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無)로 돌아간 노력의 순간들

무(無)로 돌아간 노력의 순간들이 언젠가 빛을 발한다 믿는다.

by 김무인

뜨거운 여름날 눈물을 흘리며 쳤던 시험 이후, 노력이 무()로 돌아갈 수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시험장을 떠올려보면 열심히 준비했지만 압박감에 손을 엄청 떨었다. 한 번에 시험에 합격하고자 했고 얼른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여기서 실수를 하면 그 힘든 시기를 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공포스러웠다. 사실 최근에도 퇴사를 하고 1년간 준비한 시험에서 같은 일을 겪어서 심적으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1주일간 독감증상과 함께 몸져누웠다. 하지만 한번 겪어 봤기에 당시만큼 날 것이 되지 않은 것이 3년 사이 큰 성장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무(無)를 느끼게 된 자식의 날 것 그대로의 슬픔을 본 엄마는 없는 돈을 끌어 모았다. 자유롭고자 하는 딸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보고 오길 바란 엄마가 쥐어준 100만 원으로 10일 동안 여행을 했다. 국내로 여행을 했는데 공부하느라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부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미래는 어떻게 살아갈지. 무()로 돌아간 1년을 만회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공부를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세상에 나가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지.


다행히도 여행 중에 계약직으로 단기취업 제의가 들어와서 고민도 없지 바로 질렀다. 당장에 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고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 충동적이었다. 얼떨결에 입문한 사회는 생각보다 별것이 없었다. 간단한 일이라 더 그랬고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알던 나에게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다 나오는 세상이라 더욱이. 한두 달 일에 적응을 하고 나니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지루했고 계약직 일이 발전이 없는 것이란 생각에 더욱더 하루를 지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퇴사 후의 계획을 세웠다.



퇴사 후에는 여행을 했는데, 먼저 국내여행을 했다. 대전과 서울 여행이었다. 오랫동안 못 만난 대학교 친구들인 5인방과 대전 여행을 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생각과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1박 2일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연달아 서울로 소울메이트와 여행을 했는데 깊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과거와 달라진 그리고 조금은 성장한 서로를 보고 뿌듯하기도 그리고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서로가 안쓰러워 보기이기도 했던 것 같다.


서울 여행을 갔다가 2일 뒤에 공부를 잠시 내려놓고 들어간 회사에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약 2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삶의 버킷리스트를 여러 가지를 이뤘는데, 몇 개만 말하자면 폼페이 유적지에 가고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도 했던 것이다. 꿈꾸던 것을 하나씩 해내니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과 성취감에 기분이 황홀했다. 작던 나의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 이뤄지는구나. 잠시 잊었던 꿈들도 결국에는 이렇게 이뤄지는구나. 벅참을 잠시 느꼈다.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여행이 삶에서 필요한 이유가 언젠가 꿈꾸었던 것들을 단편적으로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때문이구나. 어린 자아가 읽었던 책 속 세상의 유산을 직접 보고,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면서 느끼는 짜릿함은 여행이 삶에서 큰 키워드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었다.



(無)를 느끼고 떠난 여행에서 생(生)을 느끼고 왔다.


무로 돌아간 노력의 순간들이 언젠간 빛을 발한다는 믿음을 여행을 통해서 배웠고. 무로 돌아가지만 쌓은 노력들이 언젠가 나를 지탱해 주는 바탕이 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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