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찬가

대안 22 : 항상 곁에 있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라

by 블루문



왜 그랬는지 몰라도 어릴땐 우유도 고기도 먹지 못했다. 단백질 공급에 비상등이 켜진 나를 채워준 팔 할은 계란이었다.

국민학생 때 도시락 반찬은 계란 프라이에 김치, 혹은 멸치. 중학생 때 도시락 반찬은 계란말이와 김치.

심지어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의 반찬습격을 피하기 위해 계란프라이를 밥 밑에 깔았다.



삶은 계란은 또 얼마나 맛있나. 소풍 가서 사이다와 먹었던 그 맛은 변함없이 기억 속에 맺혀있다.

계란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는 가리는 음식이 없어졌다. 직장에 가서 회식을 하면서 수백 가지의 새로운 음식을 접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기가 맛있고 활어회가 맛있다 해도 난 계란이 최고다. 초밥도 계란 초밥이 제일 좋다.



반대로 샌드위치에 계란이 없으면 서글퍼진다. 호텔 조식뷔페에 가서 스크램블 에그가 없으면 서운하다.

얼마 전 김밥천국에서 라면을 시켰는데 계란이 없었다. 왜 없냐 물었더니 내가 추가했어야 한단다. 라면에 계란은 무조건 무조건인데. 내가 돈 천 원 아끼려고 안 시킨 게 아니라 당연히 넣어 줄 줄 알았던 건대.


유럽 출장 중 비엔나에서 사이공이라는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고슬고슬한 밥에 계란을 듬뿍 넣은 볶음밥. 그게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먹었다.

이듬해 비엔나 출장에서도 계란 볶음밥을 먹으러 그 식당에 갔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다리가 불편한 조제가 츠네오를 위해 계란말이를 만들어 준다. 일본 계란말이는 두껍고 약간 달콤하다. 츠네오는 그걸 쌀밥이랑 너무 맛있게 먹었다.



리처드 기어가 나오는 어떤 영화에서도 아침에 여자가 계란 스크램블 하나 해줬는데 그렇게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는다. 계란은 밍밍한 밥이나 빵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고소한 맛과 향취로 음식의 완성도를 최고로 만들어준다.


잘 차려진 식탁에 계란이 없다면 그건 어릴 때 혼자 집에 왔는데 가족이 아무도 없는 그런 허전함이다.


내 인생에서 계란만큼 나를 위해 온전히 희생한 존재는 없을 듯. 그래서 고맙다. 이번 생에서 내 가장 소중한 음식은 바로 계란이었다.


계란아, 고맙고 사랑해. 내일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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