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기자 이야기
영웅이 있다면 악당이 있겠죠?
다들 아시겠지만,
영웅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주 못돼먹은 악당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팽목항에는 악당이 많아도 너~~무~~많았습니다.
그 많은 악당 중에서 이번에는 악당 기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별명 중 하나는 '팽목항 보안관'이었습니다.
진도 체육관에 계셨던 가족들이 붙여주신 별명이었죠.
아마도 팽목항에서 수상한 이들의 접근을 막았던 덕분에 생긴 별명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팽목항에서 추방한 첫 번째 악당 이자 기자 이야기입니다.
팽목항에는 '검안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세월호가 있는 맹골수도에서 모셔 온 이들과 그 가족이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검안소는 두 구역으로 나뉘어, 팽목마을을 바라보는 오른쪽에는 여자 검안소, 왼쪽에는 남자 검안소가 자리 잡고 있었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여러 번 그곳에서 브리핑이 이루어졌으며,
끊임없이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지도 못한 채 검안소로 향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가족이 아닌 듯한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가족들은 남자 가족을 찾으러 남자 검안소로, 여자 가족을 찾으러 여자 검안소로 향했지만, 어떤 이들은 남자 검안소와 여자 검안소를 번갈아 들락거리더군요.
'뭐지? 누구지? 가족인가? 아닌가?'
그때부터 저는 브리핑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절대 가족일 리 없어. 그럼, 누굴까?
몇몇은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 담요 안쪽에는 아마도 카메라나 녹음기 같은 장비가 숨겨져 있는 듯 보였습니다.
우선 검안소로 들어가지 않는 이들은 제쳐두고, 검안소를 들락거리는 한 명을 특정해 미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대부분이 여자였는데, 아마도 의심을 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어김없이 그녀는 검안소를 들어갔다 나오더군요.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섞여 행정구역을 벗어나고 있었고, 저는 먼발치에서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그녀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여자 화장실이었습니다.
저는 밖에서 화장실 입구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혹시 놓치진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곧 그녀로 보이는 이가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두르고 있던 모포는 보이지 않았고, 헤어스타일도 들어가기 전과 달랐으며, 손에는 들어갈 때 볼 수 없었던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닌가?'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유심히 관찰했던 얼굴, 바지, 신발 등이 일치했기에 저는 확신을 갖고 그녀의 뒤를 쫓았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는 가족구역 쪽으로 향했습니다.
검안소가 있는 행정구역과 가족구역 사이의 거리는 약 300미터였습니다.
가족구역 맨 끝에는 가족 텐트가 자리 잡고 있었고, 행정구역과 가족구역 사이에는 각종 단체에서 운영하는 텐트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가족인가?'
잠시 멈칫하던 순간, 그녀가 한 텐트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기자들이 대기하며 기사를 작성하는 텐트였습니다.
설마 기자!
저는 확실하게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 텐트를 천천히 지나치며 주시했습니다.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 분주하게 작성하던 그녀.
옆에 앉은 남자와 장난치며 웃고 있는 모습에 제 심장은 마치 터질 듯 뛰었습니다.
이대로 그녀에게 달려들면 큰 사고를 칠 것 같았습니다.
잠시 제 멋대로 날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팽목등대를 바라보며 몇 분간 숨을 골랐습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자 심장 박동은 점차 잦아들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 기자지?"
수다를 떨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깜짝 놀라더군요.
제가 누군지 알아보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너 기자지?"
시선을 피하며 머뭇거리던 그녀가 던진 첫 마디는
"저 미행하셨어요?"
겨우 누르고 있던 분노 게이지가 끝까지 치솟음을 직감한 저는,
다시 한번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확실히 대답해. 너 기자지?"
제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그녀는 횡설수설 엉뚱한 말만 내뱉었습니다.
흥분한 저는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폭발 직전의 이성을 겨우 붙잡고 목청이 찢어질 듯이 소리쳤습니다.
"너!!! 기자야!!! 아니야!!!"
시끄럽던 텐트 거리는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습니다.
"네..그런데..어쩌구 저쩌구"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대답을 하더군요.
저는 그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를 했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팽목항에서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까 조용히 사라져라."
제 눈을 피한 그녀는 대답 대신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았고,
더 이상 이야기하면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을 놓칠 것 같아 저는 그냥 뒤돌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떠나려는 순간, 제 주변에는 사복경찰 몇 명이 모여 있었고,
그녀와 장난치며 즐겁게 수다 떨던 옆자리 남자는 노트북을 접어 들고 조용히 사라지더군요.
(흠..비겁한 놈)
그날 이후 브리핑장에서는 더 이상 수상한 사람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우연히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팽목항이 아니라 뉴스에서..
승진을 한건지 뉴스앵커로 활동하고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참 '강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단원고 여학생 대부분을 직접 확인해야 했습니다.
검안실을 들어갈 때마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그곳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아이들과 마주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죠.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매일 술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제 뇌리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데스크의 강요?'
'특종 때문에?'
아니면, 흔히 말하는 '국민의 알권리?'
그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을까요?
그녀에게 묻고 싶네요.
왜 그랬는지.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제 멘털이 너무 약한 걸까요?
아직도 '악당'인 줄 모르는 기자님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기자가 되기 전 '정의로운 기자'가 되는 것이 '꿈' 아니었나요?
지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누군가의 '영웅 기자'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글을 쓰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하네요. 멘털이 약한 거야 멘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