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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몽 Sep 11. 2023

많은 집을 돌고 돌다.

내 집을 향한 집념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왔고,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주말엔 육아로 바쁘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한숨 돌리는 날들이었다.


주말에 제주도 왕복을 했더니 상당히 몸이 피곤했다.

일단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내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서 자잘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틈나는 대로 다시 전국의 해안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집을 보고 와서 만족감이 커서인지, 어디가 되었든 이걸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집을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그 당시에는 아직 "한달살기 임대"의 계획까지는 없었고, 숙박 정도의  "빌려준다"는 생각만 했다.


예약이 들어오면, 그전에 내가 가서 몇 시간 청소하고 나온다.

손님들이 나가면, 다시 가서 청소하고 나머지 비어있는 기간에는 내가 들어가서 쉰다.  

 

이렇게만 생각했다.

 

'한 달에 몇 번 예약이 들어오면, 하루에 대충 10만 원이라 치고... 5박 정도만 예약이 나가도 50만 원...

혹시 잘 되면 100만 원...

안되면 내가 가서 쉬면 되고...손해는 안 보겠지?  

어디 놀러 가려면 어차피 돈 드니까...

애들도 같이 놀러 가면 좋아할 거고..'


생각하다 보니, 그냥 세컨하우스로만 둘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장사를 해보고 싶어졌다.



예전부터 새로운 소득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어지간한 사업 아이템들은 자본력에 밀려 소상공인이 수익 내기 어려운데,

"작은 집 임대"는 자본력으로 대체될 수 없는 "소박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라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꼭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매출에 대해서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서점에 찾아가 "게스트하우스 운영 일지", "펜션 운영의 모든 것", "에어비앤비로 돈 벌기" 등등의 책을 샀다.

 

출, 퇴근길에 펜션운영 유튜브도 열심히 시청했다.

이렇게 하니 숙박 장사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수익을 어떻게 예상해야 할지 약간의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보았던 책들은 모두 주인이 거주하면서 숙소를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였다.

그때도 지금도, 본업은 따로 있으면서 먼 거리에 있는 세컨하우스로 장사하는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 역시,

서울에서 일하고는 있지만 보통의 직장인들과 달리  "업무시간이 자유롭다"는 특수한 조건이 있으니 가능했다라고 할 수 있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비정기적으로 "하루 ~ 이틀" 씩 시간을 내야 하고, 틈틈이 언제 올지 모를 고객의 문의에도 되도록 빠르게 응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업무시간이 자유롭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하거나, 가족이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경우(예를 들어, 외벌이 부부,  3세대 가족 등등),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경우라면 가능할 것 같다.




내륙의 집들을 구경하다.


제주도에 한 차례 다녀와서, 왕복하는 게 상당히 힘들고 돈이 든다는 것을 체감했다.


목표를 바꾸어 이제는 차로 2시간 정도만 떨어진 거리 내에서의 집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충청남도 서산,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대부도...

하루 씩 날을 잡아 다녀왔다.


인터넷에서 미리 봐둔 매물을 1, 2개 미리 점찍어두고, 공인중개사에게 전화해서 방문 약속을 잡고 갔다.


새로운 장소에 궁금한 집을 보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렜다.

오고 가면서 쉬지 않고 집에 대해 생각했다.  


마구 개발된 동네에 엉성하게 지어진 신축주택,

동네는 호젓하지만 너무 크고 낡은 양옥주택,

지은 지 20년 정도 된 망해가는 펜션,

누군가 싸게 낙찰받았지만 손도 안 대고 놔둔 3층 집 등등..


다양한 집들을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집은 잘 없었다.

10개의 집이 있다면 그중에 8개는 내겐 규모가 너무 컸다. 비쌌다.


그리고 집에 장식이 너무 많거나,

전체적으로는 괜찮아도 부엌과 화장실이 낡아서 리모델링이 필요한 집들은 선택에서 제외했다.

집을 사는 것도 벅찬데, 몇 천만 원 들여 수리까지 할 여력은 없었다.


