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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채 Dec 21. 2024

KTX에서 술 먹고 음악 듣는 여자

살다 보면 만나는 재밌는 진상 이야기

KTX를 비롯한 기차를 타면 신기하게도 다양한 진상을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여행을 갔을 때 KTX를 탔고, 불행하게도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생각 이상으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마치 KTX가 자신의 원룸인 양, 술을 마시고 음악을 이어폰 없이 크게 틀어놓으며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 두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는 조용히 좀 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전자의 생각을 더 많이 했겠지만, 요즘은 후자의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사람 많은 KTX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듣는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독서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 작법서였기 때문에, 나는 목적지까지 흥미로운 상상을 하며 갈 수 있었다.



그 책 속에서 진상 남주와 불편한 건 딱 질색인 여주가 만나 서로의 오해를 푸는 러브 스토리를 떠올렸다. 다행히도 상상 속 이야기는 나에게 재밌는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Lady in a Train Window (1877)_Anna Nordgren (Swedish, 1847 - 1916)



비록 진상은 술에 취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었을지라도, 내 상상력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KTX에서 만난 그 진상은 나에게 불편한 상황을 주었지만 다행히도 내겐 진상을 소재로 창의적인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집중력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이런 순간들이 쌓여 나의 여행이 더욱 다채로운 경험이 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 여행에서는 또 어떤 진상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인생 진상을 기록하는 것도 언젠가 좋은 소재가 될 것이란 걸 알기에 다음 진상은 어떻게 기록할지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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