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의 추억

대안 21 : 어릴적 나의 가치를 인정해 준 물건을 기억하라

by 블루문

난 어릴 적에 비위가 약해서 우유를 마시지 못했다.

우유뿐 아니라 고기도 쇠고기, 돼지고기는 못 먹고 닭고기만 조금 먹었다.

차멀미도 심해서 버스를 타면 금세 얼굴이 하얘지고 결국은 비닐봉지가 필요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은 오래된 스토리다.


지금은 보신탕 등 몇 가지 기피음식을 제외하면 가리는 게 없다.

며칠 전 약국에서 손님을 위해 무료로 나눠주는 추억의 야쿠르트를 보았다.

옆에 빨대가 있었지만, 진정한 추억을 맛보기 위해 초록색 뚜껑을 손으로 뜯었다.

옆에 계신 할아버지도 같이 원샷. 무심코 하나를 더 집어 들고 주머니에 넣었다.


1970년대 한국은 부지런했고 고단했다.

1977년엔 수출 백억불 달성 기념으로 "100억 불"이라는 글씨가 적힌 어린이 털신이 나왔었다.


그때쯤 우리 집엔 바로 저 사진 속 야쿠르트가 매일 한 개씩 배달됐다.

비위가 약해서 우유를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특별히 주문한 것이다.

형이나 동생이 야쿠르트를 먹으려 하면 "그건 둘째 거야.. 너희는 우유 마셔..."


그때 난 처음으로 내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나만을 위한 것. 배려. 존중감.

휴일이 겹치는 때면 여러 개의 야쿠르트가 배달됐다. 그때는 형제들과 나눠먹었다. 그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내 것을 베푸는 기쁨. 여름이면 여러 개를 모아서 얼린 다음 성냥개비를 꽂아 샤베트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야쿠르트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배달했다. 한때 스타였던 태현실씨가 야쿠르트 아줌마 광고를 했었다. 그 외에 남양요구르트나 빙그레 요구르트는 야쿠르트의 카리스마를 따라올 수 없었다.


언젠부턴가 요거트가 수입되면서 야쿠르트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요플레가 나오고 차범근 선수가 광고에 나와 독일에서 먹던 바이오거트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젠 플레인 요거트부터 비피더스 등 수많은 요거트가 마트에 즐비하다.


정말 모든 게 풍성해진 시대가 됐다. 없는 게 없고 많은 게 달라졌다. 맥스웰, 맥심 커피가 독점했을 때는 아메리카노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에 나오는 구절-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난다-는 공감할 수 없는 냄새였다. 커피를 볶아? 그런데 이젠 하루에 한두 잔은 마셔줘야 하루가 지나간다. 그럼 7-80년대의 냉동건조커피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미원을 넣어야 맛이 난다는 시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원에 중징계가 내려지고 거의 이십 년의 징역살이를 했다. 최근에는 MSG가 무해하다고 한다. 이게 뭐야~ 왜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거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마음도 풍성해졌을까. 야쿠구르트 한 병을 아끼고 아껴서 마셨던 날들의 하늘은 지금의 잿빛하늘이 아닌 푸른 하늘이었다. 동네엔 흙이 있었고 거기서 금을 긋고 망까기를 하거나 구슬치기를 했다. 흑백 티브이였지만, 저녁에 방송되는 만화는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시대는 어떤가. 채널이 200개가 넘고 언제든 지난 프로그램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풍요 속에 왜 소외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아무튼 그 옛날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야쿠르트가 이젠 약국의 무료 음료가 됐다. 그러니 이제 약국에 오는 모든 이들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특별한 존재들이 점점 많아져서 우리의 삶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특별한 존재라는 걸 우리는 늘 잊고 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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