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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애희 Sep 10. 2024

목욕탕의 추억

오딜롱 르동_눈을 감은 여인2, 1890

오딜롱 드롱_ 눈을 감은 여인 2, 1890


반신욕을 부르는 그림

오딜롱 드롱의 <눈을 감은 여인> 작품을 보자, 나도 모르게 반신욕이 하고 싶어졌다. 미지근한 물을 시작으로 점점 따뜻한 물이 욕조 안에 차올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노란 오리를 물 위에 띄웠다. 오리 한 마리로 욕조 안은 한가로운 호수가 되었다. '입욕제가 있었지!' 문득 2023년이 끝날 무렵, 김상래 작가로부터 받은 연하장과 입욕제가 떠올랐다. 입욕제 한 봉지를 욕조 안에 넣었다. 은은한 향과 함께 욕조 물이 연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갔다. 책을 한 권 들고 반신욕을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과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밤에 선사된 선물 같았다. 오랜만에 몸과 마음은 휴식을, 머리엔 지혜를 담았다. '이 정도면 충분해!' 미소를 지으며, 손에서 책을 놓았다. 그림 속 여인처럼 나도 눈을 감고 어깨가 잠길 정도로 물속에 몸을 푹 담갔다. '아! 이 편안함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발가락과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보았다. 손바닥으로 물결을 만들어보았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나도 모르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 움직임이 만들어 낸 작은 파동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간지럽혔다.



아이의 성장

욕조 안에서 딸아이와 부비부비 했던 시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끼리 물놀이이나 목욕놀이를 시켜 두고 난 집안일에 바빴다. 그렇기에 함께 살 비비며 목욕했던 시간이 더 특별했다. 아이가 자라는 게 신기했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만큼이나 아이는 몸도 마음도 자라고 있었다. 첫째 아이는 태어나서 100일 동안 내가 씻겨본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친정엄마와 남편이 아이 목욕을 맡아서 해주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태어 낳을 때는 남편이 제일 바빴던 때였다. 한 달 동안 친정엄마의 산후조리를 받은 나는 엄마가 떠난 빈자리를 혼자 도맡아서 육아와 살림을 했다. 몸은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먹이고, 씻긴 후 양팔에 눕혀 재우고 나서야 내 일을 다 한 것 마냥 뿌듯했다. 아이들이 아빠와 만나는 시간은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점심 이후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딸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엄마 껌딱지’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그 작고 작았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살 비비며 목욕하는 시간을 우리만을 위한 콘서트 현장으로 변신시켜 줬다. 아이유 노래를 몇 년간 줄기차게 불렀다. 어느새 반주만 나와도 ‘아이유’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작년부터 ‘아이브’, ‘뉴진스’를 시작으로 ‘투바투(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아이돌 가수 노래로 욕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 덕분에 최신 인기가요를 알게 되는 특별한 경험은 나의 음악의 폭을 넓혀주었다.



어릴 적 나

아이가 자라면서 내 기억에 존재하는 어릴 적 내가 자주 찾아온다. 잠들기 전 내 손을 만지는 버릇은 생후 6개월 무렵부터 생긴 것이다. 손을 만지작거리며 “엄마, 내 어릴 때 이야기 해줘.”한다. 아이 어릴 때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어릴 적 내 얘기를 해주게 된다. “엄마 어렸을 때에는 매일 샤워를 못했어.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목욕탕에 갔어. 그때 외할머니가 엄마, 이모, 외삼촌 세 명 데리고 가서 모두 씻겨주었어.”이야기한다. “나도 목욕탕 가고 싶다.”, “그래 다음에 같이 가보자.” 이야기 나누는 사이 ‘잠자리 인사’ 의식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볼 뽀뽀 주고받기 2회, 꼭 안아주기, “사랑해! 잘 자! 굿나잇!” 외치면 “받고, 반사!”로 마무리된다. 아이와 한 번 더 뽀뽀를 날려주고 방을 나와 어릴 적 목욕탕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일요일이면 목욕탕은 붐비는 장소였다. 이른 아침은 아니고, 그렇다고 늦은 오후도 아닐 때 목욕탕에 갔다. 습한 목욕탕 안에는 일주일간 묵은 때를 씻어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탕 안에서 놀다 보면 엄마가 불렀다. 때를 밀고 또 놀았다. 작은 바가지와 마루인형만 있으면 몇 시간도 신나게 놀 수 있었다. 시끄러웠던 공간 속에서 나만의 공간이 생긴 듯이 놀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만의 욕실 안에서 반신욕을 즐긴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의식을 물속에 가라앉힐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대중목욕탕 추억을 떠올리며 노란 오리를 움직여본다. 어린 시절 나를 꺼내본다.



오딜롱 르동에 대해 더 알아가기


'눈을 감은 여인 2'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생겼다.

'눈을 감은 여인 1은 어떤 작품일까?'

<눈을 감은 여인 1>은 후광이 비치는 여인이 반신욕을 하고 있다.

보자마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 뒤에는 이런 후광이 비치기 마련이니......

오딜롱 르동_ 눈을 감은 여인 1, 1889


나는 가장 깊은  행복은 반드시 가장 깊은 화합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오딜롱 드롱

오딜롱 드롱은 (1840-1916)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다.
태어나자마자 외삼촌 집에 보내졌다가 열한 살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병약하고 늘 외로웠던 그는 고독하게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딜롱 르동_ The Smiling Spider, 1881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 난 이후 그의 그림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마법이 펼쳐지나 보다.
오딜롱 르동_Grand Bouquet,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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