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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구리 Oct 26. 2023

아이가 많이 컸다고 생각될 때

금요일 밤의 이야기

신도시로 이사도 한 후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설유치원 개원까지 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원래 다니던 서울의 유치원은 너무 멀었고, 맞벌이 시절이라 4개월이나 할머니가 가정보육을 하기에는 힘들 것 같아 임시로 옆 구도심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할머니는 강릉에서 아이를 봐주러 KTX를 타고 이곳까지 오셨다. 너무 힘든 걸 알기에 금요일 하루라도 종일반을 신청해 할머니는 금요일 일찍 강릉으로 가실 수 있게 했다. 서울에 살 땐 남편회사와 아이의 유치원이 가까워 금요일에 주로 남편이 하원을 시켰다. 가끔 내가 하원을 시켜도 좀 늦긴 했지만 버스에서 내려서 편하게 걸어서 하원을 시켰다.


구도심 유치원은 평소엔 유치원차량으로 등하원을 하여 할머니가 맡아주셨고, 종일반을 하는 금요일에는 차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금요일에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초보운전인 나는 익숙한 출퇴근길이 아닌 길이 좀 겁이 났다. 2주 정도는 남편이 일찍 퇴근을 해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한주 더 지난 금요일, 오늘은 남편이 늦어 내가 하원을 시키기로 했다.


금요일의 은행은 한 주 중에 내점손님이 가장 많은 날이다. 폭풍처럼 오시는 손님들을 응대하고 번개 같은 마감을 했다. 화장실도 점심때 한 번만 가고 오후엔 손님이 많아 화장실 가는 걸 잊어버렸다. 마감 후엔 유치원에서 혼자 남아있을 아이를 생각하느라 또 화장실을 들리지 못하고 6시 땡 하고 은행문을 나왔다.


운전의 유연성이 부족한 나는 초행길은 항상 미리 시뮬레이션을 했다. 며칠 전부터 몇 번 네비를 돌려보고 출발하기 직전에도 네비를 꼼꼼히 본 다음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은 업무 중 정신없던 게 퇴근할 때까지 이어져 유치원까지 가는 길을 미리 보지 않고 출발을 해버렸다.


겨울이라 밖은 한밤중인 것처럼 깜깜했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것보다 20분 정도 더 운전해야 해서 총 40분 정도 운전을 해야 했다. 초보운전인 나에게 어두운 밤의 40분 운전은 정말 떨렸다.


우리 집까지는 익숙한데 집을 지나 유치원까지 가는 길이 험난했다. 왕복 8차선의 도로에서 어느 정도 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엔 차들이 줄줄이 깜빡이를 틀어놓고 임시정차해 있다. 너무 빨리 오른쪽으로 가있으면 정차되어 있는 차에 막히고, 너무 늦게 오른쪽으로 가면 들어갈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골목길에 들어가서 좁은 오르막길에 차를 주차해야 했다. 골목길 오르막 끝에서 차를 요리 조리돌려 내려갈 방향으로 바꿔서 대야 하는데 초보운전자는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뒤차들의 경적소리를 먹으며 어찌어찌 유치원 앞에 도착을 했다. 쉬지 않고 달려와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40분이었다.


유치원 뒷문 초인종을 눌렀다. 신발장에는 우리 아이의 신발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금요일에는 일찍 끝나는 회사가 많은지 평소에 늦게 가는 아이들도 일찍 하원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추운 겨울에 입김이 술술 나왔다. 딸아이는 보통 나올 때마다 깨발랄한데 오늘은 어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 눈을 모른 척하고 나는


"얼른 집에 가자 춥지?"


라고 말하며 뒷좌석에 아이를 태웠다.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말을 시작했다. 난 아이가 "엄마 내가 꼴찌였어." "엄마 빨리 집에 가자."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오늘 엄마가 데리러 왔네. 00 유치원에 차로 처음 온 거지? 깜깜한데 오느라 고생했겠네."


라고 5살 아이가 말을 했다. 오느라 고생했다는 아이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걸 아이도 알고 있었다. 뭉클한 마음을 붙잡고 평온한 척하며


"땡땡이는 기다리느라 안 힘들었어? 엄마가 여기 운전해서 처음 와서 좀 떨리긴 하더라."


라고 대답하였다.


... 우리 아이가 이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구나. 그렇게 생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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