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prologue
라스코 동굴 안 깊은 곳에는 후세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우물'이라고 부르는
장소가 있다. 다음은 바타유 (Georges Bataille, 1897-1962)가 그곳에 그려진 벽화를
묘사한 글이다.
"꼼짝 않고 버티고 선, 육중하고 위협적인 동물 앞에...... 이미 숨을 거둔 남자가 나자빠져
있다. 동물은 들소다....... 들소는 상처를 입었고, 배의 벌어진 상처에서 내장이 빠져나온다.
분명 쓰러져 있는 남자가 손에 든 창으로 찔렀을 것이다....... 남자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머리는 새이고, 부리도 있다....... 죽어가는 남자의 성기가 발기되어 있다는 역설적 사실은
잘 설명되지 않는다." <주: 바타유 저, 윤진 옮김, 에로스의 눈물 (서울: 민음사, 2020)에서>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인류의 조상이 목숨을 걸고 들소와 싸우는 상황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벽화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을
것이다.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머리는 새이며 부리도 있는 사람은 샤먼일 것이다.
이 '완전한 인간이 아닌 남자'가 엄청난 도취와 흥분 속에서 자전적 스토리를 벽화로
남긴 건 아닐까? 벽화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와 긴장, 그리고 성적인 절박감은
그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샤먼이 인류-최초-예술가다.
벽화의 작가가 누구든, 라스코 동굴은 수만 년 계속된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인류-최초-예술가의 작업실이다. 오늘날에도 작업실은 오랜 잊힘과 적막을 견뎌야 하는
공간이다. 세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작가의 삶의 중심으로서
작업실은 역동적인 장소다. 작가의 내면에서 천사들과 악마들이 뛰쳐나오는 곳이다.
삶의 파편들이 '조응 (照應)'하여 헤세의 표현처럼 '한 방울의 순수한 빛',
즉 작품으로 응결되는 공간이다.
하나의 작품마다 한 번의 죽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죽음을 체험할 때마다 작가는 이렇게 중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라고.
이 순간에도 자기만의 동굴에서 자기만의 들소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작가들과 합류하는
마음으로 이 작은 책을 시작한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
(출처: 바타유 저, 에로스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