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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누군가는 지켜야 되지 않을까?

by 팽목삼촌 Mar 17. 2025

누군가 제게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말해봐”

라고 물었을 때, 저는 고민1도 없이 “군대 생활”이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전까진 말이죠.


26개월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선임들의 '구타'와 '얼차려'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지냈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동기와 후임들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탈영병도 많았고, 부대 해체까지 논의되었으니 말 다 했죠. 

여하튼 저는 건강(?)하게 만기 제대를 했고, 힘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군대 있을 때보다 더 힘든 건 아니잖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시련이 덮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팽목항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 상태였습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시간이었죠.

가족들은 그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한 가족, 두 가족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안면이 있는 가족들이 그룹을 이루었고, 제가 머물던 텐트는 그 모임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텐트에 모인 가족들은 향후 대책을 논의하며, 궁금한 점이나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텐트의 한쪽 면에 적어 가며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결국 텐트의 한쪽 면은 모인 가족들의 아이 이름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OO 아버님이 제안하시더군요. 


“이 아이들을 다 찾을 때까지 팽목항을 떠나지 맙시다.” 


다른 가족들도 "그렇게 합시다." 약속하시더군요.

하지만, 아이를 찾은 가족들은 약속을 뒤로한 채 팽목항을 떠났습니다.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나온 아이를 기약도 없이 다시 냉동 컨테이너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죠.


저에게도 그날이 오게 되었습니다. 


6일째 되던 날, 친척 동생은 가족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먼저 떠난 다른 가족들처럼 서둘러 그 아이를 데리고 안산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다른 가족들과는 간단한 인사만 남긴 채 부랴부랴 구급차에 올랐죠. 


목포병원을 향하던 구급차 안에서 저는 제 마음에 물어보았습니다. 

'텐트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이름들이 있는데, 이대로 떠나도 될까? 평생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 묻고 또 물었습니다. 

옆에서 저를 지켜보시던 삼촌이 제 마음을 알고 계시는 듯 말씀하시더군요. 

“성훈아 내 딸은 우리가 잘 보내줄 테니, 너는 다시 텐트로 돌아가서 남아 있는 가족을 돕는 게 어떻겠냐?” 

그 말을 들은 저는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네, 이대로 떠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습니다." 

구급차에서 내린 저는 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발길을 팽목항으로 돌렸습니다.


택시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팽목항. 

새벽 시간이었는데, OO어머니가 모포를 어깨에 두르고 텐트 앞을 서성이고 계시더군요.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머님, 이 늦은 시간에 뭐 하고 계십니까?”

“어! 삼촌! 안산 안 갔어? 왜 돌아왔어?”

“차마 못 가겠더라고요.”

“사실 삼촌이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아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띠고 계셨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이렇듯 팽목항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남겨진 이들의 항구'

한 가족이 떠날 때마다 

'내가 마지막이면 어쩌지?'

'영영 못 찾는다면...' 이라는 생각에 매일 밤 '불안'과 '공포'로 잠 못 드는 곳이었죠.

저는 그런 팽목항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물론 약속을 지키는데, 3년이란 시간이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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