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삶에 대해 묻는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결국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삶을 왜 살아야 하는가.
환상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무게는 때로 우리를 깊은 허무로 빠뜨린다.
모든 것이 허상이라면, 내가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했던 기억은, 흐느끼며 흘린 눈물은, 꿈꾸며 바라본 내일은...
모두 한순간 스쳐가는 덧없는 장면일 뿐인가.
그러나 그것은 진실의 반쪽만 본 것이다.
이 세상이 환상이라는 깨달음은, 세상을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환상 속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감정과 경험은, 우리 ‘존재’가 얼마나 생생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환상 속에서도 웃고, 울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우리는, 결코 허무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는 모든 환상을 통과해 진짜 자신에게 도달하려는 여정 속에 있는 것이다.
삶이 환상이라는 진실은,
우리의 존재가 ‘현실 그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는 뜻이다. 내가 보는 풍경, 듣는 소리, 감정의 물결은 모두 하나의 장치이며 무대이다.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나가는 중이다.
환상은 결코 삶의 부정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기 위한 도구이다.
삶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모든 것이 흘러가고, 쥐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붙잡을 수 있는 진실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그 허무의 이면에 숨겨져 있다. 환상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이 있다.
사랑하고 싶고, 알고 싶고, 연결되고 싶다는 그 충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그것이 영혼의 반응이며, 우리가 결코 가짜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우리는 살아 있다.
꿈속이라 해도 그 꿈 안에서 울고 웃는 감정은 진짜이다.
삶이 환상이라면, 오히려 그 안에서 더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짧은 여행이라면 더 소중히 바라보고, 잠깐의 계절이라면 더 깊이 느껴야 하지 않을까.
유한하기에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허상이기에 우리는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환상 속에서의 한 순간이, 영혼에는 영원의 각인으로 남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해 이 세상이 환상이라 믿고 싶어 하지만,
진짜 깨달음은 그 환상 안에서도 진심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있다.
모든 것이 가짜라고 외면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허무일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환상일지라도 그 안의 감정과 배움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환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삶은 허무하지 않다.
삶은 깊다.
그리고 삶은 충분하다.
세상이 환상이라면,
그 환상 속에서 사랑하는 일, 배워가는 일, 진짜 나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길은 더없이 빛난다.
영혼은 이 모든 여정을 선택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 보고 듣고 만지는 경험들, 관계 안에서의 마찰과 교감은 모두 나를 기억해 내기 위한 장치이다.
삶이 환상이라면, 오히려 우리는 더 조심히 살아야 한다. 더 다정히 대해야 한다. 더 진심으로 바라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닌 만큼, 그것을 실제로 바꾸는 것은 나의 태도와 마음의 깊이이기 때문이다.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새로운 각성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 문을 지나면 안다.
삶은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라질 수 없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세상이 환상이라는 말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꿈속에서, 네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선택하라. 그리고 그 선택이 바로 너의 진짜가 된다.”
그러므로 삶이 환상이라면, 우리는 허무가 아닌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진짜든 아니든, 내가 사랑했다면 그것은 진짜이다.
그 기억은 영혼의 서사로 남아, 다시 태어날 또 다른 현실에서도 빛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삶이 환상이라면,
나는 그 환상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