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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몽 Aug 31. 2023

언감생심 세컨하우스 2

일단 제주도로 출발했다.

사실 퇴근시간인, 금요일 오후 6시가 지나도록 계속 망설였다.


'아니, 어차피 대출 어려울 것 같은데, 집을 봐서 뭐 해..'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까지 알아본 매물을 직접 가서 근처라도 둘러보는 게 경매에서 중요한 과정 이랬어.'

'혹시 알아?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될지...'



사실 1박 2일 일정 이래도, 왕복 비행기 티켓에, 렌트비에, 숙소 비용까지..

그냥 경험이라고 치고 쉽게 지불할 비용은 아니었다.


주말에 못 쉰다는 게 조금 버겁기도 했고, 평소 안하던 지출을 하려니 부담됐지만 그냥 "해보자"에 한 표를 던졌다.



그때 그 "그냥 해보자"는, 이 모든 일의 서막이었음을 후일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는 "세컨하우스를 산다"는 답부터 정해놓고, 어떻게든 모든 정보와 이유를 찾아 꿰어 맞춘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엔 신중하다가도 막상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죽은 것처럼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마음속 어린애가 뛰쳐나와서 온 사방을 마구 휘젓고 다니고, 모두를 휘어잡고 설득한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더라도, 이런 충동적인 강렬한 마음이 삶에 자주 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일단 제주도로 출발


바로 코앞에 닥친 주말, 

토요일 점심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러 가기 때문에 내겐 소중한 자유시간이다. 

그 사이에 다녀와야 한다.


금요일 퇴근 시간을 넘겨서도 사무실에서 계속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다음날 토요일 늦은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표와 찜해 둔 집 근처에 있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렌터카를 예약했다.


에라 모르겠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몰라도, 뭐라도 얻겠지.


막상 이렇게 결정을 해버리고 나니

새삼스럽게 마음이 들떴다.


제주도에 반했었고,

제주도에 이사 가서 살자고 약속하며 결혼했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냥 세월만 흘렀는데,

갑자기 이렇게 혼자 제주도에 가다니.


막상 저지르고 나니 살짝 흥분이 되었다.


아이들이 집에 없는 사이에 하는 일이지만, 아이들이 제시간에 딱 왔다 갔다 하리란 법도 없고, 어쨌거나 육아 때문에 부모님 눈치를 보던 시절이라, 집에는 꼭 필요한 일이어서 가는 것으로 말했다.



이윽고 다음날 점심.. 순조롭게 아이들이 떠나고..

나도 짐을 챙겨 공항으로 출발했다.



김포공항.

대체 얼마 만에 가보는 것일까?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도, 평소엔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줄도 모고 산다.

그러다 이렇게 상황과 장소가 겹치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기억의 상자가 열린다.


마지막으로 김포공항에 갔던 것.

제주도에 갔던 것은 3년 전.


남편과 이혼하기도 몇 달 전, 제주도에 먼저 가있는 남편을 만나러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비행기를 탔던 날이었다.

봄이었다.

그땐 정말로 그 뒤 채 일 년도 안 돼서 우리가 헤어지게 될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 부는 함덕의 언덕에서 조촐하게 찍은 네 식구 가족사진도 있었다.

그게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 줄 몰랐다.


꿈꿨었던 네 식구의 미래는 사라지고,

지금은, 나 혼자서 1박 2일 분의 가벼운 짐을 들고,

경매로 올라온 집을 둘러본다는 명목으로 꾸역꾸역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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