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 Sep 10. 2023

"한심한 놈이네, 지 여자친구를 자살하게 두고."

자살 시도, 그 이후의 일상 4

"한심한 놈이네, 지 여자친구를 자살하게 내버려 두고. 나였으면 안 그랬을 텐데"

먼 지인의 이야기를 전하자 남자친구가 혀를 찼다.


"야. 나도 이번에 그렇게 엄마를 잃을 뻔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내가 한심하냐?"

둘만의 애칭도, 다정한 목소리도 다 집어치우고 덤비니 간만의 데이트는 침묵으로 이어졌다.

둘 다 사과 없이 헤어졌다.



나는 한심한 놈이다. 도무지 반박을 할 수가 없다. 

"너는 저 잘난 맛에 살잖아-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

엄마가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주 7일 근무했다. 평일에는 엄마의 본업에 충실했고, 주말에는 시골까지 2시간을 달려서 내려가 계부의 농사를 도왔다.

월요일은 힘든 요일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엄마에게 특히 그러했다.

농사를 짓고 나면 농작물을 다듬는 작업이 남아있는데,

퇴근하면 다시 농부의 아내로 출근을 해야 했으니까.


젊지 않은 나이에 피로가 회복될 여유조차 주지 않으니 

성치 않은 몸은 자꾸 고장이 났다.


"그만 좀 해. 시골에 내려가지 마, 힘들잖아."

오롯이 지아비에게만 헌신하는 당신을 보는 나 또한 힘들었다.


일부종사를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비롯되었을까? 

나는 그녀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그리고 발령신청서를 통해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자신을 도왔지만 딱히 도움은 되지 않았던 딸이 타지로 가고

그녀가 편해졌는지 어찌 되었는지 그 세월은 잘 모른다.


.

같이 사는 동안

딸은 고작 깨 따위를 같이 골라줬고

계부의 빨랫감을 함께 널고 갰으며

계부가 모시는 시제 준비를 도왔다.

고통을 호소할 때는 안마를 해줬고, 그보다 심한 잔소리를 해댔다.


그리고 딸의 잔소리는 언제나 모녀싸움으로 이어졌다.

"너는 저 잘난 맛에 살잖아-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람이 어떻게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사니!"


"나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건 아니야.

난 미술이 하고 싶으니까- 출근하기 싫을 때도, 하기 싫은 일도 계속 감내하면서 돈 벌어.

난 엄마가 고생하는게 싫으니까 - 이까짓 풀 쪼가리? 사먹으면 돈 만 원도 안하는거! 

지금 몇시간 동안 같이 관절 상해가면서 다듬고 있잖아!"


"너! 들어가. 너? 하지 마."

그녀가 화난 얼굴로 기껏 다듬은 농작물을 흙과 함께 던지며 삿대질하면 

나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리고 새벽 2시까지 켜져있는 거실 불을 못본 채 하며 눈을 감았다.


.


"너는 저 잘난 맛에 살잖아-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람이 어떻게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사니!"


그러는 당신은 - 

당신 잘난 맛에 살면 안 됐었나.


자식 둘을 홀로 키워낼만큼 잘난 당신이 

왜 잘난 맛에 살면 안되는지


어째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이 아닌 논밭으로 가야하는지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그 집 부모-그리고 조부모-증조부모의 제사를 지내야하는지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아본 적도 없이 각박하게 살아온 당신이

이제라도 하고 싶은걸 하며 살면 안되는지


자녀로서의 삶과 부모로서의 삶에서 꽤나 우수한 성적으로 잘 졸업한 당신이

그러니까 

도대체

어째서

본인의 인생이 아닌 한 남자의 배우자로서의 삶만을 살아야하는지



수많은 질문에 끊임없는 오답을 내기보다 

도망을 선택한 나는 

한심한 놈이라기보다 한심한 선택을 한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신변보호대상자는 도망칠 수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