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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Jun 21. 2024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만한
정말 웃긴 그림책

다비드 칼리

책의 내용을 보기 전, 표지의 그림만으로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은 그림책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읽게 되었는데, 그림을 보면 특히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거 같다. 남자 어른에게도 재미있으니 말이다.


제목은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이다. 제목만 봐서는 이종격투기 꿈나무를 위한 조기 교육서 정도로 생각되지만 결코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표지에 등장하는 아이의 포스가 심상치 않다. 엑스자의 붉은 반창고를 하고 씩 웃는 표정에서 드러나는 검은 이빨, 밤중에 길에서 만났다면 바로 꼬리를 내릴만한 기세다. 이 그림책은 다비드 칼리라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의 책인데 어떻게 이런 그림책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 창의적인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쉬는 시간, 남자아이들이 교실에 모여있다. 개구쟁이들의 표정에서 교실 분위기를 짐작할만하다. 약간 골치가 아파오려고 하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풍경이다. 실제 초등학교 1~2학년 남자아이들은 참 많이 싸운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것 같다. 특히 난 세 살 터울의 형아 있는데 그 나이 때에 형이랑 참 많이 싸운 거 같다. 완전 밀림의 왕국이었다.


인류 최초의 결투 장면이 나온다. 그저 재미있게 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두 사람이 매머드가 서로 자기 거라고 우기며 싸우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싸움 중 대부분은 '내 것과 네 것'에서 시작되는 거 아닐까? 전쟁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이 석유가 내 석유인지 네 석유인지, 이 다이아몬드가 내 것인지 네 것인지.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는다. 이 순간에도......



작가는 아주 뻔뻔하게(?) 싸움에 장점을 그림까지 곁들여 설명해 준다. 혈액 순환에도 좋단다. 그리고 위장이 얼마나 튼튼한 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의 싸움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진정한 싸움은 공정해야 한다. 똑같은 키, 똑같은 몸무게. 3:1은 공정하지 않다. 아이들의 말처럼 요즘 학교 현장에서 심각한 골칫거리인 '왕따'는 아주 비겁한 싸움이다. 3:1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편을 먹고 한 사람을 괴롭히니 말이다. 아이들의 이 규칙만 알아도 왕따 같은 건 시키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어른들의 싸움은 다르다. 공정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 저자는 진정한 싸움은 놀이일 수 있지만, 증오 때문이라면 더 이상 놀이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싸움에도 정도가 있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아이들의 싸움은 해가 지면 끝난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쿨하게 내일을 기약한다. 그래서 싸움을 했다고 누군가를 증오할 이유가 없다. 내일 또 싸우더라도 말이다.


싸움의 이유는 따지고 보면 별 거 아닐 때가 많다. 어른들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요즘 뉴스를 보면 무서울 때가 많다. 운전을 하다가 경적을 울렸다고 야구 방망이를 꺼내 상대방의 차를 부수고, 길거리를 지나가다 눈이 마주쳤다며 다른 사람을 때리기도 한다.

경적을 울리고 눈 마주치는 게 뭐라고?

사람이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증오하는 시대인 것 같아 슬프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으면 좋겠다.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재미난 그림과 글밥에 웃음이 빵빵 터지는 그림책이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풍족한 책이다. 그런데 어느새 웃음과 함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생각해 볼 점도 많은 그림책이다.

아이들도 작은 사회 안에서 살면서 매일매일 크고 작은 싸움을 한다. 갈등을 겪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그림책을 보고 친구나 가족들과 다투었던 경험을 한 번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나는 그때 놀이의 싸움을 한 건지, 놀이를 넘어선 싸움을 한 건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싸움을 안 하고 살 순 없을 거다. 그래도 싸움을 하더라도 놀이의 싸움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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