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구리 Nov 06. 2023

갓 태어난 도시에 노인은 없었다

신도시에 오기 전 살던 동네. 오래된 어린이 광장과 함께 놀이터가 이어져 널찍한 장소가 있었다. 벤치 위, 나이를 먹은 크고 높은 나무들은 그늘이 되어 주었고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곳에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계셨다.


할머니들은 검정비닐봉지에 담긴 시장판 채소들을 보여주시거나 팔을 쭉 펴서 앞뒤로 흔들고 박수를 치며 팔운동을 하셨다. 어느덧 옆에 할머니, 그 옆에 할머니도 같이 팔운동을 시작하며 박자가 일정해진다. 일정해진 박자에 할머니들은 80년대생이 듣기엔 어디서 들어본, 제목은 모르겠는 노래 부르기 시작하신다.


아파트 놀이터 옆 정자. 건조하고 맑은 날씨에는 할머니들이 각종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정자에 늘어놓고 다듬고 계셨다.


"그건 뭐유?"


"우리 동생이 시골에서 농사짓잖아요."


옆에 지나가던 할머니가 간단한 질문을 하시더니 어느새 옆에 같이 앉아 일을 도와주고 계신다. 할머니들끼리의 친해지는 방식인 것 같다.


이사한 신도시. 아파트 중심부에 노인정 건물이 지어져 있다. 하지만 노인정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이 보이질 않는다. 아이를 봐주러 평일에 우리 집에 와계신 60대 초반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노인정에 사람이 없는 거 같아."


"여기 할머니들이 안 계시잖아. 그리고 요즘 60대는 할머니라고 인정 안 해서 노인정 안 다녀."


"그래?"


"나도 나름 이제 할머니라 신도시에서 볼일 보러 걸어 다니면 할머니들이 못 보던 할머니 본 것처럼 엄청 기뻐하시면서 말 걸더라고. 이 동네는 노인들이 없슈~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신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보니 정말 어르신들이 없었다. 친정엄마처럼 60대의 나이로 손주를 봐주기 위해 와계신 분들만 종종 보일 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강아지와 함께 여유로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보행기를 끌며 천천히 산책을 하고 계신 80대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강아지 바라보며 미소 지으시기도 하고 의자겸용인 보행기에 앉아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보셨다. 그야말로 멋지고 알차보이는 할머니의 산책시간.


어느 날 아이가 아빠와 함께 로켓발사 장난감을 들고 아파트 공터에서 날리고 있었다. 발로 쿵 하고 누르면 부드러운 소재의 날쌘 로켓장난감이 슝 날아간다. 강아지를 산책시킨 후 로켓을 구경하러 가던 나는 구경꾼이 한 명 더 생긴 걸 느끼고 바라보았다. 지난번 산책을 할 때 뵈었던 할머니. 로켓장난감을 바라보며 신기해하셨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에 흐뭇해하면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동자에 동심이 비쳤다.


인상이 좋으시고 산책길에 몇 번 마주치기도 했어서 간단히 안부인사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낯가림이 심한 자아가 그것을 방해했다.


어르신이 귀한 신도시. 길에서 나이 드신 분들을 만나면 나도 어느새 고개를 돌려 바라보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