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공간의 비움은 무한한 마음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삶을 방관하는 것이 아닌 삶을 믿고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판단 없이 수용하고 거기에 대한 반응을 무의식적으로가 아닌 깨어난 의식으로 초연하게 자비롭게 하는 것이다. 반사적인 에고의 반응이 아닌 깨어있는 영혼으로 선택적인 반응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선택은 물론 사랑을 바탕에 둔 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근원은 사랑이며 사랑으로 사랑을 표현하러 이곳에 왔기에.
사랑은 작아질 수도 작아진 적도, 없어질 수도 없어진 적도 없다. 물질 중심적인 편견과 속세의 낡은 개념들로 진실을 앞에 두고도 겹겹이 쌓인 오염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눈이 흐릿해지고 보이지 않아 볼 수 없어졌을 뿐이다. 이러한 더러워진 창들을 하나씩 닦아가며 진실한 사랑을 마주할 때 작은 마음은 가라앉고(사랑에 흡수되고) 영혼은 떠올라 이 세상에 하려던 타고난 영혼의 결의 운명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운명들은 완벽하지만 지금 그대의 이 운명은 단연 그중에서도 최고라 말할 수 있겠다
|생각과 감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불합리한 개념들과 오래된 제한된 관습들이 내 마음속에 믿음체계로 잡혀 있기에 이 믿음들의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며 마음이 지어내는 부정적인 생각들에 의해 하루에 수도 없이 지옥과 극락을 오고 가며 지금에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자신이 무한한 마음인 줄 모르고 몸을 가진 현실 속 인물이라고 믿기에 따른 것이다. 현실세계를 전부라 믿는 몸을 자신으로 한정 짓는 나라는 인물(몸을 나라 믿는 자아), 그리고 우주를 품고 있는 무한한 공간인 원래의 진짜 나,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나(몸을 빌려 인생체험을 하는 신), 삶을 바라보며 여기에 있는 나는 바로 무한한 마음에서 새롭게 확장된 나이다. 이로 새로운 시각의 지각을 가져야 한다.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나와 분리해서 지켜보는 자로써 더 멀리 더 높이 생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생각과 감정들은 에너지이다. 모든 에너지는 흘러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 이 에너지들도 고이게 되면 썩게 마련이다. 고로 이를 흘러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담고 있는 내 마음 상태를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고인 에너지체들은 조금씩 곪게 되고 이가 퍼져 점점 나를 점령한다. 내가 그 생각들과 감정들을 외면할수록 억누를수록 그 힘은 거대해지기에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에너지체들이 나인 척 삶에 반응한다. 이들은 또한 거부할수록 강한 저항력을 보이는 데 이는 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반복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내 삶에 나타난다면 이는 내 안에 갇힌 에너지체가 풀려나기 위해 그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며 내가 그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인정하고 충분히 느껴줬을 때 비로소 모두가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에너지체들은 생명체와도 같아서 오래 갇혀있을수록 더욱 거대해진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붙잡고 있으니 텅 빈 마음의 자연스러운 에너지 흐름은 막힐 수밖에 없다. 그로 속이 시끄럽고 가슴이 답답하다. 우주와의 연결도 막혀 버린다. 곧 나의 영혼은 하늘을 볼 수 없으니 빛을 잃고 비와 바람을 맞을 수 없으니 시들어 병든 꽃처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병을 얻게 된다. 이 세상에서의 대부분의 질병은 영혼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 즉 나를 잃고 나로 살아가지 못함에 얻게 되는 것이다.
|생각과 감정을 나와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하기에 참나로 머물기 위해서는 생각과 감정을 나와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보통 내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과 감정들을 나와 동일시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이니 당연히 내가 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를 진짜라 여겨 올라오는 감정들 또한 온몸을 요동치게 하니 내가 하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와 무관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그저 육체를 자신이라 여기는 에고라는 자아가 신과의 거짓된 분리를 나에게 믿게끔 하기 위해 개성적인 육체가 나라는 망상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자동프로그램의 작동일 뿐이었다. 의식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진정 내가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들을 믿음으로써 올라오는 감정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여기에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증상이 에고의 자동화된 마음프로그램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생각의 바탕엔 무조건적인 분별이 있으며 비교, 평가하여 분리 짓는 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이야기를 지어내 부풀리거나 비난한다. 이는 우리를 현실이라는 드라마 속에 푹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수이기도 하다.
