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몸이 고장 나야만 몸을 바라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속이 타들어가거나, 더 이상 일상적인 움직임이 어려워졌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곳을 '느끼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고, 영혼 없이 움직이는 껍데기처럼 대해왔던 나의 몸이, 병이 들고 나서야 마치 처음 만나는 존재처럼 낯설고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몸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미 수없이 많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조용한 두통, 가벼운 속 쓰림,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 자주 굳어가는 근육들, 가슴이 조이는 듯한 답답함. 우리는 이 신호들을 무시하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거나, 약 한 알로 눌러놓으며 지나쳐 왔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순간,
'질병'이라는 형태로 폭발하듯 나타나면
우리는 외부를 탓한다. 스트레스, 환경, 식습관, 유전, 운명...
물론 외부 요인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몸이 아플 때,
그 모든 것을 탓하기 전에 한 번쯤은 질문해 보아야 한다고.
"이 몸의 메시지가 전하려는 내면의 진실은 무엇일까?"
몸은 기억을 잊은 영혼이 자신이라 착각하는 집이다.
그러나 그 집은 단지 껍질이 아니다. 그 집 안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들, 오래된 기억, 허용되지 못한 진심들이 스며 있다. 우리는 말하지 못한 것들을 몸으로 말하고, 울지 못한 눈물을 장기에 저장하고, 밀쳐낸 감정을 근육에 응고시킨다. 그렇게 쌓이고, 굳고, 막히고, 멈춘 감정들이 몸의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폐암으로 떠나보냈다.
오랜 시간 담배를 피워온 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는 분이 아니었고,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감정을 꾹 눌러두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술이 취하면 달라졌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 채 평소엔 꺼내지 않던 분노의 말들이 튀어나왔고,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건 아마, 끝내 품어주지 못한 마음의 가장 어두운 틈을 통해 새어 나온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평소엔 말하지 않던 사람이라서,
그렇게라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감정들.
늘 후회하면서도,
어쩌면 그것이 그가 감정을 살아낸 유일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해소될 수 없었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깊은 침묵들을. 그 조용함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눈물과 말들이 눌려 있었는지를. 아버지의 폐는, 그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한 채 평생을 숨만 쉬며 살아온 장기였다. 한숨과 억눌린 말들이 엉켜 깊숙이 눌려 있던 그곳.
아버지의 폐암은, 몸이 마지막으로 전한 편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많이 슬펐어. 너무 오래 눌러놓았어. 이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끝내 품어주지 못한 감정들, 말하지 못한 진심, 꺼내지 못한 슬픔이, 몸이라는 집 안에 오랫동안 눌려 쌓인 결과였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더 깊은 차원에서 그것은 영혼이 스스로 선택한 통과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잊은 채 살아온 삶, 눌러온 감정의 무게 속에서,
그는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암은 그렇게, 죽음이 아니라 깨어남을 위한 마지막 초대장이었을지도.
몸은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지키고자 하다가 무너진다.
고장이 아니라, 최후의 사랑처럼. 그 진실을 마주하고 나면, 질병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멈추라고, 돌아보라고, 다시 나를 보라고 말해준 귀중한 신호였다는 것을. 특히 '암'이라는 질병은, 단순한 육체의 문제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감정과 기억의 덩어리이다. 오랫동안 무시되거나 억압된 감정들, 말하지 못하고 삼켜진 진심들, 너무 많은 책임과 짐을 짊어진 삶의 무게. 암은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눌러둘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몸이 택하는 마지막 방식이다.
그것은 나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제 나를 다시 살아보라'는
영혼의 외침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병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두려움이나 분노, 억울함이 아닌,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내 감정을 다루는 습관, 내 마음의 방향성, 내가 밀쳐낸 나의 일부들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것은 치유를 위한 첫걸음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치유는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제 질병을 더 이상 '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일기'와 같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눌렀고, 무엇을 울지 못했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기록. 그래서 나는 내 몸에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줘서.
이제는 내가 너의 말을 들을게.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게."
이제 나는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고자 한다.
배가 묵직할 땐 그 안에 눌려 있는 감정의 무게를 들여다보고, 팔뚝이 부어오르면 표현하지 못한 말들이 있는지 떠올려본다. 감정의 순환이 멈춰 있는 곳, 오래된 감정이 고여있는 곳, 그곳에 따뜻한 손을 얹어준다. 그렇게 나는 매일, 몸과 다시 연결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나는 이 메시지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몸이 전하는 이야기, 영혼의 신호로서의 질병, 그리고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제는 몸을 단지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진실을 함께 읽어주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시작이고, 언젠가 나는 이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건네고 싶다.
누군가의 몸이 고장 나기 전에, 그 신호를 먼저 읽을 수 있도록.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기 전에, 그 안에 숨겨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몸은 언제나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