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이 되어도 이곳의 아침은 뜨겁다. 그래서 해뜨기 직전에 달리기를 하곤 하는데 주말에는 어쩔 수 없이 게을러진다.
보통 때면 암막커튼을 치고 자더라도 몸이 시간을 기억해서 일어나는 시간에 깨곤 하는데, 맥주 한 잔 하고 잔 다음날이면 보통 때보다 늦게 일어나게 된다.
일부러 늦게까지 잘까 싶다가도 금요일에 날씨가 좋았지만 피곤한 핑계로 내일로 미뤘더니, 금요일 오후부터 태풍처럼 쏟아지던 비가 토요일 아침까지 멎지 않아서 토요일에는 어쩔 수 없이 달릴 수 없던 게 마음에 걸렸다.
흐름이 끊어지면 계속 처음으로 넘어가야 달릴 수 있다 보니, 고민되었다. 빠르게 암막커튼을 걷고 아침 날씨가 어떤지 본다. 유리창을 열어 기온을 체크한다.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니 뜨겁지는 않을 것 같다. 바람이 불어 선선한 공기가 손끝에 닿는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구름은 아직 많이 있는 상태. 구름이 해를 가렸다 보였다 하는 중. 오토바이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가끔은 들리지만 보지 않고 소리만 들었을 때는 시속 100킬로미터의 느낌이었는데, 달리는 광경을 보니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았다.
짐작만으로 주저앉았다면 내일 아침에 또 어제 달릴걸, 후회하겠지.
요즘의 아침은 꽤 쌀쌀했고, 해가 떠서 날벌레와 풀숲 모기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긴 바지를 입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적당히 습하고 적당히 선선했다.
태양은 구름이 살짝 가려줘서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오늘 달리기 프로그램은 3분 걷기, 5분 달리기인데, 4분 40초 동안 보통 달리기 후 20초는 더 빨리 뛰는 프로그램이다. 5분을 달리고 나면 2분은 걷고, 그다음에 다시 5분 달리기를 5번 반복한다.
3분 걷기 할 때는 호텔을 오른쪽에 두고 걷다가 달리기를 시작할 때 방향을 바꿔 달렸다. 숙소를 오른쪽에 두고 걸을 때는 해를 뒤에 두고 걸었기 때문에 눈부심을 몰랐다. 살짝 더운감이 긴 바지를 입고 있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는데, 반대방향으로 돌아 해를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을 때 구름 속에서 해가 솟아났다. 아.. 달리자마자 따가워졌다. 느껴지는 뜨거움, 습함. 30~40분 잠깐이라 생각해서 선크림 같은 걸 바르지도 않았고, 해가 구름에서 빠져나올 걸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외국인이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보다 훨씬 먼 거리를 달려왔을 것이고 톨게이트를 지나 더 멀리 갈 것 같았다. 점점 뜨거워지는 공기, 아스팔트 바닥, 약 올리는 듯 태양은 구름에 걸쳐 숨을 듯 말 듯 반쯤 걸려있었다.
얕은 구름, 시커먼 먹구름이 태양 근처로 오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첫 달리기는 끝났다. 어떻게 어떻게. 매일 열리는 작은 장에 가서 바나나를 사 올 참이었다. 다리를 건너 몇 개의 집을 지나치며 달렸다. 새벽에 달리면 맹렬한 기세로 개가 달려 나오는 집을 지나칠 때 그 개들은 달려 나오지 않았다. 날이 밝아서인지 그저 집 앞에 엎드려서 나를 흘끔 본체만체하고만 있다. 도로에 자동차는 어쩌다 한 대씩 지나가서 안전했고, 단 하나, 나만 계속 달릴 수 있으면 괜찮았다. 어쨌든 두 번째 목표는 장에 가서 바나나를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는 그냥 걷기.
한국에서 파는 일반적인 큰 바나나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바나나가 있는데, 작은 바나나는 쫄깃쫄깃한 식감이 있다. 간식으로 먹을 생각으로 작은 바나나를 구하러 간 매대에는 큰 바나나의 엄청 큰 송이만 팔고 있었다. 도저히 들고 올 자신도 없고 해서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서서 달렸다. 대충 달리는 구간은 두 번인가 남았던 것 같았다. 그냥 걸을까 고민했던 구간, 뜨거웠고, 열이 올라왔고, 괜한 걱정이지만 열사병에 걸리면 내일 일도 못하고, 오는 길에 또 로드킬 당해 납작해진 뱀이었던 것도 봤고 해서 계속 달릴지에 대한 고민을 걷는 구간에서 여러 번 했다. 그러다 아까 헬맷을 쓰고 시뻘건 얼굴로 라이딩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도로를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던 우리. 그는 이미 한참 멀리 갔을 것이고, 더 달리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위로 비슷한 게 되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도 빨아들이고 즐기고 있을 모습.
뛸지 말지 고민이 멈추지 않을 때 때마침 구름이 뜨거움을 가려주었고, 태양을 향해 달리는 나에게 여유를 주었다.
마지막 달리기, 그냥 늘 너무 힘들지만 아무 생각 없이 뛰다 보니 뛰어졌다. 어떻게 저떻게.
정신없이 마무리 걷기에서 숙소까지 걸어 들어왔고, 마침내 오늘도 얼렁뚱땅 달리기 한 번을 완료했다. 달리러 나가기 전에는 늘 꼭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한번 달려본 후에 알게 된 도로 사정, 풀 숲에 사는 미지의 동물들, 새벽녘 집을 지키는 충견들, 갑자기 나타나는 어떤 것이었던 동물의 흔적 등등. 나갈 채비가 끝나면 도로 주변의 변수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로 마무리하면서 방으로 무사히 돌아오긴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아는 구간이지만 무엇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알 수 없으니, 이제는 더 긴 시간, 더 먼 구간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다음 프로그램으로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지 두려움과 걱정을 뛰어넘고 어떻게 6개의 장거리 프로그램을 여기에서 다 끝내고 갈 수 있을지, 그리고 12월이 되면, 여섯 개 모두 완료했다는 흔적을 찍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