자의 뜻대로 모든 것이 돌아갈 것이다. 나는 최대한 언니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다. 그래야 오늘 밤 언니 곁에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언니는 학교 숙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성이에게 눈을 떼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엄마는 우정에게 우성이를 잘 돌보라는 얘기를 했다. 물론 나도 함께 들었다. 역시 군림자는 예스,라는 대답만 했을 뿐이다.
그 몫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응 언니"
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꼭 군림자에게 언니라는 호칭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잠깐, 지금 본 우정이의 눈이 웃은 건가? 그럴 것이다. 웃었던 게 분명하다.
아, 난 오늘 우정이의 곁에서 잘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이는 숙제를 마쳤는지 진짜 숙제를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성이에게 다가와 볼을 꼬집듯 말았다. 통통한 우성이의 볼살은 진짜 저렇게 만져야 제맛이다. 우성이가 싫다며 언니의 얼굴을 납작하고 작고 통통한 손으로 밀어 보지만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성이를 못살게 구는 것을 애정으로 표현했다.
하, 내가 아기였을 때도 저 마귀 같은 우정이는 나도 저렇게 귀여워했을까? 하긴 우정이와 나는 두 살 터울이니까, 그럴 리가 없다. 지도 아기였을 테니 말이다. 나는 우성이에게 과자를 하나 집어 주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먹을 것이 없으면 입에 넣고 오랫동안 우물거리긴 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남매는 먹는 것 때문에 싸운 적은 거의 없다.
다만 김치를 먹지 않은 입만 고급인 우정이는 편식 때문에 엄마에게 가끔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얻어맞기도 한다. 그 생각을 하니 아, 난 또 지금 이렇게 나 키득거리고 있다.
내 속의 기분 좋은 악마가 말이다. 낄낄낄.
엄마가 없는 시간이 이제 조금씩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우성이가 귀여운 것도 잠시 조금씩 귀찮아지고 있었다. 그때 우정이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손에 움켜쥐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체 저 돈은 어디서 났는지, 엄마가 또는 아빠가 몰래 줬을까? 순간 얄미운 생각에 진심을 다해서 언니의 볼을 세게 비틀어 주고 싶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나를 약 올리고 싶어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 작고 가늘고 쌍꺼풀 없는 눈은 배시시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곤 동전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기까지 하며 나를 보았다. 난 부러움에 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어우, 더러워”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세상에 이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이제 좀 더 따뜻했던 이 세상은 끝이 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우정이가 갑자기 뭔가 토해내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우웩, 거렸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왜 그러는 거냐, 고 몇 번을 물었지만, 이 멍청한 우정이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지 목을 가리키며 괴로워했다. 이 멍청한 우정이는 동전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것도 오백 원짜리 동전을.
나는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들어 엄마가 적어 준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동시에 우정의 등을 미친 듯 내려쳤다. 그래도 숨을 쉬는 건 어렵지 않았는지 다행히 헐떡거리지는 않았다.
엄마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고 아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언니를 둘러업고 나갔다. 마치 아빠의 행동은 슈퍼맨처럼 빨랐다. 엄마는 이 상황에 놀라 울고 있는 우성이를 업고 아빠를 따라나섰다.
이미 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바다를 만들어 버리려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엄마는 그런 내가 있는지도 몰랐을까? 순식간에 아무 말 없이 나를 두고 그들은 사라졌다.
나만 남겨 둔 채.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홀로 집에 남았다.
하얀 형광등이 나를 지켜주었고 색색들을 비춰 주는 텔레비전이 내게 이야기를 건넸지만 나는 공포스럽다.
만약에 우정이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지쳐 더 이상 나오지 않던 눈물이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귀라도 괜찮으니 나를 오줌싸개라고 불러도 괜찮으니 제발 죽지만 말라며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랫배가 적잖이 아릿하고 금방이라도 화장실을 가야 할 것처럼 긴장이 된다. 아마 그때 나의 충격은 유년시절 처음 겪었던 굉장히 큰 소리의 천둥과 벼락과 같았을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 네 식구는 잠든 우성이만 제외하고 모두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우정은 벌건 얼굴을 하고 아직 체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군림자의 어깨와 긴 다리가 쪼그라져 보였다.
