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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몽 Sep 05. 2023

첫 번째 제주도 답사와 게스트하우스 1박

다시 제주도에 매료되다.

오랜만의 제주행이었고,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이 약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지, 출발부터 애틋했다.


(그땐 알 수 없었지만, 그 뒤로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나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한 것인지 이제는 세기도 힘들다)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던 막막한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떠올랐던 것은,

처음 제주도에 갔던 그날인 것 같다.

1박 2일 짧은 여행에서 느꼈던 소박한 감동이 계속 마음을 움직였다.



게스트 하우스 방문기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었다.

원래의 나는 사람 많은 곳 싫어하고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어야 하는 상황도 두려워하는데,

비행기 티켓을 산 순간부터 마음이 살짝 "일탈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삼십대의 끝자락.


확실히 '더 이상 나는 젊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춤거렸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늙어가기만 할 텐데, 지금 아니면 내가 또 언제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엘 가볼 수 있겠나'

그리고 (사실은 그냥 제주도 가고 싶었으면서) 내가 앞으로 해보려고 하는 것도 작은 숙소 같은 것이니, 이럴 때 "현장체험"를 해봐야 한다는 이유도 갖다 붙였다.



20대, 30대 내내

모임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편안하게 여겼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것도 잘 못 견뎌서 어지간한 자리는 다 꾸역꾸역 참석했다.


이제는 혼자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즐겁기까지 하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낯선 자리에 혼자서 아무 말 않고 있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제주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렌터카를 타기 위해 5번 게이트로 나가면, 아주 살짝 더 온기가 느껴지는 공기와 습기가 훅 하고 다가온다.


유난히 짙은 초록색의 키 큰 야자나무들이 울창하게 모여 서 있다.

까맣고 커다란 돌하르방도 여기저기 서 있다.


그땐 코로나가 한창일 때여서 커다란 돌하르방이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지나갈 때마다 일일이 체온체크를 할 정도로 공항 안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는데, 마스크를 쓴 돌하르방을 보니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혼자서 제주도에 왔다니.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훌쩍 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렌터카를 찾아서 시동을 걸고, 표선리의 게스트하우스를 목적지로 찍었다.

한라산 중산간을 넘어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거리 표지판의 낯선 지명들과 훌쩍 키가 큰 야자나무들..

한 시간 비행기 타고 내려온 것일 뿐인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새로웠다.


출발할 땐 산 위에 산보다 더 커다랗고 검은 구름들이 꿈틀거리는 정도더니, 중산간부터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창문에 비가 쏟아졌다. 

속도를 낮추고 조심조심 남쪽의 서귀포로 나아갔다.


검은 바닷가에 다가가자 어렵지 않게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환영해 주는 사장님과 인사하고, 상당히 뻘쭘하고 어색한 느낌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은 3명 정도 이미 와서 앉아 있었고, 사장님은 무려 샤브샤브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바로 저녁식사 시작!

야채와 소고기가 푸짐했고, 소스도 여러 종류가 마련되어 있어서, 재료들을 부지런히 끓는 물에 담갔다 꺼냈다 하면서 배를 채웠다. 매콤 상큼한 배추김치도 뜯어먹고, 칼국수도 팔팔 끓였다.


먹기 시작한 이후로도 사람들이 몇 명 더 와서 그날 저녁의 손님들은 모두 7명이었다.

남자 5명, 여자 2명.

의외로 혼자 온 사람들이 4명, 일행으로 온 사람들이 3명이었다.

나는 내가 나이가 많은 편일 줄 알았는데(게스트하우스는 어린 사람들만 갈 것 같았다), 오히려 약간 어린 편이었고, 대화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오고 갔다.


각자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말할 사람들만 말하고,

제일 화제로 오른 것은 역시 "오늘", "왜", "어쩌다가" 여기에 와 있는지였다.



각자 사연은 다 다르지만, 모두에게 굉장히 비일상적이었을 하루였던 것이다. 평소에 특별히 말할 것도 없는 날들만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참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두 시간 정도, 정말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떠들었던 것 같다.

어색하지 않고, 정말로 웃겨서 기뻤다.


각자 직업을 맞춰보기에서, 어떤 분이 나에게 작가일 것 같다고 했다.

"정말요?" 하면서 입이 헤벌쭉해졌다.

정말 내가 작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작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정규 직장 없이, 여기저기 여행하는 중인 사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숙식을 해결 중인 유튜버,

어렵게 어렵게 모처럼 시간을 맞춘 직장 동료 3명이 오늘 한라산을 올라갔다 온 이야기.

갓 취직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된 20대 사람이 오늘 오토바이 여행을 온 이야기..

각자 왜 이 숙소를 골랐는지,

내일은 뭐 할 건지, 어디 갈 건지....


그렇게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다 저녁식사 자리가 슬슬 마무리됐다.

술을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따라가서 더 놀고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즐거울 때 일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일기를 쓰다 잤다.


다음 날 아침에는, 예약해 둔 조식을 먹으러 다시 식당에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게스트하우스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구에 딱 붙어 있는 위치에, 소박하게 3동 정도의 건물이 이어져 있었다. 아리 높이인 낮은 돌담 너머로  바로 방파제와 바다가 이어져 있었다.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제주도에 많이 방문했을 땐, 이런 스타일의 건물이 흔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빌딩숲에서 하루 만에 제주도의 바닷가에 오게 되었던 그 때의 나는 손으로 하나하나 올려놓은 까만 돌담, 나무판자 색칠해서 쓴 간판, 마당 군데 군데에 예쁘게 뭉쳐서 자라나는 열대의 화초들,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대충 툭 놓여 있던 나무 둥치 의자들 다 스머프 마을 같고,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람이 정말 정말 많이 불.

