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선 넘지 마세요

대안 25 : 교회의 울타리에서 과감히 벗어나자

by 블루문

어머니께 구역예배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와 달리 작은 교회에 출석하던 나는 호출에 응답했고, 말로만 듣던 구역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구역담당 목사님이 오셨는데 첫눈에도 나보다 스무 살은 젊어 보였다. 예배는 끝이 나고 목사님은 내게 큰 교회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면 좋겠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내 신앙심을 테스트해 보려는 계속적인 질문에는 기분이 상했다. 동시에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올랐다.

디트로이트 외곽에 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자 한때 포드 공장에서 일했던 기계공 월트. 영화는 그의 아내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는 두 아들과 며느리, 할머니의 장례 중에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손자들 모두 월트는 꼴 보기 싫다. 그가 아끼는 건 애견 리트리버와 공장에서 일할 때 구매했던 1972년 산 포드 그랜 토리노가 전부다.

한국전 참전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참회를 하라던 생전 아내의 권유는 유언이 되었다. 장례식에 찾아온 27세의 젊은 자노비치는 갓 신학교를 졸업한 신부. 그가 삶과 죽음에 대한 강론을 시작하자 월트는 고개를 저으며 웃는다. 며칠 후 그가 고해성사를 권유하자 월트는 '가방끈만 긴 숫총각이 할머니들 손을 잡고 영생이나 남발하니 난 할 말 없다'라고 냉소로 받아친다.


어느 날, 이웃집 동양인 소년 타오가 갱단의 협박으로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하면서 갱단과 동양인, 그리고 월트와의 갈등이 벌어진다. 이후 동양인들이 억울하게 공격받자 전쟁 이후 꾹꾹 눌러둔 월트의 분노와 정의감이 서서히 폭발하기 시작한다.


일단 갱단이 동네를 공격하자 주민들은 외적에 맞서 하나가 되고 신부 역시 월트를 지지하며 죄 없는 이들을 공격하는 악인들을 맹비난한다. 어쩌면 신부에게 텍스트적 삶이 아닌 컨텍스트로서의 치열한 삶이 처음 시작된 것이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을 지키려다 군부에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 주교 역시 책에만 파묻혀 살던 분이었다. 상황(狀況)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월트는 갱단과의 최후대첩을 앞두고 자노비치 신부를 찾아간다. 긴장한 신부는 덜덜 떨면서 그의 고해를 듣는다. 하지만 다 듣고 난 신부는 기가 막혔다. ‘50년 전에 아내 몰래 다른 여성과 키스를 한 것, 900불 세금 보고를 누락한 것, 그리고 아들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이 전부였다.


10년 전 미국의 햄버거집에서 한 노인과 마주친 적이 있다. 표정부터 꼰대할아버지였다. 그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이라고 했다. 그러자 “오, 너는 파주를 아니? 내가 거기서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단다.” 파주라고요? 순간 그가 꼰대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저 한없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햄버거 세트를 하나 사드렸다. 그가 우리 어머니를 지켜준 셈이니까.


포드 그랜 토리노 1972년식


다시 구역예배로 돌아가 보자. 목사님의 성경지식과 목회 능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처음 만난 인생 선배에게 함부로 간 보는 건 선 넘는 일이다. 20대 초반부터 나름 30년간 가늘고 길게 신앙을 지켰다. 물론 넘어지고 사고 치고 회개하고 늘 제자리걸음인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한국 사회에서 발에 땅을 붙이고 버티면서 큰 죄 안 짓고 사는 건 쉽지 않은 거라 말해주고 싶다. 그 체험들을 일일이 열거한 내가복음(福音) 서를 한번 읽어보시겠나. 그런 내게 함부로 믿음의 잣대를 대지 말라. 무엇보다 작지만 소중한 교회공동체에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내가 철들었느냐고 물으면 여전히 자신 없다. 며칠 전 무지막지한 프로젝트를 끝내느라 날밤 새고 일한 다음 날, 후배에게 실없는 장난을 치자 그가 손바닥을 두 번 펼쳤다. “55세예요. 이제 철 좀 드세요.” 우린 둘 다 배꼽을 잡고 낄낄거렸다. 열심히 일하다가 때론 까불고 장난치면서 농담처럼 늙어가는 것, 이런 게 컨텍스트적 삶이다. 나일론 신자의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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