아빠는 퉁퉁 부은 나의 눈을 확인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아"
엄마는 아빠와 다르게 나를 보지도 않고, 우성이를 눕히고 우정이와 나를 앉혀 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초지종 묻고 혼내고 또 묻고 혼내는 것을 반복했다. 난, 그렇게 또 혼이 났다.
분명 내 잘못은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희한하게 엄마에게 혼나다 보면 난 정말 잘못을 많이 한 사람처럼 죄의식에 빠져버렸다.
“어떻게 이런 장난을 쳐? 니들이 우성이야? 응?”
다시 멀쩡히 돌아온 우정이를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건 아주 잠시, 나를 죄의식에 빠져 버리게 내버려 두는 저 마귀 같은 언니가 진짜 미웠다. 만약 나라면 엄마, 우재는 잘못 없어, 내가 혼자 그런 거야,라고 똑바로 말해 줬을 것이다. 아빠가 엄마의 목소리를 끊어 내지 않았다면 우린 아마 혼이 나다가 빗자루로 맞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우정은 똥을 싸러 갈 때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덕분에 나는 오줌을 지리기도 했고, 배가 아플 땐 똥을 참느라 방귀만 뿍뿍, 뿜어낼 때도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우정이 멀쩡한 것을 보면 분명 똥으로 동전이 나왔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우정은 운 좋게도 그 큰 동전이 세로로 목구멍을 막지 않고 그대로 내려갔기 때문에 안전했다. 만약 그것이 가로로 누운 체, 목구멍을 막고 있었다면 난 다시는 우정의 비열한 작은 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정말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긴 시간 동안 우정의 곁에서 또는 우정의 팔을 꼭 붙들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어떨 땐 우정이 미리 잠에서 깬 후, 나와 함께 어둠의 귀신들을 물리치고 화장실을 같이 가 주기도 했다.
아마도 우정은 그때 나의 눈물에 굉장한 감동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상상했듯 오래가지 못했다.
우린 그해 겨울 사건을 허리에 달고 다니며 또 그렇게 성장해 나갔다.
우성이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멜빵바지를 입고 노란 모자를 쓴 우성이는 정말 귀엽다. 게다가 한 번 미소를 지으면 보조개가 쏙 들어가 아주 예쁜 계집애처럼 보인다. 나는 귀여운 우성이를 보고 있으면 정말 계집애처럼 앞머리를 묶어주거나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꺼내 붉은 가루를 우성이의 볼에 발라 놓기도 했다. 이런 놀이는 우성이와 나만의 교감이기도 하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는 없는 것이 없다. 유치원도 수영장도 병원도 그 커다란 회색 건물들 안에 마치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처럼 완벽하게 펼쳐져 있다.
아 맞다! 그 시절 천국 같았던 소비조합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 없는 물건이 없는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형 마트 같은 느낌? 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에겐 대단한 곳이었다. 우린 그곳을 소비조합이라고 불렀다. 따지고 보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린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물론 회사에서 내어 준 것이다.
우정의 초등학교, 그러니까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그때의 학교도 생각해 보니 회사 앞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 집 가장은 대단한 직장에 소속된 회사원인 셈이다.
우성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엄마가 새로 사준 갈색 바지가 주황빛과 노란빛이 도는 바싹 마른 바지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우성이는 다른 아이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맙소사, 우성이가 유치원에서 똥을 쌌다고 한다.
선생은 그 바지를 빨아 말려 주다가 조금 태울 수밖에 없었고, 이 영악한 어린것은 친구의 바지를 얻어 스스로 얻어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똥 싼 자기 바지를 꽁꽁, 숨겨 두고 왔다.