 

식당에는 북적북적했던 어젯밤과 달리 나 외에 손님은 1명 있었다.

서로 눈인사만 살짝 하고 말없이 토스트와 계란후라이, 양배추 샐러드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 방문은 생각보다 편하고 즐거웠고, 혹시나 했는데 친구는 만들지 못했다.  


일어나서 아침까지 먹었는데도, 퇴실시간이 아직 1시간이 남아있었다.

전날 저녁에 도착해서 1박만 하는 짧은 일정이어서 퇴실시간까지 꽉 채우고 싶었다.


1시간 동안 무얼 하지.. 생각하다, 가져온 아이패드를 켜고,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창 밖으로 바로 보이는 야자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후로, 집중력이 바닥을 쳐서 책을 꾸준히 읽기도 어렵고, 특히 아이패드를 켜면 켜는 순간,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도 까먹고 딴짓, 인터넷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집중해서 끝까지 그림을 그려냈다.


아이패드를 사고 난 후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아니, 그림을 그려보는 것 자체가 몇 년만이었는지?


여행의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나도 그걸 해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하게 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예상외로 결과물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러, 짐을 챙겨 렌터카에 올랐다.

이제 정말로 나의 "명분 상의" 목적지로 향할 때다.



경매물건은 살짝만 보고..


경매 사이트에서 본 그 집은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물론 집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근처를 둘러볼 작정이었다.


여러 개의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타운하우스였는데, 서울처럼 출입구 경계가 삼엄하지 않아서 나는 길을 잘못 들어온 척 타운하우스 중심으로 들어가서, 바로 "그 지번"의 건물 옆에 차를 주차했다.


크게 둘러볼 것은 없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눈에 보이는 모든 경치가 다 마음에 들었었다.

경매로 나온 그 단독주택도 아담하고 이뻤고, 무엇보다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마당들과 조그만 마을의 정취가 너무나 좋았다.


그냥 건물과 위치를 확인하러 간 것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까지 품고 있었던 것이다.


대출 문제로 어차피 매수를 결정할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사진으로만 봤던 건물의 실물을 보니 그냥 모든 게 다 통째로 마음에 들었다.




조금 둘러보다 차를 돌려 마을어귀로 나가자, 작은 초등학교가 보였다.

세상에..

내가 봐오던 서울의 초등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초등학교를 발견하고, 정문 앞에 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내려서 학교 정문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울창하게 나무가 우거진 입구,

잔디가 연두색으로 깔린 운동장,

귀여운 (무려) 1층 건물의 학교..

학교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파란하늘과 구름..


너무 예뻤다.

순식간에, 이곳에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근처를 산책하는 내 모습까지 떠오를 지경이었다.

학교 옆에 나란히 이어져 있는 단독주택의 작은 마당에 걸린 빨래들조차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마당에 빨래 널고 앉아 있고 싶었다.


휴... 역시 여긴 정말 좋구나....

일단 아름다운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웠다.

나의 삶이 그곳에 포함되어 있진 않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은 엄청나게 큰 의욕을 준다.  

언젠가 닿고 싶은 꿈을 하나 충전했다.


그 길로, 서귀포의 남쪽 해안 도로를 조금 드라이브하다가 해물라면과 망고스무디를 사 먹고 제주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전날 저녁부터 비가 세차게 쏟아졌고, 아침에까지 먹구름이 좀 꾸물꾸물하더니

그때쯤 갑자기 날이 화창하게 갰다.

물기가 남아있는 채로 햇살이 환하게 비추니 정말 공기가 반짝반짝해졌다.


그때 차에서는 좋아하는 일본 밴드 키린지의 "Crazy Summer"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느릿느릿한 템포에 대체로 행복한 회상의 느낌을 주는 곡인데, 중간에 이상하게도 약간 애상의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다.  햇살이 환하게 반짝반짝 비추던 바로 그 순간에 바로 그 파트가 흘러나왔다.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바로 여기야.. 네가 원했던 것..'이라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슬픈 곡도 아니고, 슬픈 기분도 아니었고, 정말 수 없이 많이 들었던 곡인데도

그 순간엔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슬프고도 기뻤다. 이걸 여기서 지금 들으려고 여기에 왔구나.. 생각했다.  


 그땐 이 가사가 어떤 뜻인지 전혀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며 해석을 찾아보니 이런 뜻이었다.

묘하게도 실제 뜻이 들으면서 느꼈던 감성과 통한다.


"sunset..

엄청나게 소란스런 바다에서

지금도 나는 허우적대고 있어.

특별했던 눈동자

흔하게 넘쳐났던 거짓말의 

밑바닥 깊숙히..

crazy summer"



나중에 여러 번 겪어보니 이것도 제주도에서 며칠에 한 번씩은 볼 수 있는 풍경과 날씨였다. 그런데, 그땐 그게 정말 아름답고 특별했다.


그렇게 흐른 눈물을 닦고,

해안가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해물라면과 망고 스무디를 사 먹고,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공항을 향해 출발할 때부터 집까지 가는 여정이 정말 멀고 힘겨웠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날 그 행복했던 기분은 사라지지 않고 내내 내게 강력한 힘이 되었다. 등대에 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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