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혼자 다녀온 강릉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엄마의 추천으로 떠난 여행. 바다를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떠난 여행. 25살, 계획하고 가지 못했으나 28살, 무작정 떠난 곳이 강릉이다. 25살에 국내 일주를 목표로 세웠던 여행의 종착지가 강릉 계획을 세우고 3년이 지나서야 오게 되었다. 그때도 수험이 끝나고 스트레스가 가득해서 떠났는데, 취직이 되어 중간에 여행을 관두었었다. 이번에는 오롯이 쏟아부은 1년간의 수험이 잘 풀리 못해 강릉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여행을 권했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딸이 힘들어 보여서,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세상을 보라고 권해준 엄마의 마음에, 미안하기도 감사하기도 했다.(사랑해, 엄마)
바다를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 될까 무서웠지만, 조용히 바라본 바다는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파도를 보고 바다의 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으며, 그 모래사장의 모래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바라본 바다와 그 순간이 좋았다.
바다만 보느라 현생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마치 바다가 된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아무래도 정신적 충격이 꽤 컸기에
아파서 일주일은 누워있다가
바다를 보니 그제야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
독감 약으로 계속해서 쏟아진 잠과 지친 정신으로 인해 자고 잠깐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아팠지만 나를 회복하는 시기라 생각하면, 정말 필요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꿈과 현실이 섞이는 기분이 들 때 잠에서 깨어나는 게 무서웠다. 그래도 나는 꿈을 깨고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여행으로, 강릉으로 이끌어 낸 건가 싶다.
바다를 보며 혼자 많이 울었다.
그저 이 슬픔을 여기에 다 쏟아내고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기를 바라며.
최유리 님의 <살아간다> 속 가사들처럼
'내 작은 발을 내딛고 살아간다.'
'나는 쉽게 오지 않을 날에 잔뜩 기대를 걸어두고'
'나는 조금만 올라가면 끝인 걸
그 말을 굳게 믿고 다시 살아간다.'
'나는 조그맣게 꿈꿔온 세상에다
힘 빠진 발을 내딛고 다시 살아간다.'
약간의 눈물이 여전히 차오르지만, 이번 여행의 끝으로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시 살아갈 것이다. 결론은 이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를 최대한 만끽하기로 했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도전하고 여러 경험을 쌓다 보면
무언가는 되어있겠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학교 졸업하고 뭣도 모르고 공시를 시작했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요령 없이 공부하며 독서실에서 울던 24살의 내가 있고. 첫 수험 실패, 회사에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잠시 꿈을 뒤로하고 무작정 사회에 뛰어든 25살의 내가 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온 사회의 매해가 예측 불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던 26살의 내가 있고. 진지한 수험을 위해, 오로지 합격하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 만에 패기 넘치게 서울로 떠나온 27살의 내가 있고. 1년이 무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온 강릉 바다를 보면서 기운 차리고 또 나아가야지란 생각이든 28살의 내가 있다.
정답이 없는 삶에 내가 생각한 정답대로 흘러간 적이 없으면서 그 속에 나를 끼워 넣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다.
당분간은 쉬어가자.
조금만 더 쉬자가 지금의 답이다. 기약 없는 쉼은 절대 아니다. 쉬면서 올해를 어떻게 보낼지 구체적으로 꾸려나가야지. 누군가는 더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란 질문을 던질 수 있겠으나, 난 지금 달릴 힘이 없어서 쉬어가는 것이다. 에너지 충전되면 알아서 질주할 것이니 걱정은 없다. 어릴 때부터 주특기가 뒤도 안 보고 질주하는 것 확신이 서면 내 모든 걸 소모시켜 질주할 나를 알기에. 나이가 들어 그때만큼 열정 가득 질주를 하기에는 몸이 좀 삭은 기분이나, 미래를 위해서 그에 맞게 몸도 정신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여행 너무 잘 왔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내고 간다.
다음에는 애정하는 사람들과 강릉을 오고 싶다.
열심히 쏟아붓고 살아왔기에
이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라 되새기며.
나에게 쓰는 편지, 마침.