진짜 나는 모든 걸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분별하지도 분리 짓지도 않는 다. 그 누구도 바꾸려들지 않고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는 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체의 하나이며 이 세상은 그저 내 마음을 비추는 환상의 홀로그램임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 적도 없기에 과거나 미래도 없으며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영원만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그저 여유 있게 자비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가 나이며 나의 진정한 상태는 오직 사랑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엇으로도 흔들리지도 빼앗을 수도 채울 수도 없는 본연의 나의 원상태이다. 이를 제외한 생각들과 감정들은 모두 몸을 나라 여기는 개성적인 자아(에고)가 이 환상을 진짜로 믿게끔 만들기 위해 무한한 마음인 나를 육체로 한정 지으며 나약한 존재로 인식되기를 원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생각과 감정은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눈을 뜨기 전 '귀찮다'라는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한번 나를 배신했던 사람에 대해선 의심이라는 얼굴이 자꾸 들이댔다. 하지만 이를 분리해서 보자마자 '귀찮다'라는 생각을 그저 흘려보내며 믿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신 활기찬 아침에 감사함을 선택하며 미소 지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의심이라는 얼굴이 마음이 떠드는 거짓의 이야기라는 걸 알자 더 이상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이 현실에 나타난 모든 이들은 나를 위해 나의 마음의 투사를 연기하며 이를 통해 배움과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이기에 그들에 대해 감사함을 가질 수 있었다.
키우는 반려견이 소변실수를 했다. 에고는 그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떠올려 보냈다. 동시에 습관적인 화도 느껴졌다.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날 이유가 없다는 걸 바로 알았다. 에고가 지어내는 생각을 덧붙이지 말고 그냥 치우면 그뿐이었다.
생각과 감정은 이렇게 선택될 수 있다. 그저 에너지체들이 일어남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그 생각과 감정은 억눌리지 않고 흘러지나간다. 사랑의 존재상태 이외에는 내가 아니기에 언제든 이를 알아차리고 나로 존재하기를 선택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부하거나 외면하거나 억누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싫은 감정이라도 이를 싫어하는 마음마저도 바라보고 인정해 주면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단단한 벽도 허용과 수용 앞에선 힘없이 무너진 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의 생각을 돌아보라는 메시지이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불안과 고통을 일으키는 감정들을 우리가 당연하게 거부하며 원하지 않는 이유는 이가 근원의 나와는 반대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들을 내가 그릇된 생각을 믿고 있음을 알려주는 고마운 알림이다. 그러니 그저 감정의 존재상태를 인정하고 수용하라. 그러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믿음체계 혹은 생각의 바탕을 살펴보라. 그 근원이 분리와 결핍에서 왔는지 사랑에서 왔는지 말이다. 이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며 나만이 존재한다. 이 삶은 사랑의 반대 것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사랑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무서울 것은 없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서 창조되었으니. 두려움을 두려워말라. 당당하게 마주할 때 그저 힘없이 사라질 것이며 사랑으로 수용할 때 사랑의 빛으로 흡수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생각들과 감정들을 자비롭게 바라보라.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모래 위에 철썩이는 파도처럼 왔다 가는 자연의 순리로 그저 바라보라.
|깨어난 의식으로 언제나 밖이 아닌(세상이 아닌) 내 마음을 살펴야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자고 일어나면 잊히는 꿈이 삶이라는 것을 아는 자로써 깨어나라. 이 깨어난 의식으로 삶을 바라보라. 에고를 알아차리고 본질(순수한 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슴이 말하는 설렘으로 향하는 우주적 진리의 공식을 따르라. 모든 고통은 형상세계의 과대평가와 내적공간의 차원을 알아차리지 못하기에 온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끼는 고통 또한 바라보면 사라지는 허상임을 자각하라.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증거이다. 인생은 내 마음을 여행하는 한낮의 꿈이며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무상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선사한다.
그 무엇을 판단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저항하지 않으며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