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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Jan 31. 2024

Q. 바디스캔 명상을 할 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Q. 바디스캔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제 몸이 사라진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두려울 정도로요.
괜찮은 건가요?




처음 바디스캔 명상을 시도했던 날 했던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음성에 따라 제 몸을 느껴보려고 하는데...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머리에 손과 발만 달려있는 느낌이었다랄까요? 분명히 있는 팔다리며 몸통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구글에서 찾은 호먼큘러스(Homunculus) 이미지


뇌가 인지하는 감각 이미지라고 하는데요. 물론 이렇게 특정 부위에 많은 감각세포들이 뭉쳐져 있다고 하지만, 처음 바디스캔 명상을 할 때는 이것보다 더 기괴하게 제 몸이 느껴졌어요. 보통 바디스캔 명상을 하면 '따뜻한지/차가운지, 촉촉한지/건조한지, 지릿지릿, 간질간질' 이런 표현들로 명상 경험을 유도해 주십니다.


'발끝이 지릿지릿, 따뜻한지 차가운지...' 이렇게 말씀을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냥 발이 있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그 발에서 무엇이 느껴지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명상을 끝내고 나눔을 하는데, 다들 '어디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졌고...'라며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내 몸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 감각들을 느꼈다고?!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일 걸까... 충격과 공포를 느낀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신체 감각이 살아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거의 MBSR 8주 과정이 끝날 때쯤이 되어서야, '아, 이런 느낌을 얘기했던 거구나. 발목에 주의를 가져가면 약간 따뜻하게 느껴지면서, 잠시 저릿하기도 하고...' 이렇게 특정 몇 부위에 대한 감각만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요가를 오래 했지만 항상 '내 몸을 느껴보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라는 말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동작을 할 때 신체의 어떤 부위에서 시원함이나 당김, 통증을 느껴야 하는지 전혀 모른 채, 그저 선생님의 요가 동작을 따라 하려고만 했거든요. 오히려 제 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무리해서 따라 하고는 탈이 나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이나 춤에 영 재능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더 몸에 관심을 덜 두었습니다. 그저 몸은 제가 살아가는 데 당연히 있는, 좀 마음에 안 들고 부족하고, 혹 몸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좀 더 예쁘고 건강하고 이것저것 잘하는 몸을 선택하고 싶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A. 괜찮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몸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오래 살아와서,
바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어요.

바디스캔 명상을 할 때는
'무감각'도 그 자체로 느껴주세요.
가만히 그 감각과도 머물러 주고요.

그리고 명상 외의 시간에,
신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운동이나 특히 명상요가를 추천해요.






MBSR 명상교육은 현재 순간으로 주의를 가져오며, 현재의 경험을 그대로 수용하는 연습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첫 번째 과정이 바로 내 몸에 대한 인지와 수용이고, 이것을 연습하는 방법으로서 바디스캔 명상을 하게 되는데요. 비교적 바디스캔 명상을 편하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고, 유독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는 듯합니다. 편하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은 평소 몸에 대한 인지력이 높은 편이고, 본인의 신체에 대한 거부나 부정 정서가 낮은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반면, 바디스캔 명상을 힘들어하는 분들은 저처럼 신체 인지력이 매우 낮거나, 혹은 내 몸에 대한 부정정서(심할 경우 혐오까지...)가 심한 분들이 많으시고요.


신체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와 함께 있지만, 그래서 가장 먼저 방치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신체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좀 더 나은 외형을 가지지 못해서, 좀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지 못해서 탓하고 원망합니다. 저는 어릴 적 삐쩍 마른 몸에 머리만 츄파춥스 사탕처럼 꽂혀있는 것 같아서 매일 거울을 보면서 '못생겼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는 너무 말라서 부모님이 걱정도 하셨지만, 자라면서는 친구들이 '날씬해서 부러워'라고 해도 그게 영 좋게 들리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운동도 정말 못해서 체력장은 항상 6급이었고, 춤을 추면 삐걱대는 목각인형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눈에 아직도 멋있어 보이는 분들은 '자기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분들'입니다. 운동선수나 춤을 잘 추고, 매우 유연한 분들이요.


여하튼, 저는 어릴 적부터 이렇게 제 몸을 예뻐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부족하게 느끼면서 마지못해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의 관점이었어요. 이런 저와 같은 경우 외에도, 많은 이유로 몸을 거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너무 뚱뚱해서, 너무 말라서, 어딘가 장애가 있어서, 또는 외부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내 몸을 거부하고, 혐오하는 감정이 자라날 수 있거든요.


MBSR 명상 8주 간은 매일 명상숙제가 나오는데, 제일 어려워하면서도 바디스캔 명상을 가장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누워서 하니까 좀 더 편했고, 별로 느껴지는 게 없으니 '쉬는 시간' 정도로 여겨졌거든요. 그러다 교육과정이 끝나갈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바디스캔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바디스캔 명상을 지속하다 보면 내 몸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양 발과 발목, 종아리와 허벅지, 엉덩이와 하복부, 갈비뼈와 가슴, 척추와 등, 목, 머리, 양팔과 손... 살면서 제 몸을 이렇게 하나하나 살펴본 적이 없었거든요. 또 제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살펴봐 주겠어요? 아,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서로의 마음과 몸(!)까지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죠. 그래서 다들 사랑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신체 감각들을 깨워가고, 인지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 지금 좀 이상한데?'하고 이상신호도 빠르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 몸이 힘든 줄도 모르고 혹사하다가 결국에는 고장을 내고, 오래 고생하곤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본격적인 호흡명상을 하기에 앞서 바디스캔으로 감각을 깨우면, 일상생활 또는 명상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을 더 빠르게 인지할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우리의 감정은 신체적 감각으로 먼저 발생할 수 있다고 해서, 감정과 신체감각을 연결해 보는 연습을 권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연결이 강해지고 오래 지속되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화병'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고요.


수업 중 유독 기억에 남았던 말이 '몸이 바로 집이다'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전에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되는 것인데, 왠지 좀 덜떨어진 걸 받았다는 관점에서 불만에 차 있었으니까요. 명상수업을 통해 적당히 잘 동작하는 몸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한 번도 이 몸에 고마워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처음으로, '오늘도 이리저리 다니느라 고생한 발아, 고마워. 내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음식을 잘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입과, 소화기관아 고마워,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눈과 입, 손아 고마워...' 이렇게 마음으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마음을 돌보는 것보다, 몸을 돌보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좋은 방법도 많이 알려져 있고요. 그저 건강하게 먹고, 적당히 잘 쉬고, 필요한 만큼 운동해 주는 것, 그것만 꾸준히 해도 충분합니다. 그동안 몸을 어떻게 생각해 오셨나요? 오늘은 잠시 누워서 바디스캔 명상을 하면서,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보살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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