엄마는 우성이가 집에 오자마자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은 이 녀석의 작전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어린놈의 기막힌 발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더 기가 막히고 대단한 엄마의 손아귀에서 결국,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은밀한 짓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막내 우성이는 혼나기는커녕, 오랫동안 어른들의 웃음거리 또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뭐 나도 손해 볼 건 없다. 나만이 아니라 쟤도 이제 똥싸개가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우정을 따라 회사 정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엄마의 불타는 한글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다. 난 입학도 하기 전에 ㄱㄴㄷㄹ부터 돌입했다.
나는 이 이상한 모양의 글자가 너무 어려웠다. 근데 그것을 가르쳐 주는 엄마가 정말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 어려운 것을 내게 가르쳐 주다니, 나는 정말 열심히 쓰고 외우 고를 반복했다.
결국 난 입학과 동시에 한글을 읽고 쓰기를 아주 잘 해내는 학생이 되었고 받아쓰기를 할 땐 간혹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내 것을 보려고 안달한 적도 있다. 참, 그때는 백 점 맞는 건 그리도 쉬웠건만, 알고 보니, 자라고 보니 난 점점 공부와 거리가 먼 아이로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사회가 시작된 집은 저지대 마을이다. 한쪽으로는 남한강과 이어진 크고 긴 물줄기의 강이 흐르고 있었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는 자주 범람하여 위험지대기도 했다.
결국, 올해 내리는 비의 양은 우리 마을을 순식간에 덮쳐버렸다. 물이 빠지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빠의 그 커다랗고 키가 큰 건물들, 공장들이 물에 반쯤 잠긴 것을 봤을 땐 자연에 대한 공포감에 기절할 정도였다.
이곳의 공동체는 다른 곳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아주 독특할 정도로 서로 간의 신뢰와 우정이 고리가 또 고리로 연결되어 끈끈했다. 물론 그 덕에 바람 잘 날 없는 날이 많은 마을이기도 하다. 옛말에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말은 진정 거짓이 아니다.
수많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모두 힘을 합했고 그 무시무시한 홍수를 아주 잘 이겨냈다. 심지어 아빠는 커다란 스티로폼을 타고 긴 나무를 들고 노를 저어가며 사람들을 구했고 또 동물들을 구했다.
아, 정말 멋지지 않은가? 나의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많은 노력도 끝내, 그리고 결국, 우리의 작은 사회가 시작되었던 이 아름다운 집은 많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는 곧, 회사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세상에 아파트라니, 그것도 회사에서 우리를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난 그때 나의 아빠가 회사에 굉장한 돈을 벌어 다 준다거나 굉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 이런 대접을 받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사실 회사 직원들이 모두 누리지 못한 혜택이었지만 다수의 이웃이 선택되었고 우리는 그 혜택 속에서 안전하게 조금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아주 특별한 아빠,라는 건 정답이었다.
시골에서 시골로 이사하는 거지만, 우리에겐 읍, 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아주 큰 슈퍼마켓도 있고, 돈가스를 파는 곳도, 죠다쉬,라는 킹 메이커가 있는 그곳에 우리는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린 뭔가 많이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그곳을 시내라고 부르며 그 먼 거리를 집에서 왕복하며 잘도 걸어 다녔다. 모두가 웃을 일이지만, 그때 나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곳은 상상 속의 서울과도 같았다. 충분히 우리에겐 그럴만했다.
소비조합에서 사던 두부, 콩나물 등은 이제 장바구니를 들고 가야 하는 시장이란 곳에서 구매했고, 그날은 우리 셋 모두 신이 나고 흥분했다. 꼭, 엄마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우리에게 다가올 달콤하거나 바삭하거나 씹는 맛이 일품인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것들은 정말 마약과도 같아서 나 같이 식탐이 없고 과자도 좋아하지 않은 아이도 목을 빼고 입을 헤, 벌리고 기다리기 마련이다.
기름이 지글지글 보글거리는 소리와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싸요 싸, 싸게 줄게요,라는 소리가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죽어서 털이 싹 뽑힌 살색의 닭들에게 물 샤워를 시키는 물줄기가 튈 때마다 나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으앗, 으아아.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작은 사회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