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함께 있을 때 자란다고. 상처는 나누면 아물 수 있다고. 연결이 치유라고.
하지만 어떤 순간엔, 연결조차 숨을 막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설명’과 ‘반응’이라는 이름의 가벼운 폭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지금의 나는 너무 오래 모든 것에 반응하고, 설명하고, 맞춰오느라 지쳐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누구에게도 감정을 해명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느끼는 피로와 무기력을 말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감정이 ‘이해받기 위한 설명’이 아닌, 그저 존재해도 괜찮은 감정이라는 걸 배운다.
아무런 반응도 요구받지 않는 고요.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든, 아무도 묻지 않는 침묵을 배운다. “왜 그래?”라는 말조차 한 조각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직 나만의 공간 안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공간은 겉으론 아무도 없지만, 실은 내 안에 나를 처음으로 깊이 바라보는 ‘목격자’가 탄생하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누구의 감정도 떠안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원한다.
사람과의 관계는 늘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밀고 들어온다. 그게 사랑이고 따뜻함이라 말하지만, 어떤 날은 그게 칼날처럼 나를 깎아낸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의 아픔도, 기대도, 짜증도, 미묘한 눈빛 하나조차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오직 나를 위한 온전한 여백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단지 조용한 방 한 칸일 수도 있고, 전화를 끄고 하루를 보내는 일상일 수도 있다. 혹은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은 주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형식이든, 그 공간은 내 영혼이 회복되기 위해 꼭 필요한 요람이다.
그곳에서 나는 숨을 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고,
내가 얼마나 오래 나를 방치해 왔는지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고요 끝에서,
나는 다시 누군가를 향해
부드럽게 마음을 여는 존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나만의 공간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회복을 위한 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