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그림 신념 09화

좋은 그림과 좋은 감상자

9 장

by 채한리 Chae Hanlee

현대의 미술 감상자는 '대중'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버릴 수 없는 특별한 예술체험자다.

그의 예술적 취향은 진취적이며 고급스럽다. 그는 정서적으로 민감하고 자신의 안목에 대한

확신도 강하다. 그러나 이처럼 수준 높은 감상자라고 다 '좋은 감상자'일까? 그가 높이

평가하는 그림이 무조건 '좋은 그림'일까? 좋은 감상자와 좋은 그림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인간의 마음은 평화, 사랑, 유쾌, 즐거움 같은 밝은 지평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지금은

편안해도 어느새 고통, 불안, 슬픔, 좌절 같은 어두운 지평에 가있다. 어두움 속에서만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빛을 찾는다는 보장이 있어도 없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밝음이 아니라 어두움이 그의 존재조건이기 때문이다.


하루끼 (Murakami Haruki, 1949- )에 따르면 '작가'는 '아픈 부분, 비정상적인 부분,

특이한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찾는 사람'이다. '좋은 감상자'는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감상자는 어두움이 인간의 존재조건임을 자연스럽게 느끼며, 자신의

존재성을 어두움에서 발견한다.


좋은 감상자에게 '좋은 그림'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분위기 체인저가 아니다. 슬픈 사람을

위로해 주는 다정한 힐러 (healer)도 아니다. 그에게 좋은 그림은 어두움이 인간의 존재조건임을

재확인해준다. 좋은 감상자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존재조건과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안목이나 취향과 무관하게 절대적인 의미에서

좋은 그림이 '있다'라고 믿는다.


아래 그림들의 주제는 각각 불안과 고독이다. 살아남기 위해 밤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야

하는 세헤라제데와, 아파트에서 반려견을 벗 삼아 홀로 사는 수많은 이웃 중 한 사람을 그렸다.



<Scheherazade, Oil on Canvas, 60.6 x 45.5 cm, 2022>


<In the Apartment, Oil on Canvas, 90.9 x 72.7 cm, 20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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