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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틀려도 사랑받는 글들의 비밀

틀려도 괜찮아, 요즘은 기술이 좋으니까

by 윤채

글을 쓰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초반에 멈추는 이유 중 하나가 맞춤법 때문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맞춤법 때문에 글을 쓰다 멈추는 사람들도 흔하다. 한 글자를 틀리면 글 전체가 무너질 것 같고, 독자가 자신을 무식하게 평가할 것 같아 두려운 것이다.



지인 A도 그랬다. 하루는 "도저히 글이 안 써진다"라고 하소연하길래 이유를 물어보았다. 의외로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맞춤법이랑 사투리가 자꾸 걸려서 글을 쓰다 보면 흐름이 끊겨."



글을 워낙 잘 쓰는 A조차 맞춤법 때문에 멈춘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벽 앞에서 멈추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초고 단계에서 문장을 쓸 때마다 교정 버튼을 눌러보거나 사전을 찾아보느라 흐름이 끊기고 결국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상황에 이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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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본질적으로 살펴보면, 맞춤법은 글의 핵심이나 필수는 아니다. 맞춤법은 독자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 장치일 뿐, 글이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전혀 다른 데에 있다. 사람들이 특정 글에 매료되는 까닭은 철자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글 안에 담긴 메시지와 감정, 그리고 진정성 때문이다.



맞춤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태도는 글쓰기 과정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으며 초고는 미완성이 당연하다. 초고의 목적은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머릿속의 생각을 외부로 끌어내어 가시화하는 데 있다.



이 단계에서 맞춤법까지 완벽하게 지키려는 집착은 오히려 글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고, 감정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결국 독자가 원하는 '살아 있는 글'이 아니라, 표면만 매끈하지만 공허한 문장이 남을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과거와 다른 환경이다. 온라인 맞춤법 검사기, AI 교정 프로그램, 자동 문법 교정 툴 등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보조 장치가 있다. 초고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오류는 이런 도구로 쉽게 수정할 수 있다.



맞춤법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겠다는 말은 쉽게 해결 가능한 문제를 이유로 글쓰기 자체를 미루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본말이 전도된 태도이며, 글을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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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이 있다. 맞춤법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글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순간, 맞춤법 오류는 독자의 집중을 방해하고 글의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점이다.



맞춤법은 최종 교정 단계에서 다듬어야 할 문제이지, 초고 단계에서 발목을 잡아야 할 이유가 아니다. 과정과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면 글은 출발조차 하지 못한다.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글을 읽고 감동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것은 글쓴이가 맞춤법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을 때가 아니라, 그 글이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과 겹쳐질 때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이 다소 어눌한 표현을 쓰더라도 그 안에서 필자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독자는 오히려 더 깊이 공감한다. 서툴기에 더 진솔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문장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감정이 비어 있다면, 독자는 금세 흥미를 잃는다. 결국 글의 가치는 정확성보다는 울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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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맞춤법은 글쓰기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맞춤법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장치이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이 아니다. 초고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맞춤법의 정확성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끝까지 써 내려가는 힘이다.



맞춤법에 집착해 글을 멈추면, 결국 고칠 원고조차 남지 않는다. 반대로 맞춤법을 뒤로 미루고 끝까지 써 내려간다면, 그 글은 설사 30점짜리 초고일지라도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는 '완벽한 글'을 처음부터 쓰려는 집착이 아니다. '불완전한 글'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용기다.



맞춤법은 얼마든지 다듬고 고칠 수 있지만 초고를 쓰지 않으면 다듬을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이 단순한 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맞춤법은 더 이상 글쓰기를 가로막는 두려움이 아니라 후반 작업에서 정리하면 될 사소한 작업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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