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20 : 홧김에 팔아치우지 말고 결정은 신중하게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장롱면허였던 동생이 드디어 첫 차를 구매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가 했더니, 얼마 후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 탓이었다. 동생은 ‘무쏘’ 같은 큰 차를 원했는데 첫 차는 가벼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고집 탓에 ‘클릭’을 강요당했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흰둥이 클릭이 왔고, 동생의 과감한 출퇴근이 시작됐다.
2006년 어느 날,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생차랑 똑같은 차를 봤다는 것. 그런데 모르는 남자가 운전하더라는 것이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 그래, 데이트하다 딱 걸린 것이다. 이듬해 동생은 클릭을 몰던 사내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 클릭을 사준 아버지 자리에 형이 앉았다. 그렇다, 아버지는 뭐가 그리 급하신지 금지옥엽 딸내미의 혼인도 못 보고 세상을 떠나셨다.
2014년 여름. 동생에게 클릭은 애물단지가 돼 있었고, 차 한 대가 더 필요했던 나는 덥석 흰둥이를 데리고 와버렸다. 내가 몰던 차를 아내에게 넘기고 클릭은 내 차지가 됐다. 별다른 말썽 없이 잘 지내던 나와 흰둥이의 결별은 뜻밖에 빨리 다가왔다.
십 년간 멀쩡했던 H사 중형 S차량에 문제가 생겼다.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오일을 먹더라. 알고 보니 엔진 결함. 하지만 보증기간은 벌써 지났다. 거의 85%의 감가로 차량을 팔았다. 허탈하더라는. 홧김에 클릭도 알아봤더니 S와 거의 비슷한 가격. 헐~ 전화로 덥석 판다고 해 버렸다.
클릭은 내수가 아닌 수출용으로 인기였다. 리비아로 간다고 했다. 히잡을 쓴 리비아 여인들이 클릭을 좋아한다고 한다. 탁송기사는 차 상태가 너무 좋다며 아까워했다. 인도금이 입금되기 전 십여 분간 탁송기사와 수다를 떨었다. 알고 보니 대기업 부장제대한 지 삼 년 되신 같은 분야 선배였다. 정년퇴직하고 삼 년간 지옥 같은 세월이었다고 푸념하신다. 자격증 맡겨 최저 생활비 받고 짬짬이 탁송아르바이트하신다는. 그분은 차 두 대를 팔고 뚜벅이가 된 나를 회사까지 데려다주셨다.
“회사는 인생의 온실이었어요. 재직기간 동안 맘껏 누리세요”
선배는 클릭을 끌고 인천 송도의 수출용 차고로 떠났다. 13년 전 아버지가 구입해서 동생이 타다가 잠깐 나와 함께 살던 클릭은 그렇게 리비아로 떠났다. 그날 저녁 마을버스를 타고 퇴근해서 집에 오니 딸내미가 묻는다. “아빠, 꼬맹이 차는 어디 갔어?”
앗, 아이는 아침 등교 때 타던 클릭에게 정이 들었나 보다. 삼대에 걸쳐 주인을 섬긴 흰둥이를 왜 팔았나 갑자기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리비아... 거길 가면 우리 흰둥이를 만날 수 있을까?
부디 좋은 주인 만나 잘 지내길.
히잡 쓴 리비아 여인을 안전하게 모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