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현대 작가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미술사의 끄트머리에서 작업한다. 그런 그가 불편해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모방'과 '영향'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미술사를 웬만큼 꿰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선배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 '영향받음'이 그의 작품을 모방 논쟁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타인의 작품에서 자신의 체취를 맡으면 그의 생각이 "내 영향을 받았구나!" 하는 지점에서 순하게
멈추지 않는다. "내 작품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으로 화살처럼 날아간다. 영향받음과
모방의 경계가 이처럼 애매하다.
르빈 (Sherrie Levine, 1947- )은 뒤샹 (Marcel Duchamp, 1987-1968)의 작품들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자기 작업의 핵심이 모방과 복제라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현대 미술의 쟁점 자체를
주제로 삼는 동시에 구설수를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작가들은 모방과 영향이라는 문제에 속수무책이고 결벽증이라고 할 만큼
그 문제에 민감하다. 전시 오프닝에서 어떤 예술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냐고 참석자가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는 잠시 생각하더니 "모든 예술가에게서 영향을 받는다"라고 했다.
이 두리뭉실한 대답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니다. 작가로서는 누군가의 아류가 되는
위험을 피하고 싶었으리라.
나의 <Consoling (위로), Oil on Canvas, 60.6 x 45.5 cm, 2021>을 보고 관람객이
루오 (Georges-Henri Rouault, 1871-1958)가 연상된다고 했다. 칭찬인 줄 알면서도
나는 왠지 억울했다. 내게 잘못이 있다면 루오보다 늦게 태어난 죄밖에 없지 않겠나!
나는 속으로 웅얼거렸다: "좋은 그림은 어딘가 다 비슷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항의였다.
어렵게 완성한 그림에서 다른 작가의 분위기를 내가 먼저 (혹은 나만)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버린 것이다. 이럴 때 나는 타이틀을 다음과 같이
만든다: <The Diva (inspired by Bill Viola), Oil on Canvas, 65 x 53.1 cm, 2022>
누군가 내게도 똑같이 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