예전에도 집 구한다고 수 없이 발품을 팔고 인테리어 견적도 내고 공사도 해봤었는데, 그때의 경험들이 이제야 모두 구슬을 한 줄로 꿴 듯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니면서 나에게 필요한 집이 어떤 것인지 범위를 좁혀갈 수 있었다.


'땅은 50평 정도, 집은 작을수록 좋다.'

'예쁘기까지 바랄 수는 없지만, 너무 후지게 생기면 안 된다.'

'지은 지 5년 안쪽이어야 한다.'

'너무 으슥한 곳에 있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다니다가, 어느 날 무척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

태안 시골 서바닷가의 소나무 숲 속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차로 열심히 달리면 2시간 거리, 집 구조는 커다란 원룸형태로 무난했고, 데크까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조경은 기대도 안 했는데, 집 앞 뒤로 해송이 멋지게 자라 있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서해바다였다.

알아본 집 중 예산도 가장 저렴했다.


낭만적으로 생긴 하얀 집이었다.

이 집에서 식구들과 바비큐도 해 먹고, 기타도 치고, 바닷가에서 조개도 잡는 모습이 바로바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 집은 공인중개사도 소개만 딱 해주고 가버렸고,

특히 대출을 알아보러 전화한 은행에서는 바로 답을 주지도 않고,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부동산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그런 건 은행에 알아보라는 답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자금부족으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래도 그 집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려서, 한 번은 차를 몰고 밤에도 가보고,

또 낮에도 가서 집 주변을 거닐고, 바닷가 앞의 마당 평상에도 앉아보았다.


'마음에 드는데...'


그렇게 아쉬운 마음 반, 들뜬 마음 반으로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가벼운 접촉 사고였지만,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어서 많이 놀랐다.

상대방 차주와 실갱이도 있었고, 이런저런 사고 뒤처리하느라 일주일 정도 스트레스를 몹시 받았다.  




내 집은 역시 없는걸까..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결국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나는 또다시 사무실에 앉아 하염없이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달콤한 꿈을 꾼 것 같았다.


나의 욕심이구나.. 이건


'나의 욕심'이라는 실체가 가슴을 찌르기 시작했다.  

모아 놓은 돈도 없이, 대출금을 통해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 너무 욕심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늘 반복이다.

또다시 이룰 수 없는 꿈만 꾼 것 같아 스스로가 미워졌다.


수능을 앞둔 고 3 때처럼, 대박이라는 요행을 여전히 바라는 내 모습과 단단한 현실의 벽 앞에 속이 상했다.

그냥 하던 일에나 충실하자 싶어서 하루 종일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 매물은 매번 새로운 것이 올라오고, 집의 위치와 컨디션, 가격은 모두 다르다.


모든 것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더라도, '이번에는 혹시나..'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가보는 마음이랄까?

해볼 만한 집이 눈에 띄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다시 자라났다.


시간과 데이터, 피로감이 직접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나니 생각의 길이 절로 다듬어졌다.  


차로 2시간 거리여도 왕복 5시간은 걸리고, 피곤하다.

이 피로감에 입실 전 후 청소까지.. 현실적으로 주말에만 숙박을 내준다 해도 내가 매주 이걸 하기 버겁다.

제주도 왕복도 피곤하다.

손해보지 않고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한 달에 적어도 50만 원은 벌어야 한다.

매주 주말마다 1박씩 집이 나가도 50만 원이 안된다.

청소 덜하려면, 장기숙박으로 가야 한다.


몇 주간의 체험과 계산을 통해, 단기 숙박이 아닌 "한달살기"를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달살기"를 한다면, 서해바다보다는 제주도가 수요가 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처음부터 나는 제주도에 가고 싶었어.

다시 제주도로, 그리고 "한달살기" 임대를 하자. 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숙박업은 법적으로 집 구조, 주인 상시 거주 등의 제한이 있다. 한달 살기 임대 형식이 내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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