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하지 못했고, 울지 못했고, 살아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았다.
우리는 그 용기를 잃어버렸다. 아니 그것이 용기였는지 도 잊었다. 마치 오래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의 빛처럼, 희미하고 깨질 듯 위태로운 채로... 용기는 우리 곁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용기를 대단한 말로만 배웠고, 책의 문장 속에만 세워두었다. 마음의 창고, 한 구석에 박제된 나비처럼 꽁꽁 얼려두었다. 용기는 뛰어오르는 심장이었고, 떨리는 손끝이었고, 울음을 삼키며 건넨 작은 한 마디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거대한 승리의 훈장으로만 오해했다. 그래서 주머니 속 작은 떨림, 낡은 신발 끈을 다시 묶고 밖으로 나서는 발끝의 망설임, 한밤중 창가에서 자기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는 순간의 결심 같은 것들을 감히 용기라 부르지 못했다. 우리는 그 떨림을 '작은 일'이라 부르며 지나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모든 처음은, 내가 가장 용감했을 때였다.
어릴 적 나는 나무에 올라가는 게 두려웠다. 팔을 올리면 가지가 휘어질까 봐, 발을 얹으면 껍질이 벗겨질까 봐, 나뭇잎이 내 무게에 떨릴까 봐, 나는 한참을 아래에서만 서성였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발끝을 가지 위에 올렸다. 발목에서부터 전해오던 떨림은 내 온몸을 흔들었지만, 나는 그 떨림으로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 떨림을, 가장 깊은 곳에 고이 묻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 떨림이 첫 용기였음을, 우리는 어느새 잊고 말았다. 그 작은 결심이 얼마나 큰 모험이었는지, 그 한 번의 시도가 얼마나 많은 문을 열었는지를. 어른이 된 우리는, 용기는 거창해야 하고, 완벽해야 하며, 반드시 승리를 담보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떨림을 다시는 꺼내지 못했다. 아니, 그것이 용기였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갔다.
내 안에는 아직 말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미안해’, ‘사랑해’, ‘그때 네가 필요했어’ 같은, 숨이 막히는 말들. 목울대까지 차올랐다가 혀끝에서 돌아서고, 가슴팍을 긁으며 내려앉는 말들. 그 말들을 내보내는 일이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용기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안다. 하지만 그 용기를 주저하다가, 주머니 속 동전처럼 자꾸만 만지작만 거리다가, 결국에는 주머니 채로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용기를 놓쳐왔다. 때로는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눈물 한 방울을 참지 않고 흘리는 것이, 혼자만의 밤에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큰 용기였는 데. 우리는 ‘괜찮아’라는 말에만 길들여져, ‘안 괜찮아’라고 말하는 순간을 용기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 밤에, 내 안의 작은 생명을 본다. 그것은 찬바람이 스며드는 창문 틈새에 떨고 있는 작은 촛불 같아서, 누군가 숨을 헐떡이듯 내뱉기만 해도 꺼질 것만 같다. 그 촛불을 안아주는 것, 내 안의 떨리는 나를 품어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의 가장 본질적인 용기일지 모른다.
우리는 강해야 한다는 말에만 붙잡히고, 울면 안 된다는 말에 마음이 묶이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스스로를 소모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기진맥진한 나였다.
그제야, 나는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저 여기 있어.
넘어져 있어도 괜찮고,
주저앉아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용감했어.'
우리는 잃어버렸다. 처음 사랑하던 그 마음을, 처음 세상을 설레며 맞이하던 아침을, 처음 실패하며 떨던 저녁을. 우리는 생의 가장 빛나는 장면들을 흘려보냈다. 그것이 흔하고 하찮아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잠옷 차림으로 베란다로 나가 찬 공기를 마셨다. 그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며 내 마음속 얼룩까지 씻어내는 것 같았다. 한 번의 숨이, 한 번의 숨결이, 얼마나 귀한지를, 얼마나 용기인지를 깨닫는 데 나는 몇십 년이 걸렸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용기임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하루는 그렇게 숨으로 시작되고, 속삭임으로 마무리된다. 그 사이를 우리는 견디고 살아낸다.
저녁이 오면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아 혼잣말을 한다. “괜찮아, 넌 잘했어.” 그 목소리는 작고 떨리지만, 세상의 모든 함성보다 크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망가졌다가 다시 수선하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내며. 그것이 반복될수록 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지도 모른다. 바람에 흩날리며 맨 몸으로 겨울을 버텨낸 나뭇가지처럼, 비에 젖어 무너졌다가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는 그렇게 다시, 다시, 다시 살아간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는 언젠가 읽은 시 속 한 구절을 떠올린다. 우리는 그것을 이제야 이해한다. 약함을 인정하는 것,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 아픔을 꺼내는 것, 그 모든 것이 용기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강해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흔들리며 살아가기로 한다. 울고, 떨고, 흔들리고, 넘어지는 나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용기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아니, 그것이 용기라는 것조차 잊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 잃어버린 조각들을 주워 모으기로 한다. 한 조각, 또 한 조각, 잃어버린 웃음과 눈물, 사랑과 슬픔, 두려움과 기대를 하나하나 다시 주워 가슴에 담기로 한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손잡이가 약간 삐뚤어진 머그잔 같고, 가장자리가 해진 담요 같고, 한쪽 뒤축만 닳아버린 신발 같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용기를 찾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방식이고, 우리네 생의 길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불완전한 나를 껴안는 일에서, 다른 이들의 조용한 용기를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의 흔들림, 누군가의 멈춤, 누군가의 고요한 눈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 모든 결핍과 균열 속에, 나와 닮은 숨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어둠은 깊어가고, 나는 불을 끈 방 안에서 창밖을 본다. 창밖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들이 있다. 누군가는 퇴근길에, 누군가는 편의점 앞에서, 누군가는 창가에서 불빛을 켜두었다. 그 불빛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용기다. 살아가는 용기, 견뎌내는 용기, 오늘을 지나가는 용기. 나는 그 불빛들에 마음을 건넨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잊지 마. 네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용감하다는 것을.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빛난다는 것을.
그러니 울어도 좋아. 넘어져도 좋아.
무너져도 좋아.
그 모든 것 위에서
너는 여전히 용감했어.'
용기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 하지만 용기가 늘 내 안에 있었다. 다만 내가 너무 멀리만 보느라, 너무 커다란 것만 바라보느라, 너무 눈부신 것들에만 마음이 빼앗기느라, 가까이에 있던 용기의 숨결을 놓치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가슴이 뛰고,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고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오늘, 잃어버린 나를 찾아 걸어간다.
겨울의 끝에서, 봄의 문턱에서, 나는 다시 처음처럼,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리고 속삭인다.
'괜찮아. 이제 우리는 조금씩,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나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