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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한리 Chae Hanlee Mar 13. 2024

짜라투스트라는 학자가 아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50

그냥 직관적으로 '학자'를 정의해 보자.  배울 학(學)에 놈 자(者)이므로, 학자란 일단 '배우는 사람'이란 뜻이 될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타인에 의해 이미 정립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익히는 것으로서, 배우는 자의 태도로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은 '겸손', '세심', '신중', '성취', '(공부를 끝낸 자의) 고고함' 등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무엇을 새로 창조한다거나 새로 사색해 낸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니체는 학자를 대체로 경멸하였다.  굳이 그의 학자경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으나, 일단 그의 서술을 음미해 보자.  '학자'란 '손재주의 노련함으로 짜고 묶고 하여 <<정신의 양말 (die Strumpfe des Geistes)>>'을 뜨는 자다.  그리고 '곡식알들을 넣어주면 제분기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자다.  또 이렇게도 비아냥거린다: 학자란 '서로 감사히고 신뢰하지 않는 자'로서 '잔꾀가 많고 재빠른 자'이다. (1) 


물론, 모든 학자가 니체가 비꼬듯 그런 우습꽝스럽게 현학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단 니체가 묘사하는 학자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자기 사상을 사색해 내는 환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저 남의 생각을 공부만 하고 기껏해야 공부한 내용을 간추리거나 주를 달아 해석하고, 한두 발짝 새로운 해석거리를 어쩌다가 제시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   


그리고 니체에 따르면, 짜라투스트라는  '남이 환희 속에서 사색한 것을 털어 생기는 먼지'와 같은 '하잘 없는 격언(格言)과 진리를 떠벌리는 자' 학자가 아니다.  (2)  짜라투스트라가 학자가 아니라면, 그는 누구인가?  그는 스스로에 대해 '학자(들이)가 좋아하지 않는 자유로운 자'라고 한다: 


"나 자유를 사랑하며 신선한 대지를 감싸고 있는 대기(공기)를 사랑한다.  그리고 저들 학자들이 누리고 있는 존엄과 존경 위에서 잠들기보다는 차라리 황소가죽 위에서 잠을 청하겠다." (3) 


그는 또 스스로에 대해 말하길, '자기 사상을 욕망하는 자'라고 하였다.  즉, 곰팡내 나는 어두운 골방에서 한물간 남의 사상이나 뒤적이며 이렇게 저렇게 해석이랍시고 엮어내는 사람과 스스로를 구별한다.  "나 너무 뜨거워서 나 자신의 생각들로 화상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4) 


그런데, 나보고 짜라투스트라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는 '환희 속에서 사색하는 자'라고.  완벽하게, 철저히 자유롭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환희 속에서 사색할 수 없다.  오직 진리가 가슴을 칠 때 그때만 사색의 환희를 맛볼 수 있는데, 진리는 도도하여 아무나 기쁘게 하지 않는다.  진리는 과감한 자,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뛰어오르는 자, 지식이 아니라 열정으로 준비된 자를 사랑한다.  진리는 창조자를 사랑하여, 오직 그에 의해서만 창조되길 열망한다.


한 때는 니체도 학자였다.  그러나 '학자의 관(冠)'을 벗어버린 순간부터 그는 창조자가 되었다. 


"내가 엎드려 잠자도 있을 때, 한 마리의 양이 내 머리의 화관(花冠)을 집어삼켰다.  삼키고 말하기를 <<짜라투스트라는 이제 학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고는 비틀거리며 저쪽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되기를 나의 운명이 요구하므로, 이렇게 된 것을 축복할 지어다......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학자(들)의 집을 떠났다.  그리고 내 배후의 문을 힘차게 닫아 버렸다." (5) 






(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44-146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44 참조. 

(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pp. 212-213

(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4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p. 213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43-144.  니체는 1879년 경 자기 사상을 찾는 길을 걷기 위해 고전문헌학자__그야말로 학자 중의 학자였던 것 같다__로서의 길을 접고 강단을 떠났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그로부터 4-5년 후에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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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니체를 꼼꼼히 읽는 우리는, 아니 '나'는 학자연하는 한 사람일까?  환희에 찬 창조적인 사색가로부터는 아주 먼 지점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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